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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랄과 추수감사 달리기

by 준혜이

추수감사절 아침, 우린 소년 친구들과 Turkey Trot, 5km 달리기 대회에 나갔다. 우리 집 십 세 소년을 제외한 네 명의 소년은 이런 공식적인 5km 대회 참가가 처음이라 무척 긴장할 줄 알았으나, 아니, 그럴 리가. 긴장과 초조는 남의 집 귀한 아들들을 모시고 달릴 나와 남편만의 몫이었던 것이다. 어쨌거나 아이들은 스스로 최선을 다해 다친 사람 하나 없이 모두 5km를 완주했다. 그중 하나는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우리에게 다음 달리기 대회는 언제냐고 묻는 달리기 중독 초기 증세를 보여 우릴 웃겼다. 무엇이든지 딱 한 번만 직접 해보면 그 다음번엔 더 잘 해낼 수 있을 것만 같은 그 기분. 완주, 완독, 완창, 완경? 의 묘미가 바로 거기서 비롯되는가, 하며 남의 집 아들들을 집 앞에 내려주었다. 애들 엄마가 고맙단 인사와 함께 내 품에 소주 세 병을 안겼다.


거실 구석 소파에 앉아 스트라바앱을 들여다본다. 오늘 아침 여기저기서 열린 Turkey Trot을 가족들, 친구들과 함께 달린 사람들의 기록이 여럿 보인다. 작년에 우린 뉴저지에서 친구들이랑 5km를 달렸지, 잠시 지난 기억을 들춘다. 그러다 어제 읽다 인상 깊어 적어둔 책 속 문장까지 떠올린다.


같은 종의 산호들은 수천 마일을 떨어져 있더라도 매년 같은 날, 같은 시간, 보통 같은 분 안에 완벽하게 동시적으로 갑자기 산란한다. 해마다 산란 날짜와 시간은 달라지는데 그 이유는 오롯이 코랄만이 안다 [...] 거리의 영향은 전혀 없어 보인다. 산호 한 덩이를 떼어다가 런던의 싱크대 안에 놓인 양동이에 넣어두더라도, 대부분의 경우 그 조각은 전 세계에 있는 같은 종의 다른 산호들과 거의 같은 순간에 산란할 것이다.

- 제임스 네스터, 깊은 바다, 프리다이버


오랜 세월 달리기를 지속하는 사람들에 관해서도 이런 식의 관찰과 분석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일단 출발선에 우글우글 한데 모여 출발 신호를 기다렸다 한 순간에 다 같이 앞을 향해 돌진하는 그 모습이 꼭 산란 같지 아니한가. 달리기가 일상 루틴으로 자리 잡은 사람들은 늘 달리는 거리에서 비슷한 시간에 서로 자주 마주치게 되기도 하므로. 우린 제각기 달리기란 거대 조직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지금 이 순간 일 인분의 달리기.


추석이나 추수감사절이나 한국이나 미국이나 서로 다른 때와 장소에서 우리가 지금껏 최소한의 인류애 마저 모조리 다 잃지 않고 이 세상을 구분 지어 공유하고 있는 건, 인간 본질이 동시 다발적으로 산란하는 지극히 사적인 욕구와 욕망, 아, 나, 이 세계의 한 조각, 소주나 땁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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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혜이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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