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컴 투 X-월드
엄마는 왜 아빠가 돌아가신 후에도
시월드에서 나오지 않는 걸까?
구로동 집에는 나, 엄마 그리고 친할아버지가 산다.
12년 전 아빠가 돌아가신 후에도
엄마는 시아버지를 모시고 산다.
희생하는 엄마를 보고 자란 나는 결혼이 싫다
(출처 : 다음영화 movie.daum.net)
아빠가 돌아가신 지 12년이 지났는데도 할아버지와 함께 살다가 인생 첫 독립을 준비하는 엄마. ‘엄마는, 우리는 왜 할아버지와 함께 사는 걸까’라는 질문으로 시작한 영화는 할아버지의 갑작스러운 분가 제안으로 변곡점을 맞는다. <반짝이는 박수소리><버블 패밀리><어른이 되면> 등 자신의 가족을 주인공으로 삼은 자전적 다큐들의 가장 큰 무기는 역시나 보석같은 캐릭터다. 이 영화의 주인공 ‘엄마’ 최미경님 역시 등장과 함께 관객의 마음을 빼앗는데, 그 바탕엔 그녀가 베푸는 따뜻한 마음이 있다. 딸에게도, 시부모님에게도, 심지어 이름도 가물가물한 시댁 친척에게도 아낌없는 정과 사랑을 베풀면서도, 한편으론 십수년을 모신 시아버지와 다음 세상에선 모르는 관계로 태어나고 싶다니 너무 인간적이지 않은가.
영화는 시아버지와 함께 사는 며느리로서의 이야기보단 50대의 엄마가 사별 이후 처음 도전하는 신체적, 심정적 독립 성공기에 가까운데, 적은 돈을 가지고 이 동네 저 동네 전셋집을 구하러 다니며 마주하게 되는 부동산 업계의 비정함과 계약 성사, 이사와 집 꾸미기의 기쁨은 한번쯤 집 떠나 살아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감정이다. 영화 초반 결혼하지 않겠다는 딸에게 나이차이가 많이 나도, 외국인이어도, 심지어 상대가 재혼이라해도 결혼은 꼭 하라고 하던 엄마는, 결혼 후 너무 달라져버린 당신의 인생을 후회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영화가 끝나갈수록 엄마의 얼굴은 점점 반짝반짝 빛난다. 당신의 힘으로 일궈낸 새 집에서 엄마는 앞으로의 인생에 더 많은 경험을 더해가며 살아갈 것이다.
<웰컴 투 X-월드>는 엄마와 딸의 관계로부터 시작된 한 가족의 연대기를 넘어, 물음표로 가득한 모든 여성들의 세계를 담아낸 영화다. 경력단절, 독박 육아, 시월드, ‘맘충’이라는 비하까지, 결혼으로부터 파생되는 여성의 삶은 그 이전의 세상과는 비교할 수 없는 새로운 영역이다. 딸 같은 며느리, 지고지순한 아내, 친구 같은 엄마의 역할을 모범적으로 수행해온 엄마가 안타깝지만 그런 엄마의 삶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게 되는 딸의 변화 과정은 이러한 사회 구조의 바탕 안에서 이해할 수 있다.
(출처: 다음영화 movie.daum.net)
시종일관 솔직하고 따뜻한 시선으로 엄마를 관찰한 감독은 성실한 관찰자이자 딸로서 영화 속 훌륭한 감초로 활약한다. 지방의 먼 시댁 친척 결혼식에 가겠다는 엄마에게 몇 년을 못 만났는데 거기 가도 외톨이일거라고 만류하던 딸은, 결혼식장에서 너무나 환대 받는 엄마의 모습을 보며 자신의 생각이 틀렸음을 깨닫는데 이런 사건들이 엄마를 더욱 이해하게 하는 시간이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우리는 ‘엄마’로서의 엄마만 알고 있을 뿐, 그녀도 한 명의 사람으로서 수많은 결을 가진 인생을 살고 있다는 걸 생각보다 자주 잊곤 한다. 엄마의 음식 솜씨, 살림 솜씨보단 여성으로서 앞 시대를 살아온 인생 선배로서 알려주는 삶의 교훈 같은 걸 더더욱 많이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 기회가 된다면 친구보단 가족과, 가족 중에서 엄마, 여자 형제들과 본다면 영화가 끝난 뒤 나눌 대화가 더 많을 것 같다.
웰컴 투 X-월드 Welcome to X-world
한태의 / 81분 / 다큐멘터리 / 한국 /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