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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솔지책 May 22. 2022

효율이 판 치는 세상의 중심에서

실리콘 밸리라는 언캐니 밸리



오늘 소개해드릴 책은 애나 위너가 쓴 《언캐니 밸리》(카라칼, 2021)입니다.

출간되자마자 사놓고 뒤늦게 읽긴 했지만 읽는 내내 많이 씁쓸했네요..


이 커버는 북커버와 띠지고요, 벗겨내면 까만 속표지가 등장해요.



애나 위너

— 이 책을 쓴 애나 위너는 돈은 없지만 보람은 있던 출판계에서 일하던 밀레니얼이었습니다. 출판계 사정을 이렇다, 저렇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흔히들 이 업계가 사양산업이라고 하고 또 독서인구가 갈수록 큰 폭으로 줄어들고 있잖아요? 그건 인구가 많은 미국도 마찬가지였고, 애나 위너는 재미는 있지만 절망적인 자신의 미래를 점점 그릴 수 없게 됩니다.

— 그러다 20대 중반 나이에(아마 한국으로 치면 후반쯤 됐을 것 같네요) 한창 붐이 일던 스타트업으로 직장을 옮기게 됩니다. 하는 일이 크게 다르진 않았지만 업계가 완전히 달라진 셈이죠. 연봉은 많이 뛰었고 애나 위너는 그렇게 몇 년을 실리콘 밸리에 몸담게 됩니다.



(애나 위너가 겪은) 테크 업계

— 애나 위너는 출판계 종사자에서 한순간에 테크 업계 일원이 되었어요. 회사 티셔츠를 입고 돈을 많이 받으며 극강의 효율을 추구한 채 실리콘 밸리를 누비는 사람들 중 한 명이 된 거죠.

— 애나 위너도 처음에는 이 업계의 일원이 되고자 부단히 노력합니다. 이직도 했고 전혀 모르던 기술적인 부분을 공부하며 승진을 하기도 하죠. 당연히 연봉도 많이 올라가고요.

— 하지만 그의 마음은 계속 빈곤해집니다. 맞춤법이 틀린 티셔츠를 입었지만 자랑스레 고개를 처들고 다니는 사람, 늘 ‘우리는 문제를 해결하는 거야’라지만 그 ‘우리’에 백인 남자들만 포함하는 사람, 극강의 효율성을 추구하며 책과 활자를 무시하는 사람······. 활자에 둘러싸여 살던 애나 위너는 숫자로 둘러싸인 곳에서 외로워져요.

나야말로 어이가 없었다. 테크 창업자들은 삶을 풍성하게 만드는 음악과 책과 서브컬처를 깎아내리지 못해 안달이었다. 독서라는 게 단순히 정보를 주입하는 일이 아닌데도 말이다. 테크 업계에 팽배한 효율성 페티시는 정말 지긋지긋했다. (287~288쪽)



돈과 희망에 잠식당한 영혼(feat. 언캐니 밸리)

— 애나 위너는 갈수록 이 업계를 지긋지긋해합니다. 근데 읽다 보면 정말로 그런 느낌이 들어요. 애나 위너가 묘사한 테크 업계는 능력주의라는 칼로 함께 일했던 유능한 직원을 한순간에 잘라내고, 효율 효율 거리지만 사실 비효율적인 일들을 반복하고 있거든요.

그럼에도 애나 위너가 쉽게 그만두지 못한  돈과 희망 때문이라고 생각했어요. 같이 일하던 출판계 동료들과 차원이 다른 돈을 받고 있었고 무엇보다 그곳출판계와 달리 가파른 성장을 고 있었으니까요. 사실 침체된 업계에서는 내가 나아지고 있어도 나아지고 있다는 생각을  못하게  수밖에 잖아요. 매출이 좋지 않고 지표가 나쁜데 진짜 내가 잘하고 있는  맞나? 라는 생각이 드니까요.

— 하지만 실리콘 밸리는 달랐죠. 애나 위너가 들어갔을 때는 스타트업이 버블의 정점에 있었을 때였고 (지금도 그렇긴 하지만) 아주 유망한 미래를 약속했으니까요.



그러나, 그럼에도,

하지만 그러한 동기 부여는 오래가지 못했다. 내가 잘 보이고 싶어 했던 사람들도 알고 보면 그리 우월하지 않았다. 물론 다들 똑똑하고 착하고 야심 찼지만, 세상에 많고 많은 게 그런 사람들이었다. 참신하다는 느낌이 잦아들었고, 업계에 만연한 이상주의가 점점 수상쩍어 보였다. 테크 산업의 대부분은 진보와 무관했다. 그냥 비즈니스일 뿐이었다. (375쪽)

돈과 가치가 함께 가면 좋겠지만 대개 현실은  둘을 갈라놓기 마련이고, 애나 위너는 결국 그곳을 떠나기로 결심합니다. 떠나는 과정도 아주 간소했죠.  년을 일했지만 그곳은 효율을 따지는 곳이니까요.

— 특별한 문화의 일부가 되고 싶다고, 저 사람에게 진짜 잘 보이고 싶다고 생각했던 마음이 사그라든 겁니다. 비효율적이고 뒤처지게 하는 것들에 계속 마음이 끌렸거든요. 테크 업계에 종사해도 굉장히 문과적인 인간이 있는 것 같은데 애나 위너는 자신의 문과적 기질을 절대 포기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던 것 같아요.



이렇게나 씁쓸한 회고록

— 애나 위너의 회고록을 읽으며 실리콘 밸리의 안 좋은 모습을 잔뜩 봤어요. 우후죽순 잘려나가는 사람들, 능력주의를 표방하지만 사실 능력에는 별 관심 없는 사람들, 진보와 혁신을 말하며 다른 척하지만 결국 원하는 건 다른 회사들처럼 돈뿐인 사람들. 투자받기 위해 내세우는 건 학벌뿐이지만 간단한 맞춤법조차 틀리는 사람들. 근데 이게 미국만의 얘긴 아닐 것 같아요. 우후죽순 생기고 사라지는 많은 스타트업에 조금씩은 있는 모습이겠죠.

이렇게 살아서 남는  무엇일까요? 엄청난 ? 스톡옵션? 그게 있으면 우린 정말 아름답고 행복한 삶을   있을까요? 애나 위너의 답은 아니었던  같네요. 물론 그도 스톡옵션을 조금 챙기긴 했는데요, (글로  거지만) 그렇게 ! 신난다! 느낌은 아니더라고요. 어쨌든 읽는 내내 굉장히 씁쓸했습니다. 능력과 효율을 추구하는 쪽이긴 하지만 그걸 누군가를 찌르고 때리는 무기로 쓰는 사람들의 모습을 봐서 그런  같아요.



IT 업계의 이야기긴 하지만 《코드와 살아가기》(글항아리사이언스, 2020)나 《IT 회사에 간 문과 여자》(모로, 2022)처럼 일하는 여성의 이야기라 어렵지 않게 읽으실 수 있을 것 같아요.

타인의 이야기가 궁금하신 분들은 한 번쯤 읽어보실 수 있길 바라요!



http://aladin.kr/p/ePCy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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