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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솔지책 Jul 06. 2022

이 세상엔 여전히 아저씨가 필요한 것 같아요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 중국 아저씨, 루쉰의 이야기



어른의 가장 큰 단점 중 하나는 하고 싶은 말은 산처럼 쌓여가지만 좀처럼 뱉을 수 없다는 게 아닐까 싶어요.

삼키고 삼켜버린 말들은 응어리나 분노가 되기 마련이지만.. 마땅히 분출할 곳이나 사람은 갈수록 없어지죠.

오늘은 해야 할 말은 꼭 뱉거나 쓰고 말았던 유명한 중국 아저씨, 루쉰의 책을 들고 왔습니다.


루쉰, 이욱연 옮김, 《루쉰 독본》(휴머니스트, 2020)


루쉰?

— 루쉰을 잘 모르더라도 어디선가 이름은 많이 들어보셨을 수 있는데요. 그건 저도 그랬기 때문입니다. 대체 이 아저씨를 어디서 봤을까요? 교과서에 나왔던 걸까요? 어쨌든 루쉰은 1881년부터 1936년까지 그리 길지 않은 생을 살다간 중국의 사상가이자 작가입니다. 60이 안 된 나이에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게 좀 씁쓸하네요. (그런데 동양 작가들은 주로 몸이 아파 죽고 서양 작가들은 여러 중독으로 죽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 루쉰의 이름은 모르더라도 <아Q정전>이나 <광인일기> 같은 작품은 들어보셨을 수도 있을 거예요. 특히 <아Q정전>은 읽은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을 것 같지만 제목만은 굉장히 널리 퍼졌다는 느낌적 느낌입니다.



루쉰 독본

— 책 소개에도 나와 있지만 이 책은 루쉰의 산문과 소설을 추려 엮어낸 책이에요. 유명작인 <아Q정전>부터 그가 연인에게 보낸 편지까지 아주 다양한 글이 실려 있습니다.

— 사실 어느 작가가 궁금해져도 글 하나하나를 찾아 읽기는 굉장히 품이 많이 들고 힘든데(특히 외국 작가라면 더더욱), 이 책은 ‘루쉰이 궁금해? 그럼 이거 하나 잡솨봐~’ 하는 느낌이에요.

— 게다가 소설부터 산문까지 여러 글이 실려 있다 보니 괜찮아 보이는 글만 골라 읽어도 된다는 장점도 있고요.



한 번도 눈여겨보지 않았던 차례

 좋아하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호기심이 생기는 책의 구매를 결심하는 요소가 많이 나뉘는데요(대개 온라인서점에서 구매를 합니다). 저는 100퍼센트 발췌문을 보고 결정하는 편이에요. 발췌문 또한 일종의 광고 카피인데 대략 5~8 정도의 발췌문을 지만 저한테 와닿거나 흥미로운 부분이 하나도 없다면 장바구니에도 넣지 않게 되더라고요. 근데 발췌문이고 나발이고 차례를 보는 분들도 봤어요. 책의 구성과 책에 담긴 대략적인 내용을 보는 거겠죠?

— 물론 《루쉰 독본》 알라딘 소개 페이지에는 발췌문이 없지만(저는 루쉰 책을 찾아 구매한 거라 소개 페이지를 읽지도 않았습니다) 이 책은 차례에서 이미 독자의 흥미를 유발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특히 루쉰은 어떻게 보면 독설가라고 할 수 있을 만큼 굉장히 솔직한 글을 쓰는 사람인데 그게 제목에 여실히 드러나거든요.

— 예를 들어, <무엇을 사랑하든 독사처럼 칭칭 감겨들어라> <얕은 못의 물이라도 바다를 본받을 수 있다> <우리는 지금 어떻게 아버지 노릇을 할 것인가> <내 붓이 날카로운 이유> <나는 남보다 나를 더 무정하게 해부한다> 등이 그렇다고 느꼈어요. 제목이 오히려 아포리즘처럼 느껴질 정도랄까요..? 물론 제가 루쉰을 좋아해서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나는 남보다 나를 더 무정하게 해부한다’고 하는데 어떻게 안 들춰볼 수 있겠어요?!


얼굴부터 꼿꼿한 루쉰… 정말 그렇지 않나요..


