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뉴 Apr 30. 2024

가족의 의미를 생각해 본다

최근, 브런치 이웃인 이후승(브런치 필명: 문예반장) 작가님이 출간한 수필집, <<게으르길 잘했다>>의 한 챕터 제목에 마음이 홀렸다.
책을 읽다가 고개를 주억이며 밑줄을 치게 되는 경우는 있어도, 이렇듯 목차에 적힌 제목 하나에 설득당하는 느낌을 받았던 적이 있었던가 싶다. 사실 이곳에서 밝히기 조금 부끄럽고 저어되지만, 좋은 일 나쁜 일 모두 글로 토로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곳이 이곳 브런치다 보니, 내 마음이 이렇다,라고 들추어낼 용기를 내어본다.
내가 이끌렸던 그 제목이란, '이제는 부모를 버려야 한다'라는, 본디 한 일본 작가가 쓴 책의 표제이다.



도발적이고, 유교문화가 깊이 배어있는 이 사회에서 불효막심해 보이기까지 하는 이 제목이, 내게 끌림과 위안을 주는 것을 넘어, 기대고 싶은 마음을 불러일으켰다. 노모와 오랜 동거를 이어가며, 끊이지 않는 갈등 상황과, 때론 단순히 '불편하다' 혹은 '힘들다'라는 말로 표현하기에는 꽤나 괴로운 순간들을 겪고 있어서일 테다. 물론, 엄마가 곁에 살아있는 것 자체가 감사한 일이고, 이런 마음을 조금이라도 품는 것 자체가 나중에 후회스러운 일로 남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마음을 의지해야 버텨지는 현실이 있지 않을까.



챕터를 쭉 읽어 내려가다가 한 문단에서 밑줄을 긋고 싶은 유혹을 느꼈다. 그것도 강렬한 형광색으로.


'... 대한민국에서 체면과 명분에 가려 아직은 언급이 금기시되는, 부모를 잘 모셔야 한다는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하면서 효 개념의 허실을 낱낱이 파헤쳐서 부모를 버려야 하는 시대의 도래를 선언한다... 산업화가 불러온 소가족 형태에 의해, 형제라는 공감대가 경제적 이유 외에는 불필요한 개념이 되었다고도 지적한다... 형제보다 이웃사촌과 더 가깝게 지내는 경우가 흔하다. 옳은 말만 하는 작가 선생이 은근히 얄밉다.'


작가님 본인도 원저자의 주장에 동의한다는 글귀를 보자, 처음 받았던 위안에 또 다른 위로가 더해지는 것 같았다. 내가 유독 불순한 마음을 지닌 자식이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 누구도 가질 수 있는 마음이라는 공감을 가까운 동지에게서 받는 기분이었다.



근래에 겪은 여러 가지 일들로 가족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는 요즘이다.

타인에게서 불효자 소리는 듣고 싶지 않다면서도, 막상 노모를 모시는 일에서 자신의 편의만은 결코 양보하지 않으려 하는 형제를 보며, 내가 알아왔던 가족은 허상이었다는 것을, 유교적 사상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내가 '선택하지 않은 가족'은, 피와 같은 끈끈함이 강요되는 인연이지만, 실상은 어떤 상황에서 한 가닥 머리칼처럼 순식간에 끊어질 수도 있는 관계였음을 깨달아가고 있다. 이렇게 말하자니 다소 서글픈 마음이 들기도 하나, 언제고 맞이했어야 하는 내 삶의 일부라는 생각이 든다.



아빠가, 나머지 가족들의 공통의 적과도 같았던 시절, 아빠만 사라지면 모든 게 순조로울 거라고, 그동안 아빠로 인해 누리지 못한 평안과 행복을 남은 우리들은 온전히 누릴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었다. 하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나머지 가족들 내부에 숨어있던 문제가, 아빠가 있었기에 단지 드러나고 있지 않았던 것뿐이었다. 아빠 때문에 두려움과 혐오의 감정으로 똘똘 뭉쳐 있던 세 사람은, 아빠가 떠나고 나자 밖으로 터져 나오는, 독성 가득한 묵은 찌꺼기들을 목도하고 있다. 그리고 이제야 나는, 그간 내가 허황된 기대를 품고 살았음을 깨우치고 있다.



생각이나 가치관이 너무도 다른 것은 차치하고서라도, 타인과의 관계와 확연히 차별화되는 깊은 애정과 유대가 없음을 미처 알지 못한 채, 겉으로는 별문제 없이 잘 지내고 있는 척 지금까지 온 것 같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이것이 지금 내가 겪고 있는 현실이다.

결혼한 형제야 어차피 거의 타인과도 같은 존재이니 큰 미련 없이 마음을 접고 살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홀로 잘못될까 무서워서 이제 독립할 생각조차 못하고, 아빠가 끊어낸 사회적 관계 때문에 어디 갈 곳도, 오라고 하는 이도 없는 엄마를 어떡하나, 아빠의 죽음 이후에도 별반 나을 것 없는 여생을 보내고 있는 엄마와 언제까지고 이렇게 지내야 하나 하는 생각이, 일상의 순간에 불쑥불쑥 곁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이제 나도 '내가 선택한' 가족에 집중하고 싶다는 바람. 엄마 때문에 겪는 불편함과 괴로움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 그럼에도 엄마의 생이 안쓰럽고, 홀로 지낼 엄마는 불안하고 걱정스럽다는 마음. 요즘 이러한 감정들이 내 안에서 소용돌이치고 있다.

알고 있다. 결국 나도, 이 사회가 내게 지운 가족이라는 이름 밖으로 쉬이 넘어서지는 못하리라는 것을. 그래서일 거다. 내가 생각하고 원하는 가족의 의미를 찾아서 안착하고 싶은 마음이, 오래전부터 의무감으로 이어져온 가족보다, 마음으로 유대하는 가족에 오롯이 내 삶을 내주고 싶은 바람이 더 간절해지는 이유는.






매거진의 이전글 우리의 동거는 계속될 수 있을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