평소 어딘가 주로 앉아있거나 서서 무언가에 정신을 빼앗긴 채 시간을 보내온 몸에게 격한 거부감 없이, 시간과 거리를 몸소 체험하게 만들 지속가능한 방법 중 하나는 좋아하는 노래를 반복해서 들으며 달리기가 아닐까 한다. 맨 처음 집 앞을 한 두 바퀴 도는 달리기를 시작한 뒤 예상치 못하게 마주한 새로운 1분의 세계가 당혹스러움 그 자체였으므로, 간절히 떠올리며 의지할 수밖에 없는 노래들이 내 안에 구세주처럼 있었기도 하고 말이다. 그러니까 이건 당연한 말인데, 소파에 고요히 앉아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면서의 1분은 일상적으로 감각하기 어려운 찰나와도 같지만 달리는 몸으로 겪는 1분이란 그야말로 숨이 차는, 아니, 도대체 이거 뭐야, 의 세월인 것이다.
내가 지금 숨이 차오는 건 빠르게 뛰는 이유만은 아냐, 로 시작되는 윤종신 너에게 간다, 가 가장 먼저 마음속에 떠오른 건 순전히 숨이 가빠서였다. 가만히 있을수록 들끓는 잡념에 몸속 어딘가 푹 꺼져버릴 것만 같아 결심한 달리긴데, 이러다간 숨이 먼저 끊어지겠어, 하는 순간을 매분매초 꾸준히 무거워만지는 발걸음으로 느끼게 되다니. 하지만 이 불편한 상태는 머릿속에서만 살던 나의 인생 탈출이 분명하다. 그때부터 이어폰을 통해 흘러나오는 윤종신의 가사와 음에 의지해 이 노래 한 곡이 다 끝날 때까지, 두 번 반복될 때까지, 집 앞을 달리며 몸에 시간과 거리를 음악으로 새겼다. 그러다 어느덧 버스에 타서, 전철 안에서, 차를 운전하면서 흐르는 이 노래 속에 여기서 저기로 이동하던 지난 나를 모두, 그 지나간 나날을 기억 저편으로 따돌리고, 사이좋게 작별, 과거 청산. 노래 가사를 뜻 없이 숨 가쁘게 외치며 뛰는 날까지 맞이하게 된다.
도망치지 않으려! 피해 가지 않으려! 내 안에 숨지 않게! 나에게 속지 않게! 이승환 물어본다 역시 언제라도 초보 러너의 성실한 러닝메이트가 되어줄 준비가 되어있다. 다만 이 노래로 주의해야 할 점은 저 가사가 들려올 때마다 달리는 속도를 무리하게 높이고 싶은 충동에 시달리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길함이다. 이건 아마 도망치고, 피하고, 숨고, 속았다 해도 그럭저럭 살아갈 수 있다는 걸, 그렇게 살아온 시간이 이미 길었다는 걸 잘 알고 있는 사람일수록 더욱 심해질 것이다. 그러니까 노래로 배운 달리기에 몸이 익숙해지면 뛰는 동안 그쳤던 고뇌하는 막말이 어느 순간 고스란히 나에게로 쏟아지는 달리기를 직면할 텐데, 똑같은 걸 매일 반복해서 달라지는 하루하루가 사람인 걸 믿는다면 오늘 달리기는 거기서 그만 멈추고, 내일은 무한반복 되는 다른 노래 속에 씻긴 듯이 다시 달리면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