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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yes Nov 10. 2022

처음으로 찾아온 업무 권태기

슬럼프보다 깊고, 퇴직보다는 투명한 무언가

결론부터 말하면, 다행히 지금은 지나갔다. 그러나 이 글은 극복하거나 견뎌내는 방법을 이야기 하지 않는다. 사실 딱히 뭘해서 해결된게 아니다 보니 극복하는 방법이 뭔지도 모른다. 말 그대로 지나갔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기장이 아닌 이 곳에 이 이야기를 써내려가는 데에는 나름의 사정이 있는데... 나와 비슷한 타이밍에 나와 비슷한 연차의 동료들도 비슷한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직업은 백수, 취미는 회사생활" 내 인스타그램 소개 글이다.그만큼 일을 좋아했다. IT업계는 살아남기 위해서 끈임없이 가지고 있는 기술을 연마해야 한다. 매일 새로운 기술이 나오고, 트랜드가 바뀔 때마다 학습해야할 도구나 언어가 새롭게 등장한다. 방법론도 끊임없이 변화한다. 어제는 참신했던 것이 오늘은 당연해진다. 프로젝트가 엎어지는 몇 번의 참사와 함께 힘든 경험도 하였지만,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내 모습을 보며 오히려 성취감을 느꼈다.


 작년 말 가까이 지내는 비슷한 연차의 개발자 지인은 "요즘은 정말 개발하기 싫다"고 말을 했다. 그는 한 스타트업에서 2년 넘게 굉장한 책임감으로 근무중이었다. 회사가 어려운 상황에서도 팀의 중심이 되어 고군분투하고 있던 것을 알던 나는 계속되는 야근과 무거운 책임감이 그를 힘들게 하고 있을거라고 생각하고, 그를 위로했다.


석연치 않은 표정의 그는 그저 잘 모르겠다며 한 숨 쉴 뿐이었다. 그냥 그런가 보다 했는데, 최근 나도 비슷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도무지 알 수 없는 형태의 막막함이었다. 그냥 일을 그만두고 싶었고, 왜 그러냐는 아내의 질문에 잘 모르겠다는 대답밖에는 할 수가 없었다.


그러고 몇달 뒤, 또 다른 개발자 지인이 말했다. 잠을 자려고 누웠는데 갑자기 눈물이 또르르 흘렀다고... 그 역시 비슷한 연차의 개발자였다. 구태여 MBTI를 덧붙이자면 셋 다 T다. 잘 모르겠다는 대답으로 이 사태를 쫑냈다가는 죽을 때까지 후회할 것 같아 세 사람은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다. 지금부터는 대충 7-8년차쯤, 대리말 정도에 찾아올지 모르는 꽤나 심각한 권태기의 원인에 대한 이야기다.




1. 티나지 않는 성장


서론에도 이야기했지만, IT 직군은 잠시라도 성장하지 않으면 금새 도태되어 버리고만다. 1~2년차 까지는 알고 있는 지식과 경험이 부족하기에 무슨 일을 하더라도, 치열하고 힘들기만 하다. 누구나 처음 자신의 경력을 시작할 때 딱 한칸이라는 크기의 방을 가지고 시작한다고 가정해보겠다.


처음에는 힘들지만, 실력이 늘고 성장할 때마다 한 칸의 방을 더 얻게된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업무적으로 성장하면서 한 칸이었던 방은 어느새 두 칸, 세 칸으로 늘어난다. 보고만 있어도 뿌듯하다. 방이 하나 하나 늘어날 때 마다 눈에 띄게 티가 나니, 마음이 넉넉해지는 기분마저 든다.


방을 대충 50칸 정도 가지게 된 어느날 부터...  방 한 칸 늘어나는게 그다지 눈에 띄는 변화로 느껴지지 않게된다. 방 한칸을 늘리는 고통과 필요한 노력은 동일한데 겉으로 보기에 별차이가 없어지는 것이다. 이는 낮은 성취감으로 직결된다.


2. 미래에 대한 불안


지금까지는 성장하는 것 만큼 연봉도 늘어왔다. 그러나 우리는 10년차가 넘어가고, 연봉이 제자리 걸음이거나 삭감되기도 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그 원인이 무엇인가 생각하니, 실력도 실력이겠지만 사실 그 보다는 프로젝트 성공의 경험 유무였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우리도 아직 버젓하게 이름만 대면 알만한 서비스를 런칭하고 운영해본 경험이 없었다. 실력은 앞으로 계속 늘겠지만 앞으로 3~4년 내에 프로젝트를 성공시켜보지 못한다면, 나의 가치 또한 더 이상 성장하기 어렵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때때로 찾아왔다.


3. 역할의 추가


또 다른 이유는 새로운 역할에서 찾아봤다. 스타트업에서는 이 정도가되면, 시니어라고 부르기도하고 때로는 팀장이 되기도한다. 단순히 업무만 하는게 아니라 관리라는 새로운 직무가 주어지는 것이다. 이는 PM 직군이 프로젝트 관리를 위해 업무 관계자들의 스케쥴을 설계하고 관리하는 일이랑은 완전히 다르다.


일을 관리하는 게 아니라 "사람"을 관리하는데 포커싱되기 때문이다. 분위기를 살펴야하고, 하기 싫은 말을 해야하고 하고 싶은 말을 참기도 해야한다. 딱 이 쯤부터 이런생각이 들었다. "예전에는 그냥 슉 하고 하면 되는건데, 이제는 이것도 신경써야하고, 저것도 신경써야 하는구나" 더 넓은 시야가 생겼다고 좋아할 일이 아니다. 어차피 결과물은 거기서 거긴데 말그대로 신경써야할 일이 더 늘어나게 되는 것이다.



이런저런 이야기가 더 있었지만 대충 위 세가지로 정리되는 것 같다. 사실 반 년전에 했던 경험이라 지금은 많이 나아졌다. 하지만 이 사건을 경험하기 전의 나와 경험하고 난 후의 나는 완전히 다름을 여전히 느끼고 있다. 무엇이 달라졌는지는 사실 잘 설명하지 못하겠다. 


결론은... 대충 7~9년차 직장인들이 "심각한" 업무 권태기 겪을 가능성이 크고, 다른 슬럼프들이랑은 확실히 다르게 사고방식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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