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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육해공 Dec 12. 2020

생각의 서랍장을 비워야 할 수 있는 것

생각부터 비우세요, 몸이 쉬도록

 

회사를 나온 가장 큰 이유는 '쉬고 싶어서'였습니다. 푹 쉬면서 망가진 몸과 마음을 회복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회사를 나온 후 얼마 동안은 쉬지를 못했습니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쉬어도 쉬는 느낌이 아니었습니다.  더 이상 출퇴근을 하지 않는데도 몹시 피곤하더군요. 피트니스 센터에서 운동을 할 때도, 밥을 먹을 때도, 잠자리에서 일어날 때도 피곤했습니다. 지인들은 힘들게 일하면서 쌓인 긴장이 이제야 풀어지는 거라고 조언해주었습니다만, 아무래도 아닌 것 같았습니다. 단순히 몸이 무거운 느낌이 아닌, 머리와 가슴이 꽉 막힌 느낌이었거든요. (잠을 자려고 누웠다가 숨이 턱 막혀서 이불을 걷어차고 일어날 정도였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건 쉬는 게 아니야! 산에라도 들어가야겠어!'라는 생각을 하며 짐을 챙겼습니다. 그리고 강원도 산골에 있는 수녀원으로 들어갔습니다. 수녀원은 굉장히 고요했습니다. 들리는 소리라고는 시냇물이 흐르는 소리, 풀벌레와 새들의 울음소리뿐이었습니다. 휴대폰도 사용할 수 없는 그곳에서 나는 천천히  자신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침묵 가운데 기도하다 보니, 나도 알지 못했던 나를 발견하게 되더군요. 주어진 삶을 감당하지 못하는 , 자존감이라곤 1 없는 , 피해의식으로 똘똘 뭉친 를 말입니다. 마치 봉인되어 있던 서랍장을 한 순간 열게 된 느낌이었습니다. 그동안 의식 아래에 밀쳐두었던 어두운 생각들이 쏟아져 나오니 신기하게 가슴이 뻥 뚫리더군요.  머리와 가슴이 답답했던 이유도 이런 생각들 때문이었구나! 알아차렸습니다.

 

 몸이 쉬더라도 생각이 쉬지 않으면 제대로   없습니다. 우리의 생각이 과거에 대한 후회, 나 자신에 대한 연민, 미래에 대한 두려움으로 묶여 있다면 우선 그것부터 하나하나 풀어야 합니다. 나의 경우, 침묵과 고요 속에 머무르며 나 자신을 성찰하는 것이 해결책이었습니다.


 앞으로 얼마나 더 쉴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계속해서 ' 쉬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매일 생각의 서랍장을 열어봐야겠습니다. 어두운 생각을 비워낸 자리에 온전한 쉼을 불어넣어야겠습니다. 아, 그러고 보니 이제 고요 속으로 들어갈 시간이군요. 생각을 잘 비워내고 또다시 글을 쓰러 오겠습니다. 이 글을 읽고 계신 당신도 모쪼록 생각의 서랍장을 잘 비워내시고, 푹 쉬실 수 있길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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