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내의 구름을 가로지르는 엔진음 소리를 백색 소음 삼아 읽는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 역사는 언제나 두 사람이 존재하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뭉게구름 사이에 뭉쳐진 마음. 그 마음 옆을 비추는 햇빛. 그 빛을 따라 나선 타지로의 이동. 랜선으로는 절대 느낄 수 없는 귀를 채우는 공기의 소음과 타는 듯한 구름의 온도. 무엇인가를 새롭게 감각할 때, 누군가의 인터내셔널은 시작된다.
비행기를 자주 탈수록 하늘 위에 있다는 자유로움보다 공기를 가르는 엔진 터빈 소리에 집중. 목적지를 향해 질주하는 기체의 모습에 인생을 빗대어 본다. 네모난 화면 속 영화가 질릴 때쯤 기체의 항로와 목적지까지의 거리를 확인. 나의 삶도 어느 시점이 되면 흩어졌던 생각의 대륙들이 모여 마치 판게아가 될 것이라고 믿었던 시절.
생각들은 여전히 각각의 대륙 지형에 따라 여러 가지 형태로 뿌리 내렸다. 그 생각은 스스로 움직일 수 없어 그 주인이 직접 비행기를 타고 각 이동할 수밖에 없었다. 대륙의 끝에서 끝을 연결짓는 수많은 항로에서 생각중독은 오로지 항로가 개척된 곳으로만 이동할 수 있었다.
가끔은 큰 이동을 필요로 했다.
LA에서 샌 안토니오까지 29시간의 기차 여행이, 서울과 LA 그리고 댈러스와 서울을 완복하는 30시간의 비행이, 샌 안토니오와 오스틴, 댈러스를 향해 질주하던 드라이브의 시간들이, 가끔은 큰 공간이 아니라 긴 시간을 들여 이동하는 것만으로도 올해 있었던 작은 움직임들을 그 시간 속에서 품을 수 있게 했다, 스쳐지나가는 공간 너머로 시간을 흘려보낼 수 있다. 작은 움직임. 나는 그것들을 작은 움직임들이라고 부르고 싶었다. 어떤 움직임은 시계바늘처럼 미세한 진동이었지만 영영 멈추지 않을 것 같다.
삶과 죽음 사이에서 벌어지는 정형화된 인생 대소사에서 떨림의 크기는 쉽게 부풀어 오르다가도 금새 줄어들겠지. 마치 풍선처럼 터지거나 바람이 빠져 어디론가 날아가거나. 한없이 가까워야 할 사람과 건너지 말아야 할 강을 넘어버리는 순간들을 거치며, 과연 아무렇지 않게 지나갈 수 있다고 믿는 것이 아무렇지 않을 수 있는 일인지에 대해 생각했다.
어떠한 사실은 혼란스러웠고, 사실이 아닌 상태에 평온을 느끼기도 했다. 오로지 심연에 숨겨진 비밀만을 믿으며 타지에서 쌓은 슬픔. 정체를 알 수 없는 슬픔이 썰물처럼 밀려 들어올 때도 저 멀리 수평선은 단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