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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여자와 달리기

by 준혜이

길 가는 아무나 붙잡고 “당신에게 미친 여자란 무엇을 의미합니까?” 물어 전 국민 대상 『나에게 미친 여자란 사전』을 편찬하고 싶다. 나부터 앙케트에 응하자면 나에게 미친 여자는 어떤 대상과 거리를 너무 가깝게 두는 여자다.

-이미상, 내가 지혜계가 되다니……


오랜 시간 스스로를 미친 여자라 여기면서 그 미침을 여러 사람에게 선 넘는 말로, 끝나지 않는 문장으로 자랑하려 드는 이유를 바로 저 미친 여자란 무엇인가, 에 관한 한 작가의 정의에서 발견한다. 저런 방식으로 미친 여자가 일찍이 가정을 이루어 사랑을 (생략)

-이혜준, 내가 감히 미친 여자가 아니라면……


소년이 콜록대는 한가한 일요일, 찬바람으로부터 그를 절대 보호할 작정으로 우리 모두가 집안에 처박혀 각자 무용하게 시간을 보내기로 결의한 건 아닌데, 기침 소리에는 어떤 병적인 위엄이 깃들어 있어, 선뜻 누구에게도 외출하잔 말을 꺼내기가, 콜록콜록, 소년이여, 괜찮으신가?, 어렵잖아. 이럴수록 더욱 집 밖으로 나가고 싶어지는 난 결국 남편에게 달리자, 하고 뭐든지 더하기를 좋아하는 남편은 커피 마시러 뛰어갔다 오자, 한다. 얘들아, 안녕, 잘 있어, 엄마 아빠 다녀올게.

남편과 동네 커피숍까지 달려간다. 집순이가 되어 낭비해 버리긴 아까운 날씨라 그런 지 달린 지 얼마 되지 않아 코끝으로 땀방울이, 콧물인가, 흘러내렸다. 후드를 뒤집어쓰고 카페에 들어가 따듯한 차이라테를 작은 사이즈로 시켰다. 남편은 우유 넣은 뜨거운 커피를 큰 사이즈로 주문하고. 행여 땀냄새로 카페 공기를 오염시킬세라 구석에 놓인 테이블 의자에 몸을 작게 해 앉아 있는데 직원이 소주, 아니 에스프레소잔을 들고 다가와, 어머, 내가 차이라테를 너무 많이 만들었네, 테이블 위로 아기 차이라테를 남기고 훌쩍 떠났다. 나, 네 커피 한 모금만, 훌쩍훌쩍 이제 집에 가자.



본격적으로 달리기를 시작할 무렵부터 내가 페이스 유지에 탁월했다던 찬사를 허공에다 숨차게 자꾸 날리다가 남편은 점점 내 곁에서 멀어져 괜히 뒤돌아봤자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뒤쳐지고 말았다. 나는 달리던 길에 잠시 멈추어 서서 후드티를 벗어서 허리춤에 묶었다. 그리고 다시 내 옆에 허겁지겁 나타난 그에게 고른 숨결로 너도 트레일 러닝을 한 번 해, 그러면 평탄한 이 길이 얼마나 달리기 수월한지, 훗, 알게 되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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