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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로롱도로롱 Feb 22. 2024

신규교사가 바라본 퇴임식


종업식은 정말 한 해를 마무리하는 날이다. 학생 때는 그냥 일찍 끝나는 날이었는데, 교사가 되니 여간 바쁜 것이 아니다. 맡은 반의 생활기록부를 마감해야 하고, 다른 학교로 떠나는 동료들에게 작별의 인사를 건네어야 하기 때문이다. 다른 학교가 아니라 이젠 집으로 떠나는 선생님들을 보내는 것도 주된 일 중 하나이다. 퇴직엔 정년퇴직과 명예퇴직이 있다. 어쩌다가 명예란 말이 붙은 지는 모르겠지만 정년 전에 퇴직을 하시는 것을 명예퇴직이라고 한다. 우리 학교에서도 정년퇴직자가 한분, 명예퇴직자가 두 분 계셨다.


한 분 한 분 나와서 이야기를 하는데 명예퇴직을 하시는 Y선생님이 마이크를 잡았다. 당신께선 더 이상 학생들과 나눌 에너지가 만들어지지 않아서 교편을 내려놓으신다고 하셨다. 그래서 앞으로는 무엇을 해야 하나 라고 생각했는데, 분명 자신은 열심히 살았으나 앞으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 뾰족하게 떠오르는 것이 없어, 사실 잘못 살아 온것이 아닌가 하는 고민을 하셨단다. 이야기를 듣고 눈시울이 붉어진 분들도 계셨다. 나는 그렇지만 감정이 거세된 사람이기에 Y선생님의 말을 듣고 오만가지 잡생각을 해버렸다.


 학생들과 나눌 에너지가 만들어지지 않는 점은 슬프지만 현실적이었다. 오히려 나는 이것이 명예퇴직조차 할 수 없는 젊은 날에 올까 더욱 두려웠다. 하지만 더 생각의 잔상이 오래 남은 것은 자신이 잘 살아온 것이 맞는가에 대한 고민이었다. 자신이 어떤 교사로 살아왔는지, 혹은 어떻게 살아왔는지에 대한 가장 깊은 고민은 그것이 종료될 때 하게 된다. 정확히는 그때가 되어서야 결정되게 된다. 시험 종료종이 울려야 우리의 성적을 알 수 있듯, 그전까지는 모두 물음표의 성적을 갖게 된다. 인생이 슈뢰딩거의 고양이 같이 느껴지는 점이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채점자가 본인이기 때문에, 고민에 결과가 어떻든 후하게 점수를 주는 편이 좋을 터다. 내가 잘 살아왔나, 좋은 교사였나 퇴직식에 고민이 든다면, 이 정도면 잘한 편이다. 하고 넘겨짚어 생각하는 편이 나에게도 좋을 것이다.


정년퇴직을 하는 L선생님은 메신저에 자신의 소회를 미리 보내놓으셨다. 본인을 무척 낮추셨으나, L선생님 정도의 교사가 되는 것도 무척 힘들며, 그조차 못하는 사람도 많다는 것을 알기에 이렇게라도 마음이 편해지신다면 좋은 거지 뭐 하는 마음으로 읽었다. L선생님 역시 많이 이야기를 나눠보진 않았지만 유머의 힘? 같은 점을 만날 때마다 느낄 수 있었다.


다음은 명예퇴직 하시는 K선생님이셨다. 마지막날에도 가죽자켓을 입으신 게 낭만적이었다. 평소에 락 밴드 티셔츠를 자주 입으셔서 관심을 갖고 있었는데 친해지지 못한 것이 아쉽다. 이분은 가족분들이 참여하셔서 상패를 드리고 아내분과 어머님도 함께 사진을 찍었다. 그야말로 모범적인(?) 퇴임식이다. 아들이 상패를 읽을 때, 뭔가 다소 전형적이라고 생각한 문구들이었지만 많이들 눈물을 훔치셨다. 예상했듯 나는 또 오만가지 생각을 했다. 이번엔 가족에 대한 생각이었다. K선생님의 삶을 자세히 듣진 않았지만, 회사를 다니다가 교사를 하셨고, 으레 그렇듯 그런 큰 결심에는 많은 고민이 따른다. 무언가를 포기하고 선택한 길에는 평생 포기한 것이 그림자처럼 따르기 때문이다. 직업을 떠나 예순 가까이 살면 또 수많은 고통의 순간,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있었을 것이다. 그럴 때 저기 서 있는 가족이란 것은 경주마에게 채찍, 쓰러진 소에게 낙지 같은 존재일 것이다. 포기하고 싶어도 포기하지 못하게 하는 무언가라면 부정적일 수도 있지만, 끊임없는 원동력이라고 생각하면 긍정적이다. 만약 내가 가족을 만들지 않는다면? 포기의 자유를 얻지만 원동력이 없을 것이다. 무언가 어렴풋이 자유가 가져오는 공허함을 생각했다. 그래서 사람들이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고 기르는 것인가 하는 생각을 했다.


퇴임식 말미엔 K선생님이 준비해 오신 노래를 하셨다. 자신의 휴대폰에서 나오는 자그마한 반주에 맞춰 봄여름가을겨울의 '브라보 마이 라이프'를 부르셨다. 정말이지 탁월한 선택이다. 다들 따라 부르기도 쉽고, 작은 반주에 대비되는 큰 목소리가 웃음을 자아냈다. 그렇게 다들 웃었다. 그들을 축하했는가? 위로했는가? 그런 것도 아니고 나는 그저 남의 잔칫집에 온 사람처럼 앉아서 오만가지 생각을 하다가 웃다가 끝난 것이다. 그 정도면 좋은 마무리라는 생각이다. 박수칠때 떠나며, 웃으며 작별하는 것은 언제나 내가 바라는 이별의 모습이다. 연인이건 가족이건 차치하고 말이다. 그럼에도 30년, 40년을 몸담은 곳에서의 작별이 이렇게 오전에 한 시간 정도 웃다가 울다가 끝나는 것이 아쉽기는 하지만 "허무한 것이 또 삶 아니겠는가~" 하는 개똥철학으로 마무리하겠다.


PS. 아마 이 글을 읽으실 리가 없어서 좀 예의 없이 쓴 것 같습니다. 꽃길만 걸으시라는 말은 제 기준에서 너무 오글거려 하지 못하겠으니 건강하고 걱정 없이 지내시다 우연히 인사라도 한번 할 수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을 것 같습니다~


https://youtu.be/0xG_ZOAEv18?si=ZhvvoYthmI444GT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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