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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뉴 Mar 22. 2024

더듬이 - 1

부제: 고시원 블루스

  바퀴벌레들….     

  나는 고시원의 작은 창문 너머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어둠이 내린 골목길 가로등 불빛 아래에 남녀 한쌍이 입맞춤을 하고 있었다. 매미 소리가 잦아든 여름밤이었지만, 유난히 진득한 공기 사이 시원한 바람이 간간이 불어왔다. 저 멀리 대형 디지털시계의 숫자가 1시에서 1시 1분으로 바뀌었다. 이제 잠자리에 들어야 할 시간이다. 창문을 닫기 전, 나는 재빠르게 방충망을 열어, 목구멍을 갑갑하게 틀어막고 있던 가래침을 멀리 뱉어냈다. 침은 포물선을 그릴 새도 없이 희미한 자국을 남기며 땅 위로 천천히 내려앉았다. 잠시 그 모습을 좇던 찰나였다.


  “사사삭”

  들릴 듯 말 듯 자그마한 소리가 내 신경을 건드렸다. 이곳으로 이사 온 후 처음으로 듣는 소리였다. 나는 잠시 멈춰 선 채, 방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바스락”

  순간, 목뒤의 솜털들이 일제히 곤두서는 듯했다. 고개를 천천히 뒤로 돌려 방안을 훑었다. 한 평 남짓한 공간을 파악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다행히 아무런 움직임도 포착되지 않았다. 작은 침대 하나와 그보다 더 작은 옷장, 낡은 책상 하나가 전부인 이 공간에 무엇인가가 숨어들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겠다며 2년간 다니던 직장을 박차고 나와 고시원에 들어온 지 4개월. 1년 안에 결실을 보겠다는 각오로 친구들의 연락도, 좋아하던 술자리도 뿌리치며 나는 점차 외톨이가 되어가고 있다. 그 시간이 길어지며 점점 휴대폰이 울리는 일도 드물어졌고, 덕분에 적막에 익숙해진 내 청력은 이곳 부근에서 들리는 작은 소리에도 예민하게 반응한다. 나는 방충망에 눌어붙어있는 벌레들을 살피며 철망 구석구석을 손끝으로 지그시 눌러보았다. 이상 무.

혹여, 내가 들어오는 틈을 타 무엇인가가 뒤따라온 것일까.

눈으로 찬찬히 회색빛 방안을 다시 관찰했다. 아무 소리도, 움직임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나의 착각이었던 것일까. 그러고 보니, 요즘 들어 불안감으로 집중력이 떨어지고 있는 것 같다.


  불현듯 최근 텔레비전에서 봤던 장면들이 떠올랐다. 사람의 피를 빨아먹고 산다는 빈대들. 1센티미터도 채 되지 않는 갈색의 빈대들이 사람의 피로 배를 채운 후 붉게 부풀어가던, 소름 끼치는 모습이.

  나는 책상 위 스탠드 불을 켠 뒤, 베개를 세심히 살피고 이불과 매트리스를 찬찬히 헤집었다. 역시, 아무런 흔적도 없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시간을 확인했다. 휴대폰 시계를 보니 벌써 20분이 지나 있었다.


자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며 나는 조심스럽게 침대 위로 몸을 뉘었다. 사실, 내일 아침 늦게 일어난다고 나를 비난할 사람은 없다. 대부분의 강의를 인터넷으로 듣는 내게, 딱히 시간 맞춰서 가야 할 곳이 있는 것도 아니다. 문제는 나 자신이다. 공무원이 되겠다며, 사회적 관계까지 끊어내며 이어가고 있는 이 공부가 오랜 시간 내 삶을 잠식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수험생다운 규칙적인 생활이 필수적이다. 너무 늦지 않게 잠자리에 들고, 일찍 일어나는 그런 일상이.

  한동안 나는 천장에 멍하니 시선을 고정한 채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몸을 뒤척였다. 그러던 어느 순간이었다.


  "사사사삭"

  분명, 아까보다 더 길고 명확한 소리가 들렸다. 나는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조심스럽게 휴대폰 플래시를 비췄다. 옷장 옆 모퉁이 부근, 작은 그림자 하나가 빛을 피해 빠르게 어둠 속으로 숨어들었다. 분명, 이 방 안에 무엇인가가 있다. 나는 휴대폰을 받쳐 든 자세를 유지한 채, 방 안의 미세한 움직임과 작은 소리도 잡아내기 위해 애쓰다가, 팔이 저려올 때쯤에야 휴대폰 창에서 '빈대'를 검색했다.     


 ‘머리는 작고 더듬이는 네 마디이다... 암컷 빈대는 일생에 200여 개의 알을 번식하고, 주로 밤에 활동하며, 인체에 많은 개체가 기생하면 수면 부족을 일으키고, 전 세계 공통종이다….'   

  

  뒤이어 관련 기사들을 검색했다. 제일 먼저, 외국인 교환학생이 머무르는 대학 기숙사에서 빈대가 출몰한다는 기사가 떴다. 기사 아래로 댓글들이 무수히 달려 있었다.    

 

 '너무 끔찍하게 생겼다.'

 '사진만 봐도 제 몸이 다 근질근질하네요.'

 '더러운 외국 놈들 자기네 나라로 다 돌려보내라~~'     


  여러 가지 정보들 중 '수면부족'이라는 네 글자가 유독 마음에 걸렸다. 근래에 나는 통 잠을 자지 못하고 있다. 내 수면부족이 혹여 숨어있는 빈대로 인한 것일까? 별안간 감내하기 힘들 만큼의 공포감이 엄습했다. 나는 밤을 꼬박 새우기로 마음먹었다.     


  얼마나 흘렀을까. 어느덧 잠이 들었던지, 낯선 목소리에 놀란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이마와 등 위로 땀이 솟아 나와 있었다. 휴대폰 시계를 보니 새벽 4시가 되기 직전. 이번에도 역시나, 잠결에 들었던 환청인 걸까. 마음을 가다듬기 위해 심호흡을 하며, 어둠 속 방안을 빠르게 한 번 훑고 난 뒤 다시 눈을 감으려던 순간이었다.


  - 나를 찾고 있나 봐?”

  정체를 알 수 없는 목소리가 속삭이듯 내게 말했다. 나는 재빨리 휴대폰 플래시를 켰다.

  - 내 목소리가 들려?

  목소리가 조금 높아졌다. 소리는 천장 쪽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이윽고, 시야가 어둠에 익숙해지자, 내 시선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는, 손가락 두 마디 크기의 물체가 눈에 들어왔다. 그것은, 빈대였다. 내가 혐오하는 바퀴벌레만큼이나 거대한.

  그 모습을 확인한 나는, 자리에서 꼼짝달싹도 할 수 없었다.  


- 2에서 계속


오래간만에 소설로 돌아왔어요. 총 다섯 편 - 가독성을 위해, 다섯 편의 짤막한 글로 나누었어요 - 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댓글창은 처음과 마지막 편에만 열어두려 합니다.

최근 사회에서 느꼈던 답답함을 소설의 형식으로 풀어낸 이야기예요.
벌레를 극혐 하시는 분들은 다소 비위가 상하실 수도 있지만, 허구의 이야기이니 즐겁게 읽어주시면 제겐 큰 기쁨이 될 것 같습니다.^^

이야기를 함께 해주실 모든 분들에게 미리 감사드립니다!! (2편은 내일 업로드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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