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ND ONE Sep 06. 2024

차디찬 마음으로 세상과 차단되기를 바라는 이유

소실점을 찾아서

선선한 가을바람에 눈물이 날 때가 있다. 하염없이 흐르는 건 아니고 안구건조증은 염려하지 않을 만큼의 촉촉함. 촉촉해진 감성을 오랫동안 유지하는 능력, 이것이 우리가 나이를 먹으며 길러야 할 능력이지 않을까.


이 세상에서 스스로 차단되고 싶은 마음과 동시에 미지의 곳 무엇인가와 연결되고 싶은 마음을 동시에 품고 있다. 무언가를 잃어버린 것만 같은 느낌을 단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곳에서 찾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은 무엇일까?

자유를 상상했던
그때의 내가
가장 자유롭다.

자유를 상상했던 그때의 내가 가장 자유롭다. 자유를 선택할 수 있다고 믿는 순간부터 자유로움은 우리로부터 멀어진다. 자유 선택의 모순은 선택하지 않음으로써 생기는 후회를 내포하기 때문이다. 무엇인가를 선택하는 행위에는 책임이 뒤따른다. 반면 상상하는 행위 자체에는 어떠한 책임도 필요가 없다. 따라서 정작 자유로워 보이는 상태더라도 그 사람은 진정 자유를 느끼지 못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런 맥락에서 흔히 이름이 알려진 여행 유튜버들이 부럽지가 않다. 여행하면서 돈을 버는 일은 분명 매력적인 일이나 여행에서만 느낄 수 있는 자유로움을 잃게 될 수 있다는 위험성이 크다. 1인칭 주인공이자 관찰자 시점으로 타인에게 소개하는 여행은 비록 편집된 장면들의 종합일지라도 카메라를 자신에게 들이미는 순간부터 '시청자의 반응'으로부터 자유로울 없다. 편집되어 나오지 않는 순간도 결국 '편집'이라는 과정을 거치게 되면서 자유로워야 여행의 기억은 여행자 자신에 의해  일종의 제한을 받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 필자에게 당신도 돈을 벌기 위해 회사에서 자유를 제한받고 있으며, 여행을 할 때도 예산의 제약으로 무엇인가를 항상 선택해야 하는 상황을 지적한다면, 당신의 말이 백번 맞다)


가끔은 차디찬 마음으로
이 세상으로부터 차단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나 자신을 내던져버릴 때가 있다

뜨겁고 무거운 바람이 하늘 높이 떠오른 구름처럼 가벼워질 때 즈음, 나는 나 자신을 나의 밖으로 내던지고 싶다. 가끔은 차디찬 마음으로 뜨겁게 달아오르는 이 세상으로부터 차단되기를 바란다. 나는 진정 타인의 이해를 바라지 않는 것일까 아님 진정으로 타인의 이해를 바라지만 그렇지 않은 척 연기를 하고 있는 것일까?


세상의 모순을 있는 그대로 허용할 수 있는 여행의 관용성과 혼란스러운 삶에 선명함을 가져다줄 수 있는 글쓰기. 여행과 글쓰기가 함께 할 때 나는 나로부터 차단됨과 동시에 자유로워진다. 그리고 다시 차단되기를 바란다.


인생을 산다는 건 나만의 소실점을 찾아가는 과정이 아닐까? 무한히 평행하지만, 끝에서 만나는 것처럼 보이는 착시의 점, 평행선을 달리는 듯하면서도 언젠가는 그곳에서 만날 수 있다고 믿으며 소멸해 나가는 삶.



차단되기를 바라면서도 왜 나는 글을 쓰고 있는가? 그건 나의 말에, 나의 인생에, 내가 사는 사회에 그림자를 부여하기 위함이다. 그림자를 부여한다는 것은 결국 빛을 비춘다는 의미다. 말에 그림자를 부여하는 것, 그것이 곧 작가의 일이리라. 말과 글로 소실된 무엇인가를 그리는 것, 그게 이유 없는 글을 쓰는 이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