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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철현 Jun 27. 2023

맨해튼을 걸으며 선아와 보낸 뉴욕의 가을을 추억하다

6월26일(월) 비 오는 뉴욕, 걷고 먹고 마시고 즐겼다

늦잠 잤다. 전날 오후 9시 전 자기 시작해 새벽 3시에 깼다. 발코니로 나가 새벽의 맨해튼 웨스트 31번가를 

내려다봤다. 차는 여전히 달리고 있고 24시간 영업하는 가게는 불을 밝히고 있었다. 맨해튼은 잠들지 않는 곳이다. 노트북을 열고 지난 100일간 여행을 요약 정리했다. 방대하다 보니 엘찰텐에서 중단했다. 토레스델파이네부터는 다음 달 쓴다. 날마다 조금씩 쓰고자 한다. 다시 졸음이 몰려왔다. 2층 침대로 올라가 누웠다. 맨해튼 웨스트 31번가에 자리한 한인민박의 도미토리룸은 좁지만 편리했다. 맨해튼에 잠시 머무는 여행객에게 최적인 듯하다. 숙박비가 상대적으로 저렴했고 펜실베이니아 역 근처라서 록펠러센터,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 에지, 센트럴파크, 소호까지 도보로 다녀올 수 있었다. 걷기 좋아하고 고급 호텔을 싫어하는 나에게는 최적의 숙소다.

오전 10시 숙소를 나왔다. 비가 내렸다. 숙소 1층 로비에 있는 프런트 데스크 직원이 지난 일주일 동안 닷새가 비가 오고 있다고 투덜거렸다. 숙소 근처 기념품 가게에서 15달러 내고 우산을 구입했다. 그냥 맞기에는 많이 내렸다. Pick A Bagels까지 걸었다. 뉴욕에서는 베이글을 먹으라는 친구 성희의 권유에 따르기 위해서다. 스트로베리 크림치즈를 듬뿍 담은 에브리싱스 베이글을 먹었다. 크림치즈 특유의 달짝지근하고 느끼한 맛이 베이글에 붙은 깨의 고소한 맛과 어울렸다. 뜨거운 커피를 마시며 창밖을 내다보고 있자니 비가 멈췄다. 센트럴파크에 가자. 10여 년 전 선아와 함께 걷던 센트럴 파크를 다시 걷는다. 해가 다시 나왔으나 비 젖은 맨해튼 거리는 아직 덥지 않다. 

센트럴파크 남쪽으로 들어갔다. 도심 중앙에 이런 공원이 있다니 뉴요커가 부러웠다. 나무들 사이로 고층 건물이 보이고 잔디에는 주인 손에 끌려 나온 개들이 배를 하늘로 깐 채 퍼져 있다. 벤치에는 기타 치는 중년 남성부터 사색에 잠긴 미녀까지 갖가지 자태로 벤처를 차지하고 비가 오락가락하지만 귀에 무선 이어폰을 끼고 요가복 입은 남녀가 공원 순환도로를 따라 뛴다. 노부부가 나란히 손잡고 지나고 학생들을 이끄는 선생님은 고래고래 소지 지른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으로 향하면서 센트럴파크를 대각선으로 가로질렀다. 연못 앞에서 비가 쏟아졌다. 다리 밑에서 거리 예술가의 연주를 들으면서 비가 그치길 기다렸다. 

해가 다시 나자 서둘러 메트로폴리탄 미술관까지 걸었다. 미술관 앞에 도착하자 해가 쨍하게 비췄다. 미술관 계단에 앉아 길거리 음식 카트에서 산 핫도그를 먹었다. 미술관 안에서 다음날 갈 명소의 표를 예약했다. 록펠러센터 전망대를 일컫는 톱오브락은 내일 오전 10시, 메트로폴리탄 도슨트투어는 오후 1시, 엣지 전망대는 모레 오전 10시로 예약했다. 자유의 여신상 랜드마크 투어는 내일 오후 매표소에 가서 모레 오후 1시로 예약하려 한다. 

시내 투어 일정이 정해지자 지하철을 타고 브루클린 다리로 갔다. 브루클린 다리는 하루 1만 명 이상이 걸어 넘는다고 한다. 1만 명 중 하나가 되었다. 이 석조 다리를 1872년 세웠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당시 조선은 중세 봉건시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세도정치에 휘둘리며 망해가고 있었는데. 브루클린 쪽 강변에 있는 덤보에서 브루클린 다리를 올려다보았다. 사진 촬영 포인트라고 관광객들이 북적거리는 곳이다. 브루클린 다리는 아래서 위로 보아야 한다나. 뉴욕 관광객으로서 할 짓은 다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뉴욕은 여러 차례 왔지만 일만 하고 돌아가다 보니 뉴욕에 뭐가 있냐고 물어보면 답할 게 없었다. 관광객 모드로 돌아서자 뉴욕에 이리 볼 것과 할 것이 많은지 새삼 깨달았다. 이참에 관광객으로서 할 짓은 다하고 가야겠다. 

28일 저녁에는 웨스트빌리지에 있는 재즈 카페에 간다. 2년 전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만난 브라이스 홉과 만나 재즈 공연을 보기로 했다. 브라이스 홉은 남자친구를 데리고 나온다고 한다. 홉 남자친구는 한국 교포로 미국 뉴욕에서 생명공학을 연구하는 인재다. 사진으로만 봤고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통화만 했다. 홉이 홀딱 빠진 남자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다. 홉은 미국 영화배우 아만다 사이프리드를 닮아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을 때 여러 나라에서 온 남자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덤보까지 넘어가 브루클린 다리를 올라다 보고 강 건너 맨해튼을 직관한 뒤 맨해튼으로 넘어왔다. 허드슨30 빌딩 4층에 들러 엣지 전망대의 방문 날짜와 시간을 확정했다. 이곳에서 쉑쉑버거를 먹었다. 미국에서 온갖 햄버거 브랜드를 섭렵했다. 서부에서는 인앤아웃, 중서부에서는 파이브가이즈, 동부에서는 쉑쉑버거를 맛보았다. 파이브가이즈 완승. 버거 맛이 좋다. 무엇보다 감자튀김의 질이 확실히 낫다. 3개 햄버거 브랜드를 젖힌 내 원픽은 치폴레다. 고기, 콩, 야채, 소스를 입맛대로 고를 수 있는 퓨전 멕시코 음식이다. 야채가 많아 건강에도 좋고 식감도 훌륭하다. 나스닥에 상장된 치폴레의 주가가 날마다 오르는 이유를 알겠다. 치폴레 주가는 오늘이 가장 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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