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편의점에 나가 앉아있으면 돈 주고도 못 보는 인간군상을 감상하는 재미가 있다. 그중 콘돔 구매자들이 제일 재미있으며 그들의 원초적 본능으로 발생하는 교훈을 얻는 것도 보람찬 일이다.
다음의 세 장면은 모두 실화다. '실화를 바탕으로 하였으나 일부 허구임을 밝힌다'는 영화 자막처럼 치사하게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 필요가 없는 백 퍼센트 보증할 수 있는 경험담이다.
# 01. 한 젊은 아주머니가 부리나케 뛰어 들어온다. 선선한 날인데도 얼굴에 온통 땀이다. 내 얼굴은 보지도 않고 매대로 가며, "아저씨 콘돔 어딨어요?" 하기에 "거기 앞에 있네요?" 했더니 얼른 하나 들고 와 계산하고는 쏜살같이 사라진다. 뭐가 그리 바쁜지 상의 속옷이 뒤로 쑥 빠져 있다. 만사 불여튼튼이라고, 매사에 늘 준비된 자세가 필요하다는 교훈을 얻는다. 일을 저지르고 나서 해결하는 건 힘들기도 하지만 때론 무르익은 분위기도 깨진다.
# 02. 대학생쯤으로 보이는 젊은 여자 손님이 콘돔 매대 앞에서 기웃기웃한다. 물어보면 부끄러워할까 봐 못본척 하고 있는데, "사장님, 사정을 늦출 수 있는 콘돔이 있다는데 어떤 거예요? 한다. 글쎄, 그런 게 필요가 없었기에 나도 잘 모른다. 그래서 대답했다. "글쎄요, 저는 안 쓰고도, 아, 아니 안 쓴 지 오래돼서요..."
아 다르고 어 다르니 말은 늘 조심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는다. 또한 상대는 늘 내 선입견보다 앞서 있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는 교훈도.
# 03. 젊은 남녀가 함께 들어와 고른다. 한 참 고르다 남자가 하나를 집어 들고 이게 좋겠다 하는데, 가장 싼 제품이다. 여자는 "왜 젤 싼 거를 골라, 여기 좋은 거 많은데!" 한다. 나는 속으로, "쪼잔한 넘. 아낄 게 따로 있지, 헤어져!" 하고 싶었다. 중요한 순간에 사용하는 중요한 물건에는 돈을 아끼면 안 된다. 그거 아끼는 쫌팽이 같은 남자는 문제가 있다는 교훈. 중국이 인구가 많은 건 싸구려 메이드인 차이나의 문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 04. 젊은 부부가 들어와 하나를 골라 계산대에 놓더니 "이것도 유통기한이 있거나 직사광선을 피해야 하나요?"해서, "네, 유통기한은 있어요. 하지만 직사광선은 잘 모르겠네요" 했더니, 여자가 남자에게, "거 봐, 이것도 유통기한 있다잖아. 그럼 직사광선에 상할 수도 있을거야" 한다.
용품의 특성상 어두운 밤 실내에서 주로 사용하므로 직사광선은 피하는 것이 안전하겠다는 생각은 든다. 하긴 직사광선이 내리쬐는 야외에서 대낮에 사용하면 위생적으로나 도덕적으로나 위험하지 않겠나. 한 번도 생각 못한 창조적인 질문이다.
어디서나 누구에게서나 배울 게 있으며 깨달음은 보리수 아래뿐 아니라 주택가 편의점에 쭈그리고 앉아서도 얻을 수 있다. 배움에는 왕도가 없다. "Οὐκ ἔστι βασιλικὴ ἀτραπὸς ἐπὶ γεωμετρίαν!" 편의점이 없던 시절임에도 일찌기 그리스의 수학자 유클리드 선생이 하신 말씀이다. 당신이 복붙한 그리스어를 읽을 줄은 아느냐 묻는다면, 읽을 줄 아는 자만 옮겨 적을 수 있는 것이 아니오, 무릇 배우고자 하는 자는 부끄러움이 없어야 하느니, 라고 말 해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