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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둥그레 Apr 11. 2019

02. 파혼 후, 이제 뭘 해야 하지?

일단 멈춰서도 괜찮아

 그렇게 결혼은 파토가 났고, 짧은 드라마 같던 내 결혼 준비는 싱거운 결말과 함께 조기 종영했다. 6개월이 넘는 기간을 결혼 준비라는 목표 하나만을 보며 달려왔는데, 불안불안하기는 했지만 이렇게 정말 끝나버릴 줄이야. 망연자실함도 잠시, 결혼식이 얼마 남지 않은 시기였던 만큼 처리해야 할 리스트가 쌓여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정신에 어떻게 해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 모든 것들을 파혼 다음 날에 끝내 버렸다. 오히려 너무 속상해서 빨리 해치워 버리고 쉬고 싶은 기분이었던 것 같다. 


 일단 예식장과 본식 스냅(사진 촬영)은 ‘전’ 예비 신랑이 연락해서 취소 처리했고, 호텔 측에서 미안한 목소리로 확인 전화를 걸어왔다. (당사자의 본인 확인이 필요하다는데, 예비 부부들이 싸우고 홧김에 예식장 취소 신청했다가 번복하는 일을 막기 위한 절차인가 싶다.) 그리고 100% 환불 기간인 60일에서 이틀이 모자라다는 이유로 취소 수수료를 받아 갔다. 정확한 금액은 기억이 안 나지만 견적서에 적힌 예상 총액의 20% 정도였다. 그리고 허니문 여행사에 연락해 계약금에서 취소 수수료를 제외한 금액을 정산해 주길 요청하고, 담당 웨딩 플래너와 연락해서 스드메(스튜디오+드레스+메이크업) 패키지에서 본식 관련 비용을 제외한 견적서를 요청해 차액을 돌려받았다. 그 밖에도, 따로 검색해서 계약했던 본식 영상 촬영에 대한 계약을 해지하고, 혼주 한복 가봉을 취소하고, 미리 사둔 가전과 가구를 환불 처리하고……. 실제로 모든 비용이 정산되기까지는 2주 정도 소요되었지만, 준비 기간에 비해 신청 과정은 너무 짧아서 허무할 정도였다. 아, 웨딩 스튜디오에 연락해서 촬영한 사진 원본과 앨범, 액자를 폐기 처리해 달라고도 했다. 돌이켜 보니 가장 마음 아픈 순간들 중 하나였던 것 같다. 


 그리고 그와 메신저로 짧은 작별 인사를 주고받았다. 파혼 당일, 침대 환불 처리에 필요할 거라고 사은품으로 받았던 방수 매트리스 커버를 건네어 주고 떠나간 그의 목소리는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았다. 마지막까지 우리 결혼의 실패 원인을 나에게 돌렸던 그에게 더는 일말의 미련도, 아쉬움도 남아있지 않았다. 오히려 그동안 이미 가족인 듯이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여 주셨던 그의 부모님과 이별해야 한다는 사실에 눈물이 차올랐다. 혹자는 ‘너에게 그렇게 상처를 준 그 사람을 키워낸 부모인데 어떻게 그런 마음이 드냐’고 하였지만, 글쎄, 나의 부모가 완벽할 수 없듯이 그의 부모도 그랬다고 생각했기에 원망스럽지는 않았다. 오히려 자식의 부족함까지 끌어안고 보듬어 주어야 하는 것이 부모이기 때문에 그 분들이 앞으로 보낼 힘든 나날에 대해 마음 아파했다. 그래서 그 마음을 꾹꾹 눌러 담아 어머님께 장문의 메시지를 남김으로써 그 죄송함을 서툴게나마 갈음했다. 


 “어머님, 아버님.. 그동안 부족한 저를 많이 아끼고 위해 주셔서 너무 감사했습니다.. 이제는 이렇게 부르는 일도 더는 없게 되었네요.. 이미 모든 것이 끝나버린 상황에서 이렇게 연락을 드리는 게 옳은 결정인지 사실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마지막으로 문자로나마 두 분께 인사를 드리는 게 최소한의 도리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좀더 일찍, ** 오빠의 마음을 더 깊이 헤아리지 못하고 힘들게 해서 정말 죄송합니다.. 싸우고 화해하고 하는 것도 모두 앞으로 잘 지내기 위한 과정일 줄 알았는데, 그 과정을 겪어내면서 오빠가 너무 많이 지친 것 같아요.. 돌이켜보니 저도 그랬던 것 같구요… … 너무 말이 길어졌네요.. 부디 항상 건강하세요.. 곤란하시면 답장은 안 주셔도 괜찮아요.. 안녕히 계세요…”

 “소중한 인연 끝까지 함께 하지 못해 … 언제 어디서든 항상 행복하길 기원할게… 힘내고…”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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