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ory of My indepenence day
독립을 한 지도 꽤 되었다. 서울이 아닌 곳은 모두 지방이었기에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갖는다는 것은 곧 타향살이를 한다는 의미였다. 중간에는 고시원에서 살아보기도 했다. 그곳은 독립의 공간이라기보다는 독방에 가까웠다.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는 내게도 그곳만큼은 쉽지 않았다. '어찌 내 방에서 내 마음대로 방귀 하나 속 편히 뀌지 못한다는 말인가?' (소리가 시끄러웠던지 옆방에서 노크를 하던 남자의 표정은 누구라도 사람 한 명 죽일 수 있겠다는 표정이었다)
오늘은 2025년 3월 1일. 이렇게 정확한 날짜를 적어 놓지 않으면 시간의 흐름을 느끼기 어렵다. 회사 일의 복잡성과는 별개로 일상성은 단조로웠다. 먹고사는 일의 책임이 부재하던 시절에는 단조롭던 일상도 다채로울 수 있었다. 그건 필시 청춘의 시간은 독립 사건의 연속이라고 믿었기 때문이었으리라. 무슨 말인고 하니, 하나의 사랑을 하고 그 하나의 사랑이 끝나면 다시 새로운 사랑을 할 수 있다는 믿음이다. 하나의 일이 잘못되어도 다른 일을 제대로 해내면 된다는 생에 대한 믿음이다. 즉, 청춘의 시간에는 겉으로는 '자유와 독립'을 외치지만 사실 '독립적'일 필요는 없다. 이미 자신의 삶을 온전히 자기의 것으로 여길 수 있는 환경이 갖춰지기 때문이다. (물론 스스로 생계를 책임지는 사람에게는 예외다. 학교 수업이 끝나고, 평일 알바와 과외, 주말 알바와 대외활동을 병행하고 기념일에 선물이 필요하면 노가다 현장과 택배 상하차를 해야만 했던 삶에서 '독립'이라는 단어는 사치품처럼 느껴짐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돈을 벌어야만 하는 항구적 저항 불가의 상태에서는 '독립'은 필수품이다. 우리가 가정으로부터 독립한 순간이 아닌 '나의 진정한 독립기념일'은 언제인가? 다시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의 독립운동 기념일은 언제인가?'
독립(獨立) 한자 그대로 홀로 선다는 뜻인데, 지금 우리 청년층 아니, 청년층, 중장년층, 노년층 모두 홀로 설 수 있는 용기를 갖기 매우 힘든 상태다. 희망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절망을 얘기하고 싶은 건 아니다. 인생의 특정 시기에는 희망도 절망도 존재할 수밖에 없다. 무언가 바랄 것이 없는 희망과 절망의 진공 상태에서는 산 정상이나 저 넓은 바다 앞으로 당도하여 하염없이 무언가를 바라볼 수밖에 없다. 바라봄은 우리가 평소 잊고 있던 삶의 지표성을 찾는 행위이자 동시에 이러한 고민을 할 수 있는 생에 대한 감사함을 갖추는 일. 그것이 독립운동의 시작점이다. 하지만 무언가 부족하게 느껴진다.
독립을 재정의 해야 한다. 독립(讀入) - 읽은 것을 내 안으로 넣는 행위. 세상살이를 하며 읽어온 것들을 내 안으로 온전히 들어오게 하는 일. 그것이 진정한 독립이다. 홀로 먹고사는 것만으로는 독립운동을 시작할 수 있지만 완성할 수는 없다. 자고로 운동이란 반복을 통해 단련하고 그 과정에서 고통이 수반되며 회복의 시간을 통해 성장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혼자 먹고살 수 있는 돈을 버는 건 반복 과정에서 고통이 수반되고 월급도 오르면 '성장'도 할 수 있다고 얘기할 수 있지만 '회복의 과정'이 생략된다. 생계의 난이도는 나이 먹는 속도만큼 가속도가 붙기 때문이다. 쉴 틈이 없다.
읽은 것을 내 안으로 넣는 행위란 무엇인가. 우리는 이병률 작가의 말처럼, '도넛' 같은 존재다. 나이가 먹을수록 우리 삶의 크기도 도넛의 크기도 점점 커지지만 동시에 그 가운데 부분도 크게 느껴진다. 어떤 이는 그 정중앙의 빈 곳에 자신을 자신으로 채우려고 한다. 자아의 과잉이다. 도넛의 겉과 속의 맛이 똑같아진다.
도넛의 가운데를 채운다는 것은 결국 내가 아닌 다른 것으로 채운다는 의미이다. 그건 오직 내가 아닌 다른 사람으로서만 가능하다. 도넛의 맛이 달라진다. 싱글 글레이즈드의 삶에서 한 단계 진화하는 것. 그것이 곧 독립이고 따라서 하나의 세계인 하나의 사람을 받아들이는 사랑을 해보지 못한 사람은 아직 독립운동을 시작하지 않은 것이다. 나 자신이 언제 홀로울 수 있고, 언제 사랑을 열렬히 추구했으며, 자연히 흘려보낼 수 있는지 모르는 사람에게는 '독립'은 요원한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언제 진정으로 '독립' 할 수 있을까?
어쩌면 우리는 평생 독립운동을 해야 할 운명일지도 모른다. 바람에 펄럭이는 태극기가 부르짖는 애국가에서 이 나라의 독립을 염원했던 선조들의 숭고한 마음이 유독 뜨겁게 느껴지는 건 그때 당시의 순국선열들의 나이가 이제는 필자보다 어린 경우가 더 많아진 것에 대한 달콤 씁쓸함 때문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