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감각을 깨워준 각성제
올해, 나는 신으로부터 '가을'이라는 선물을 받았습니다.
은행잎에 투과된 노오란 햇빛이 온몸을 감싸는 느낌, 온기를 품은 바람이 얼굴에 닿을 때 느껴지는 감촉,
밥 로스 아저씨의 그림 속을 걷는 것 같은 묘한 착각.
그렇게 가을은 잠들었던 내 영혼의 감각을 깨워주었습니다.
‘이렇게나 아름다운 계절이 있었다니!'
동네 골목길, 공원, 숲, 어디에서나 나는 두 팔 벌려 가을을 예찬했습니다. 친구들은 가을은 원래부터 예쁜 계절이었는데 왜 이리 호들갑을 떠냐며 핀잔을 주었지만 내가 그러는 덴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지난 10년 동안, 나는 가을을 온전히 누리지 못했습니다. 매년 9,10,11월은 경쟁피티를 하느라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회사에서 시간을 보내야 했지요.
하루에 한 번쯤은 산책을 하며 광합성도 했지만 일에 짓눌려 있던 터라 주변 풍경엔 눈길 조차 주지 못했습니다.
눈가리개를 한 채 앞만 보고 내달리는 경주마처럼 달리는 삶, 지쳐서도 멈춰서도 안 되는 시간을 근근이 버텨오면서 나는 오색찬란한 가을을 잃어버렸습니다.
'무엇을 얻으려고 미친듯이 달렸나?'
'지금 아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인생이 달라졌을까?'
회사를 그만두고 한 동안 이런저런 생각에 밤 잠을 설쳤습니다. 건강과 직장 모두 잃어버렸으니 이제 내게 남은 건 아무것도 없다며 공허한 마음에 시달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지나간 세월에 대한 후회는 그만 하려 합니다. 그 대신, 가을이 건네준 아름다운 위로를 마음 깊이 저장해두는 게 좋겠습니다. 아무래도 그 편이 앞날을 살아가는 데 훨씬 도움이 될 테니까요.
'해공아, 너 지금 죽은 거 아니야. 살아있어! 느껴지지? 찬란한 햇살, 신선한 공기, 이거 다 네가 누릴 수 있는 거야. 살아있으니까!'
2020년, 잃어버린 것이 참 많은 한 해였지만 나는 소중한 것을 되찾았습니다. 가을이 주는 삶에 대한 축복, 그리고 나를 위한 온전한 쉼을 말이지요.
나는 이렇게 다시 일어납니다.
신이 보내준 가을이란 계절 덕분에.
온몸의 감각을 깨워서.
살아있음에 감사드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