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모임 선생님이 내게 묻는다. 준, 너 이렇게 흐린 날씨에도 나가서 뛰니? 네. 사실 그날은 뛰러 나갈 생각이 전혀 없었는데, 네, 하고 린에게 대답해 버린 순간 나는, 달리기를 싫어하는 사람이 신기하게 바라보며 응원해 주는 사람이 되었으므로 다른 날보다 더 오랫동안 먼 거리를 달려본다. 오늘 날씨 이래 봬도 봄에 가까워. 린이 해준 말에 기대어 윗도리로 반팔티만 걸친 채. 이마에서부터 흘러 코끝을 타고 떨어지는 땀방울과 두 팔에 돋아나는 소름 사이로 입김이 피어나진 않으니까. 어둡고 축축한 회색빛 이 하루 겨울보단 봄을 닮았지.
안개비를 흩뿌리던 구름 떼를 눈에 띄지 않는 먼 하늘로 밀어내는 바람이 분다. 그 바람에 시달리다 부러진 나뭇가지가 지붕 위로 떨어져 거실 안으로 굉음을 떨구고. 소파에서 일어나 현관문을 열어보니 바람에 흔들리는 풍경이 연주하는 백색소음이 열린 문틈으로 사정없이 들이친다. 천천히 옷을 갈아입고 밖으로 나가, 들으면 들을수록 생각이 없어지는 소리 속을 휘청거리며 달린다. 달리는 길로 쓰러진 나무와 조각나 흩어진 나뭇가지에 걸려 넘어지지 않게 한눈팔지 않는다.
오랜만에 동네 사람들과 함께 모여 달린다. 눈부신 햇살이 내리쬔다 해도 바라보면 봄, 닿으면 겨울인 아침. 맨다리에 반바지 차림인 아저씨한테, 너, 안 추워? 인사하고, 후드를 뒤집어쓴 내게 너 따뜻해 보인다, 인사를 건네는 아저씨에게 어, 그래. 그러고 나서 고개를 돌려보니 우리와 좀 떨어진 거리에서 몸을 푸는 아저씨가 팥죽색 긴 레깅스를 입고 있어. 무례한 행동인 줄 알면서도 어쩐지 위아래로 그를 자꾸 훑어보는 나를 발견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