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랑은 미움보다 강하다
나와 친구들: 클라인 이론을 중심으로
나는 친구들을 참 쉽게 미워한다. 친구가 답장이 늦어서, 나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해서, 약속을 미뤄서, 집에 일찍 간다고 해서… 처음에는 그렇게 미운 감정을 생기게 한 친구를 원망하다가 곧바로 화살이 내게로 향한다.
‘너, 친구를 왜 미워해? 너 친구 안 사랑해? 어떻게 그렇게 쉽게 미워할 수 있어?’
그러면 나는 물러나고 싶어진다. 깨끗한 마음이 될 때까지. 다시 사랑으로만 친구를 대할 수 있게 될 때까지 물러서고 싶어진다. 이런 마음을 들키고 싶지 않아서, 그걸 그대로 드러내면 친구가 이런 롤러코스터 같은 나는 필요 없다고 할까 봐. 하지만 그런 깨끗한 마음은 쉽지 않고, 미움을 숨기느라 애를 쓰고, 그러다 또 친구가 미워진다.
갈등 없는, 사랑만으로 이루어진 관계는 모형 음식처럼 부자연스럽다. 미움과 분노와 실망감을 숨김없이 전달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질감과 맛과 향을 가진 자연스러운 요리를 마주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그 용기를 클라인 이론을 공부하며 나는 찾았다. 미움이 섞여 들어오는 관계에서 도망치지 않을 용기를.
“Klein에 의하면 유아는 우울자리를 극복하게 하는 회복 환상에서 그 자신이 전능하다는 전능의 환상을 사용하여 자신이 파괴한 대상을 창조하려 한다. 이때 대상을 온전한 상태로 회복시키기 위해서는 자신이 파괴한 대상을 회복시킬 수 있다는 전능감과 함께 ‘자신의 사랑이 미움보다 강하다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쉽게 쓴 정신분석이론 314쪽.)
시작하는 관계에서, 충분히 가깝지 않기 때문에 누릴 수 있는 긍정적 감정의 소용돌이는 양가감정의 출현으로 그치게 된다. 양가감정의 출현 후, 한 대상에 대한 상반된 경험을 통합시키는 과정에서 반드시 마주하게 되는 감정은 죄책감이다. 내게 좋은 것을 준 대상을 자신이 미워했다는 사실에 대한 죄책감. 그때 필요한 것이 바로 ‘자신의 사랑이 미움보다 강하다는 믿음’이다. 나에게도 그랬다. 내가 나에게 기쁨을 준 친구들을 미워한 것은 사실이나, 내가 그들에게 가지는 사랑이 그 미움보다 크다는 믿음이 있었기에 나는 죄책감을 덜어내고, 또 친구들에게 나의 깨끗하지만은 않은 마음들을 공유할 수 있었다.
우리 관계를 지키고 싶어서 우리 관계 안에서 내가 경험한 부정적인 감정들을 네게 전하는 거라는 걸 친구들이 알게 하는 게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 자리를 건너니 이전과는 질적으로 다른, 통합적인 관계가 형성되었다. 싸움과 화해를 거쳐 풍부한 감정 경험을 지니게 된 관계는 보다 현실적이고 단단해졌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했을까?
“Klein은 자기의 사랑이 미움보다 강하다는 이러한 믿음은 유아가 어머니로부터 받았던 선함에 대한 깊은 감사와 더불어 발달하게 된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즉, 도와주는 좋은 대상을 내사하여 사랑의 감정이 활성화된다. 그렇기 때문에 우울자리는 분노와 공격성이 사랑과 상호작용하여 또 다른 형태의 사랑이 생겨나는 아주 중요한 순간이 된다.” (쉽게 쓴 정신분석이론 314쪽.)
내가 나와 친구들 사이에서 경험한 우울자리를 극복하는 동력은 다시 친구들에게서 나온다. 친구들로부터 받았던 사랑에 대한 인지와 감사함이, 나를 친구들로부터 도망치지 않게 해 준다. 친구들에게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한다. 갑자기 부정적인 감정을 고백하는 나로부터 친구들이 도망치지 않은 이유는 내가 그들에게 주었던 긍정적 경험들, 즉 사랑의 경험 때문일 것이다. 앞으로도 친구들을 열심히 사랑하고, 가끔 미워하고, 싸우고 또 화해하며 지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