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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D ONE Dec 13. 2024

우리들의 연말에 예술이 필요한 이유 (예,술 말고요)

[밑줄독서] 안규철 - 사물의 뒷모습

"매일매일 해야 돼요.
기분 좋을 때만
영감이 있을 때만
그려서 되는 일이 아니고,
추우나 더우나 일정한 시간에
지속적으로 계속하다 보면
그것이 매일같이 쌓여서
하나의 프로세스가 돼요.
그 프로세스가 생기면
나만의 방식도 생기고
그것이 굳어져 철학이 되고 사상이 됩니다.

연말입니다. 조용하고 층고가 높은 공간성을 가진 미술관이라는 장소에 제 자신을 던져놓는 상황을 참 좋아합니다. 갤러리는 다소 무섭게 느껴지기에 공공성과 예술성을 동시에 지닌 국립현대미술관을 종종 갑니다.


연말은 우리의 기대와 달리 희망으로 가득하지 않습니다. 해가 지날수록 희망보다는 절망과 파괴와 혼란과 선동의 언어가, 우리가 필사적으로 저열한 언어에 오염되지 않으려고 노력할지라도, 거리에 놓인 현수막의 외침과 경제가 어렵다는 뉴스들은 우리에 눈과 귀에 따갑도록 꽂히곤 합니다.


저는 이럴 때면 가끔은 미술관 작품 뒤편에서 존재하고 있는 작가와 그 전시를 기획한 큐레이터와 철학자를 상상합니다. 누군가에게는 지루해 보일 수 있는 만큼이나 제게는 신나는 일이며 내부와 외부 세계의 균을 찾는 정화의 의식이기도 합니다.


물론 예술을 담은 공간이 반드시 예술적이지만은 않습니다. 내 눈앞에 펼쳐지는 광경은 작품을 작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눈으로 보는 순간 카메라를 들이밀며, 찰칵 소리와 함께 데이트를 나온 사람들의 작은 대화들, "이쁘다, 신기하다, 느낌 있다, 색다르다, 난해하다" 등의 짧은 감상평이 줄지을 때. 어쩔 수 없이 작품을 보는 순간에도 이어폰을 귀에 꽂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죠. 차단되면서도 연결되고 싶은 마음, 이 마음이 항상 저를 괴롭히기도 합니다.


올해 알게 된 안규철 작가의 <사물의 뒷모습>을 읽으며 눈처럼 소복이 제 눈을 덮은 문장이 말을 겁니다  

예술은 오히려 말을 아끼는 법을,
차라리 침묵하는 법을 배워야 할지 모른다.
말과 말 사이의 여백,
침묵은 아직 훼손되지 않은
유일한 영역이기 때문이다.  

연말이 다가올수록 자신의 목소리를 내려는 사람이 많아집니다. 저는 연말이 되면 제가 하고 싶었던 일보다 하지 않기로 한 일을 다시 한번 되짚어 봅니다. 저는 여전히 타인의 말을 먼저 경청하기보다는 내 것을 먼저 말하고 싶어 하는 미성숙함을 인정합니다. 여러분의 미성숙함은 무엇인가요?


우리에게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해 다들 어떤 루틴이 있으신가요? 저는 예술을 생각합니다. 예술을 생각한다는 건, 예술을 담은 공간에 간다는 것은 제게 '침묵'을 가져다주니까요.


2년 전, 똑같은 제목의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내부의 불안과 외부의 혼란이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해진 시대에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술자리가 아닌 예술 앞에서 말을 잃게 되는 경험이지 않을까요? 예, 술 말고요.(https://brunch.co.kr/@happinessdanish/313)


항상 연필로 밑줄을 그으며 책을 읽는다. 밑줄은 세상과의 만남이다. 밑줄을 긋는 행위는 본인이 어떻게 세상을 보는지에 대한 '인식'의 영역에 속한다. 책을 다 읽은 후 다시 한번 밑줄을 보며, 그때의 생각과 느낌을 반추하는 행위의 반복은 곧 자신만의 '의식'이 된다. 이러한 연유로 밑줄 긋기는 나만의 독서 의식이 되었고, 밑줄은 세상과 나를 잇는 선으로써 'MEETJUL'이 되었다

문제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어나고, 문제가 생겼을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우리가 사물의 겉에만 관심이 있고 그 내부에는 무관심하기 때문이다.  
내가 거쳐온 세상이라는 학교가 내게 박아 놓은 나사못들, 내가 모르는 사이에 서서히 내 속에 들어와 지금의 나를 만든 이 이물질들, 나사못들로 엮여 있는 습관과 관념의 덩어리가 바로 나다.  
 몸의 평형을 유지하는 기관은 귓속의 달팽이관에 들어 있다고 한다
(균형 잡는 것과 소리를 듣는 것 사이에 무슨 각별한 관계가 있는 것일까?)  
예술은 오히려 말을 아끼는 법을, 차라리 침묵하는 법을 배워야 할지 모른다. 말과 말 사이의 여백, 침묵은 아직 훼손되지 않은 유일한 영역이기 때문이다.  
예술가의 삶에 더 가까운 것은 원보다는 나선일 것이다. 나선의 궤도 위에 있는 사람은 결코 시작점으로 돌아갈 수 없다.  
뭐라도 하나 반짝이는 것을 건지려면, 낮의 소란과 번잡과 모욕을 밤의 적막과 어둠으로 씻어내는 시간이 필요하다    
학생들은 자신의 행동을 멈추는 방법부터 배워야 한다.
뭔가를 배우려는 사람은 먼저 자신을 정지 상태로 옮겨놓는 방법부터 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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