“나는 결코 도량이 크지 않다는 것을 잘 알아, 그놈들이 내 글 때문에 구역질을 한다면 나는 아주 기쁘다. 이 밖에 다른 뜻은 없다.”

— 저는 트위터에서 루쉰 봇을 팔로우하며 그의 날카로운 말들을 잘 수집해왔고 그중 위의 말을 정말 좋아합니다. ‘그놈들’이 구역질 할 수 있는 글을 써내려면 사람 이하인 ‘놈’들을 날카롭고 논리적으로 비판할 수 있어야 하는데, 루쉰은 충분히 그런 역할을 해낸 것 같거든요.

— 그를 본 적도 없고 글 몇 편 읽었을 뿐이지만 제가 본 그는 꼿꼿하고 솔직하며 비판적이지만 결코 회의적이고 비관적인 사람은 아니었어요. 놈들과 타협을 하진 않지만 관용이 없는 사람은 아니고요. 게다가 그의 분노는 언제나 위를 향했던 것 같아요. 강강약약의 모습이었달까요. 그러니까 어떤 시대에서든 필요한 지식인의 모습을 하고 있지 않았나 싶어요.



100살도 더 어린 독자까지 웅장하게 만드는 글들

— 사실 백마디 말보다는 그가 쓴 문장 몇 개가 더 그의 책을 잘 설명해주는 것 같아요. 그래서 알라딘 소개 페이지에 넣고 싶은 문장들을 여기에 발췌해봅니다. (아, 근데 정말 발췌문 왜 없을까요… 이렇게나 좋은 것이 많은데…!)

나는 생각했다. 희망이란 원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지상의 길과 같다. 원래 지상에는 길이 없었다. 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길이 되는 것이다. _ <고향>
이전에 현세에서 살기를 원했으되 살지 못한 사람들이 있었다. 침묵도 하고, 신음도 하고, 탄식도 하고, 통곡도 하고, 애걸도 했다. 그렇게 현세에서 살기를 원했지만, 그러지를 못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분노를 잊어버렸기 때문이다. _ <잡감>
자식들을 구속하는 가장이 없어야 구속에 반항하는 불효자가 없다. 협박하고 유혹하는 것으로는 가정이 영원히 평안할 수 없다. _ <우리는 지금 어떻게 아버지 노릇을 할 것인가>
돈이란 말은 매우 귀에 거슬리지요. 혹 고상한 군자들한테 미움을 받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인간의 의견은 어제와 오늘이 다를 뿐만 아니라, 식전과 식후가 왕왕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무릇 밥은 돈을 주어야 사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돈 소리 하는 것을 비천하다고 하는 인간들은, 그들의 위를 눌러보면 틀림없이 배 속에 아직 소화되지 않은 고기와 생선이 남아 있을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들에게는 온종일 굶긴 뒤에 다시 의견을 들어보는 것이 좋습니다. _ <노라는 집을 나간 뒤 어떻게 되었는가>
하지만 나더러 청년들이 어떤 목표를 향하여 나아가야 하는가에 대해 꼭 대답하라고 한다면 나는 어쩔 수 없이 남을 위해 생각해둔 말, 즉 첫째는 생존해야 하고, 둘째는 입고 먹어야 하며, 셋째는 발전해야 한다고 말하겠습니다. 이 세 가지를 가로막는 자가 있다면 그가 누구이든 우리는 반항하고 박멸시켜야 합니다. _ <베이징 통신>

— 이 밖에도 인덱스를 붙인 문장은 많았으나 여러분의 읽는 재미를 위해 정말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루쉰이야말로 정말 백문이불여일견이니까요!



그가 죽은 지 100년이 다 되어가지만 세상은 어쩌면 100년 전보다 더 퇴보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과학과 기술과 생활과 경제는 나날이 발전해가지만 과연 그 발전된 세상을 사는 우리가 100년 전 루쉰보다 더 나은 인간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더 나은 인간이 되고 싶은 분들이라면 뜨거운 여름 루쉰의 말을 새겨보셨으면 좋겠어요.

그럼 읽기 전보다는 한 뼘이라도 더 나아질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오늘도 손 번쩍 들어 인사 보내요.


http://aladin.kr/p/tNzs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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