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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솔지책 Sep 02. 2022

내 삶은 오로지 너였어

삶을 뒤바꾼 단 하나의 사랑

*커버는 LIN ZHIPENG의 사진입니다.


기분 좋은 볕과 바람이 가득한 가을이 찾아왔습니다.

저는 가을 하면.. 오직 추석 연휴만 떠오르는데요, 이 날씨에 쉬면서 읽을 수 있는 책을 들고 왔어요.

최근  달간 읽은   가장 좋았고 가장 많이 되뇐 이야기였답니다. 어허어엉.


니콜 크라우스, 민은영 옮김, 《사랑의 역사》, 문학동네, 2020.



삶의 끝에 서 있는 노인과 삶의 한가운데로 향하는 소녀

— 줄거리를 대충 얘기해보자면요, 레오폴드 거스키라는 노인 얘기부터 해야 합니다. 책은 가난하고 볼품없고 괴팍한 레오폴드 거스키를 보여주며 시작해요. 어떻게 보면 세상과 등진 것 같고 또 어떻게 보면 세상에 간절히 속하고 싶어 하는 사람 같습니다. 어쨌든 그는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아 보여요. 그 자신도 그것을 자각하고 미리 묫 자리를 다 알아봤고 너무 시간이 지나 발견되지 않기 위해 매일 친구와 살아 있다는 사인을 주고받습니다.

— 그런데 이 책에는 레오폴드 거스키와 일면식도 없고 사는 동네마저 다른 소녀, ‘앨마’의 이야기가 교차로 흐릅니다. 앨마는 어렸을 때 아버지를 잃었고 그 슬픔에서 완벽히 헤어나오지 못한 엄마와 속을 잘 모르겠는 남동생과 함께 살고 있어요. 앨마는 10대지만 삶에 흐르는 슬픔을 포착할 수 있는 명민한 아이기도 해요.



모두를 잇는 <사랑의 역사>

— 이들의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건 <사랑의 역사>라는 책입니다. 소설 안에 ‘사랑의 역사’라는 제목을 가진 책이 나오는데요, 이 책의 여자 주인공 이름이 ‘앨마’예요. 앨마의 엄마 아빠는 이 책을 매개로 사랑하게 되었기에 자신들의 딸 이름을 ‘앨마’라 이름 붙였고요.

— 여기에 등장하는 책, <사랑의 역사>는 열살 때 만난 소녀 ‘앨마’에 대한 열렬한 사랑 이야기예요. 작가는 무명이고 인기 있는 책도 아니었지만 누군가를 결혼하게 하고 이름까지 붙이게 할 만큼 강렬한 사랑을 담은 책이기도 했죠. 종이책 뒤 표지에도 등장하는 엄청난 문장이 바로 책 속 <사랑의 역사>에 등장하는 문장입니다.

“옛날에 한 소년이 있었고, 그는 한 소녀를 사랑했으며, 그녀의 웃음은 소년이 평생에 걸쳐 답하고 싶은 질문이었다.”

— 네, 정말 어떻게 봐도 미쳐버린 문장이 틀림없죠.. 어쨌든 여기 등장하는 모든 기쁨과 슬픔은 ‘그녀(앨마)의 웃음’에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래서 이들이 대체 어떻게 연결된 거지?

— 책이 흘러가면서 레오폴드 거스키와 앨마의 이야기가 조금씩 나와요. 레오폴드 거스키에겐 평생 잊지 못한 사랑이 있고 한 번도 만나지 못한 아들이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거스키는 오래전 친구에게 맡겨두었던 그 소설의 행방과 아들의 소식을 알게 되어요(그의 이야기는 꽤 슬픕니다). 앨마는 자신에게 이름을 붙여준 <사랑의 역사>를 살펴보면서 ‘앨마’가 사실은 실존 인물이라는 생각을 굳히게 되고 이 책을 쓴 사람을, 이 책에 등장하는 진짜 ‘앨마’를 찾으려 해요.

