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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육해공 Dec 10. 2020

가을

영혼의 감각을 깨워준 각성제

2020년 가을, 나를 설레게 한 것들  1. 웜톤의 낙엽 무리 2. 배낭과 야구모자 3. 뚜레쥬르의 버터앙금빵 4. 정환호의 피아노 연주 5. 정처 없이 떠나는 드라이브


올해, 나는 신으로부터 '가을'이라는 선물을 받았습니다.

은행잎에 투과된 노오란 햇빛이 온몸을 감싸는 느낌, 온기를 품은 바람이 얼굴에 닿을 때 느껴지는 감촉,

밥 로스 아저씨의 그림 속을 걷는 것 같은 묘한 착각.

그렇게 가을은 잠들었던 내 영혼의 감각을 깨워주었습니다.


 ‘이렇게나 아름다운 계절이 있었다니!'

동네 골목길, 공원, 숲, 어디에서나 나는 두 팔 벌려 가을을 예찬했습니다. 친구들은 가을은 원래부터 예쁜 계절이었는데 왜 이리 호들갑을 떠냐며 핀잔을 주었지만 내가 그러는 덴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지난 10년 동안, 나는 가을을 온전히 누리지 못했습니다. 매년 9,10,11월은 경쟁피티를 하느라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회사에서 시간을 보내야 했지요.

하루에 한 번쯤은 산책을 하며 광합성도 했지만 일에 짓눌려 있던 터라 주변 풍경엔 눈길 조차 주지 못했습니다.

 눈가리개를 한 채 앞만 보고 내달리는 경주마처럼 달리는 삶, 지쳐서도 멈춰서도 안 되는 시간을 근근이 버텨오면서 나는 오색찬란한 가을을 잃어버렸습니다.


'무엇을 얻으려고 미친듯이 달렸나?'


'지금 아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인생이 달라졌을까?'


 회사를 그만두고 한 동안 이런저런 생각에 밤 잠을 설쳤습니다. 건강과 직장 모두 잃어버렸으니 이제 내게 남은 건 아무것도 없다며 공허한 마음에 시달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지나간 세월에 대한 후회는 그만 하려 합니다. 그 대신, 가을이 건네준 아름다운 위로를 마음 깊이 저장해두는 게 좋겠습니다. 아무래도 그 편이 앞날을 살아가는 데 훨씬 도움이 될 테니까요.


'해공아, 너 지금 죽은 거 아니야. 살아있어! 느껴지지? 찬란한 햇살, 신선한 공기, 이거 다 네가 누릴 수 있는 거야. 살아있으니까!'


2020년, 잃어버린 것이 참 많은 한 해였지만 나는 소중한 것을 되찾았습니다. 가을이 주는 삶에 대한 축복, 그리고 나를 위한 온전한 쉼을 말이지요.


나는 이렇게 다시 일어납니다.

신이 보내준 가을이란 계절 덕분에.

온몸의 감각을 깨워서.

살아있음에 감사드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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