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나도극장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나영 Sep 10. 2020

영화관의 역할이란

2020 EBS 국제다큐영화제 - 시네마 파미르

코로나19로 인해 많은 영화제들이 휴식 또는 축소되었다. 축소의 방법에는 상영 장소나, 관람 인원의 조정뿐만 아니라 온라인 상영이란 새로운 방식도 등장했다. 온라인 영화제로 바뀐 덕분에 까맣게 잊고 있다가 지나가버린 영화제도 있지만, 오히려 한동안 소홀했다가 오랜만에 다시 챙겨본 영화제도 있다. 8월에 있었던 EBS국제다큐영화제(EIDF)도 그렇다.


매년 8월 진행되는 EBS국제다큐영화제는 올해로 17회를 맞았다. 영화제 기간 동안 EBS 정규 방송에서 연속으로 다큐멘터리 영화를 방영하고, 방영 후에는 다큐멘터리 전용 VOD 서비스인 D-Box(https://www.eidf.co.kr/dbox)에서 일정 기간 동안 무료로 영화를 공개한다. 집에서 편하게 TV로 볼 수도 있고, 본방송을 놓쳤다면 원하는 시간, 원하는 장소에서 D-Box를 통해 작품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올해 EBS국제다큐영화제에서 챙겨 본 영화 중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영화인 <시네마 파미르>를 소개한다.



이 영화는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이 자신을 둘러싼 전쟁을 피해 매일의 삶에서 도피하고 꿈꾸기 위하여 찾는 한 영화관에 대한 이야기이다. <시네마 파미르>는 카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통해서 오늘날의 아프가니스탄을 들여다본다 (출처:EBS국제다큐영화제)


아프가니스탄이라 하면 여전히 탈레반이 먼저 생각나는, 테러와 분쟁 말고는 훅 떠오르는 정보가 없는 나라다. 하지만 이미 탈레반은 축출되어 국경 근처에서만 활동하고 있으며, 수도 카불은 오랜 전쟁을 벗어나 조금씩 재건을 꿈꾸고 있다.


국가 재정도 넉넉하지 않으며 여전히 종종 폭탄 테러가 일어나는 등 치안이 불안정한 곳이지만, 그곳에도 영화관이 있고,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오랜 전쟁과 분쟁으로 교육 수준이 떨어진 도시에서 영화관은 학교이며, 영화는 교재의 역할을 한다고 믿는 극장 직원. 테러로 많은 것을 잃은 뒤 삶의 고달픔과 슬픔을 달래기 위해 영화관을 찾는 단골손님. 그리고 영화관이 많이 생겨서 사람들이 웃고 즐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영화관 사장, 간식 판매원, 영화 수입 업자 등등. 나와는 너무나 먼 곳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지만, 한 명 한 명에게 영화가, 또 영화관 파미르가 어떤 의미인지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었다


탈레반 치하에서 모든 극장은 폐쇄 조치를 당했고, 어려운 시간을 지나 다시 문을 연 시네마 파미르의 풍경은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영화관 풍경과는 조금 다르다. 입장할 때는 소지품 검사가 필수로, 어둠을 틈타 비행을 저지를 수 있는 물품들을 압수한다. 모두가 영화에 집중하고 있는 동안, 앞자리에 발을 올리고 보는 사람이 있다면 관리 직원은 손전등으로 비추며 당장 발을 내리라고 소리친다. 물론, 이렇게 엄격하게 관리하면서도, 적외선 카메라에 잡힌 극장 2층 구석에서 사랑을 속삭이는 연인에 대해서는 관용을 베푸는 훈훈한 순간도 있다.

 

영화 후반 시네마 파미르에서는 코란을 부정했다는 누명을 쓰고 광장에서 집단 폭행을 당해 억울하게 희생당한 아프가니스탄 여성 파르쿤다의 실화를 다룬 영화를 상영한다. 그때까지 시네마 파미르를 찾는 관객들 중 여성의 비율이 현저히 적었기 때문에 아프가니스탄은 여성들이 공공장소에 나올 수 없는 분위기인가 생각했는데,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꼭 보았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하는 직원들이 멋있어 보였다. 이 영화를 통해 사회적 약자인 여성 인권을 논하기보단 이슬람교의 이름으로 자행된 폭력을 반성하자는 의도였을 수도 있지만, 단지 영화로 돈을 벌자는 것이 아니라 영화와 영화관이 관객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너무 잘 알고 있고, 이를 긍정적으로 활용하려는 의지가 너무나 잘 드러난 프로그래밍이었다.


<파르쿤다> 상영 당일에는 영화 내용에 반대하는 이들의 테러에 대비해 경찰들이 등장했을 정도로 긴장감은 흘렀지만, 영화 상영은 무사히 진행되었다. 영화를 보고 누군가는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한다면 그것만으로도 시네마 파미르의 시도는 성공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영화를 보는 관객들의 눈빛과 표정을 보니 그들의 시도는 헛되지 않아 보였다.


"시네마 파미르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모두의 공간이니 소중하게 사용해주십시오"


또다시 관객들이 하나 둘 상영관으로 모여든다. 다시 시네마 파미르가 문 닫는 일 없이, 지켜내고자 하는 영화관의 역할을 잃지 않고 잘 운영되었으면 좋겠다.




(사족) 코로나 시대를 지나며, 항상 당연하게 생각하던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 행위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깨닫는다. 캄캄한 상영관 안에서 나와 영화만 존재하는 그 시간과 공기를 바이러스에게 빼앗긴 지금, 좌석을 가득 채우고 함께 웃고, 집중하고, 오롯이 스크린을 마주하고 있는 사람들의 눈을 볼 수 있어서 이 영화가 좋았다.  우리에게도 다시 언제든지 마음 편하게 영화관으로 달려갈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시네마 파미르 Cinema Pameer

마틴 폰 크로그 Martin von Krogh  / 80분 / 다큐멘터리 / 스웨덴 / 2020

* 2020년 9월 10일 현재, 앞서 소개한 D-Box에서 월 구독권 결제 후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