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lignotant Nov 07. 2022

아빠와 환청

“분명 문 여는 소리가 났는데 확인해봐라.”

나이트 근무 퇴근 후 돌아오니 아빠는 몇 번이고 몇 분 전쯤 누군가 문을 여는 소리를 들었는데 집에 사람이 아무도 없다.라는 이야기를 반복한다.

엄마는 교회를 갔고 나는 이제 막 집에 도착했으니 집에 누군가 올 사람은 없다.

교회에서 돌아온 엄마는 “당신이 잘못 들었겠지요.”라고 했다.

엄마의 그 말에 아빠는 “ 당신은 나를 지금 정신병자 취급하는 거가?.”라고 답했다.




아빠는 나 어릴 적 새벽 4시에 출근하면서도 엄마가 힘들까 천기저귀를 다 빨고 다른 빨래를 다 개어놓고 출근했다.

남동생이 공부를 마치고 새벽 2시쯤 돌아올 때면 그 시간에 맞춰 항상 학교로 동생을 태우러 갔다.

은퇴 전에도 아빠가 늘 아침을 차렸었고 은퇴 후에는 아침 점심 저녁을 차리고 설거지까지 담당하고 있다.

집 청소를 하고 고양이 화장실 청소를 하고 친구들이 집에 놀러 온다고 하면 파티상을 차려주고 집을 비워준다.

출근하면 속 안 좋은 서른 넘은 딸을 위해 아직도 출근 도시락을 싸고,

겨울이면 새벽에 출근하는 나를 위해 내 차에 조금 일찍 내려가 히터를 미리 털어놓곤 한다.

그러면서 늘 엄마 건강이 최고 중요하다고 하며 아직도 엄마가 뭐 하나 손에 들지 못하게 한다.


난 늘 엄마에게 이야기했었다.

“ 남들은 삼식이라고 욕하며 은퇴한 남편 밥 차리는 게 일인데 엄마는 남편이 밥 차려주고 집 청소해주고 그 시대 경상도 남편 안 같게 잘 챙겨줘서 좋겠수.”

그러면 엄마는 그저 웃을 때도 있었고 본인이 얼마나 많이 참고 사는지 아냐며 짧게 운을 떼고 말을 돌릴 때도 있었다.

그러면 나는 “ 엄마, 장점 100가지에 단점 몇 가지면, 그것으로 감사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없고 철도 없고 공감력도 없는 대답을 했었다.

엄마를 이해하지 못했었다.



“당신은 나를 지금 정신병자 취급하는 거가?”

20대 후반 즈음 결혼해 40년 가까이 같이 살며 느껴왔을 ‘아내’로서의 엄마 마음을 아주 작게, 아주 잠시, 아주 얕게나마 이해하게 되는 순간이다.

한 가지 단점이 있지만 장점이 백가지니까 괜찮지 않을까?라고 했던 나의 말은

‘100번 잘해도 한번 못하면 물거품이다.’

‘말 한마디에 천냥 빚을 갚는다는 말은, 말 한마디가 사람 속을 칼로 도려낼 수도 있다.’

라는 말을 이해하게 된다.


티키타카의 ‘ㅌ’부터 존재하지 않는 일방적인 사랑이다.

자식으로서 부모의 챙김과 사랑은 감사함이고, 잔소리는 관심이며, 티키타카 없는 일방향적 대화는 나이가 있는 경상도 아재의 특징이라 이해하곤 했다.

시집갈 나이가 다 되어서야 부부로서 티키타카 없는 남편의 일방향적, 어쩌면 조금은 이기적인 사랑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10대 때부터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새벽 4시 출근하며 일만 해 왔던 아빠의 남편으로써, 가장으로서의 사랑 표현방식과 어쩔 수 없는 대화방식을 이해해보려 한다.



그렇게 엄마를 이해해간다.

엄마를 닮아간다.


매거진의 이전글 엄마와 명품가방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