— 이들이 새로 발견한 사실에 집중하며 책이 전개될 때 책 속 <사랑의 역사>의 페이지 또한 꾸준히 넘겨집니다. 두 인물을 둘러싼 이야기와 <사랑의 역사>의 문장들은 절묘하지만 정확하게 상황을 만들어가요. 노인과 소녀와 책이라는 이상한 조합이 더없이 눈물겨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거죠.



역사와 궤를 함께한 사랑의 역사

— 레오폴드 거스키의 이야기를 읽어가는 독자들은 궁금해질 거예요. “평생에 걸쳐 답하고 싶은 질문”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그녀의 웃음을 좋아했던 그가, 평생 그녀 말곤 누구도 사랑해본 적 없는 그가, 대체 왜 그녀와 함께할 수 없었는지요.

— 레오폴드 거스키의 사랑의 역사는 끔찍했던 나치의 역사와 궤를 함께합니다. 유대인 탄압 정책에서 레오폴드 거스키도, 그녀도 자유로울 수 없었어요. 아니, 거의 모두가 자유로울 수 없었죠. 이 사랑의 역사는 결국 세상의 역사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겁니다.

— 유대인 학살 및 나치에 대한 책은 많지만 개인의 역사 속에 녹이며 적절하고 정확하게 드러낸 책은 거의 없지 않나 싶더라고요. 계속해서 말해져야 할 이야기가 신선하고 아름답게 탄생한 느낌이에요. 이렇게나 정확한데 아름다울 수 있다니.. 이것이 문학이겠죠!



이 작품을 읽으면 절대 니콜 크라우스를 잊지 못한다

— 《사랑의 역사》를 알게 된 건 2020년 이 책의 개정판이 나왔을 때인데요. 저는 김연수 작가와 안드레 애치먼 작가(두 분 모두 제가 미치게 좋아하는 분들…)의 추천사를 보고 단번에 구매 버튼을 눌렀습니다. 언제나 그렇듯 구매와 독서는 별개인지라.. 이 책은 2년 동안이나 책장에 있었어요.

— 하지만 그동안 《사랑의 역사》를 잊은 건 아닙니다.. 여러 사람이 《사랑의 역사》 이야기를 하는 걸 꾸준히 봐왔거든요. 특히 작가들이 이 책을 언급하는 걸 몇 번 봤는데 그때마다 ‘아니, 이 책이 대체 뭐길래!’라는 생각을 했어요.

— 그러다 책을 펼치고 첫 장을 읽는 순간.. 아, 이건 끝났다… 이건 진짜 명작임이 틀림없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책을 덮을 때까지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어요. 아니, 오히려 굳건해졌죠! 이 작품을 읽고 나서 이 책을 좋아해줄 수 있는 몇 명에게 선물을 하기도 했고 다른 작품들을 모조리 사기도 했습니다.

— 그러니까 이 작품을 끝까지, 제대로 읽었다면 니콜 크라우스라는 이름을 절대 잊지 못하실 거예요. 진짜로…!!!



사족

— 사실 난이도가 쉽다고 할 수 있는 책은 아니지만 한 번 읽으면 절대 후회하시지 않을 거예요. 이 책을 선물받았던 지인들 중 한 명 역시 니콜 크라우스의 모든 책을 사기도 했거든요!

— 소재와 전개도 멋지지만 미문이 넘쳐나는 책이기도 해요. 그중 일부를 옮깁니다.

“최초의 여자는 이브였는지 몰라도, 최초의 소녀는 언제까지나 앨마일 것이다,”
“우리, 손을 잡아야 하나?” “그럴 수 없어.” “어째서?” “사람들이 알아버릴 테니까.” “뭘 알아?” “우리에 대해.” “그래, 알면 어때서?” “비밀인 게 더 좋아.” “왜?” “그럼 아무도 뺏어갈 수 없으니까.”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때가 있었고, 내 인생에 대해 생각한 때도 있었다. 최소한 삶을 꾸리기는 했다. 어떤 종류의 삶? 그냥 삶. 나는 살았다. 쉽지는 않았다. 그렇긴 하지만. 절대로 견딜 수 없는 것이란 거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좋은 날씨와 딱 어울리는 책을 집어들고 볕과 바람을 만끽하실 수 있길!

오늘도 손 번쩍 들어 인사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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