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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철현 Aug 17. 2023

LA부터 뉴욕까지 8000km 미국 횡단 1편

미국 12개주 지나며 레드우드, 요세미티, 옐로우스톤 등 방문

LA서 할리우드부터 그리피스까지 산길을 걸어서 넘다


로스앤젤레스에는 취재차 여러 번 다녔다. 박찬호 선수 활약을 취재하기 위해 1998년 다저스타디움 안에만 돌아다니다 한국으로 돌아갔다. 그 뒤 두세 번 다녔지만 역시 인터뷰 마치고 서울로 돌아갔다. 여행객으로서 로스앤젤레스에 오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민박집주인에게 물었다. 로스앤젤레스에서 나흘 머문다면 어디 다녀와야 하냐고. 그랜드캐년 림투림 코스를 트레킹 할까 고려했지만 단독 주파는 위험하다고 판단했다. 그랜드캐년 북쪽 림에서 출발해 콜로라드 강까지 내려와 다시 남쪽 림으로 올라가는 코스는 총 14시간 걸리고 6월 초 콜로라드 강은 섭씨 38도를 웃도는 찜통이라 혼자서 걸어 넘기는 위험하다고 만류했다. 나중에 친구들과 조를 나눠 2명은 북쪽 림에 주차하고 출발하고 다른 2명은 남쪽 림에 주차한 뒤 계곡 하부로 내려와 콜로라도 강에서 만나 키를 교환하는 방식으로 림투림 트레킹 하기로 마음먹었다.

민박집 사장은 첫째 날은 할리우드 사인보드까지 걸어 올라간 뒤 그리피스 천문대까지 산길을 트레킹 하고, 둘째 날은 산타모니카 해변에 가서 베니스 비치와 애봇키니를 둘러보고 셋째 날은 UCLA와 게티센터를 구경하라고 권유했다. 6월 2일 오전 큰 마음먹고 전문가용 카메라 소니 알파 7을 구입한 뒤 할리우드 사인보드를 향해 출발했다. 숙소에서 210번 버스 타고 할리우드대로까지 간 뒤 할리우드 사인보드가 서 있는 산을 향해 걸었다. 할리우드 스타들 이름이 적힌 별들을 밟고 산을 향해 씩씩하게 걸었다. 오르막으로 접어들자 숲 속에 나뭇잎으로 도배한 집부터 큰 나무 주위에 펜스를 치고 식탁을 두른 집까지 멋진 집들이 산길 옆으로 따라 올라왔다.

한 시간쯤 걷자 할리우드 간판이 눈앞에 올려다보이는 공원까지 올라왔다. 위로는 할리우드 사인이 보이고 아래로는 로스앤젤레스 시내가 한눈에 들어왔다. 도심 중앙에 고층빌딩군이 솟아오르고 넓은 평원에 격자 모양으로 집들이 끝도 없이 뻗어 나갔다. 한참 로스앤젤레스 시내를 내려다보다 시계를 보니 오후 5시 45분을 넘어서고 있었다. 산길을 걸어 넘으면 그리피스 천문대로 갈 수 있지만 한 시간 이상 걸린다. 초행길에 산속에서 어둠을 만나면 위험할 수 있다고 판단해 다음을 기약하고 트레킹 길을 되짚어 내려왔다.

한참 내려왔더니 한국인 여성 2명이 벤치에 앉아 우버를 기다리는 듯했다. 코리아타운으로 가면 우버 함께 타자고 마을 걸었더니 그리피스로 간다고 했다. 그래서 우버 타고 함께 그리피스 천문대로 향했다. 여성 2명은 자매로 동생은 뉴욕에서 로스쿨에 다니고 언니는 한국 제약회사에 다닌다고 했다. 동생에게 옷가지 등을 전해주려 왔다가 함께 로스앤젤레스에 여행 왔다고 한다. 자매와 그리피스 천문대를 구석구석 구경했다. 천체 망원경을 통해 반달만큼 커진 금성을 관측했다. 서쪽 전망대에서 석양을 지켜보다 반대편으로 이동해 로스앤젤레스 야경을 내려다보았다.

자매와 함께 셔틀버스를 타고 코리아타운으로 내려와 항아리 칼국수 먹고 헤어졌다. 코리아타운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다 마약에 취한 백인 하나가 자매에게 접근해 말을 걸었다. 본능적으로 그 사이에 끼어들어 자매를 등 뒤로 뺀 다음 사람 많은 곳으로 이동했다. 그 사이 마약 중독자와 정면으로 맞서면서 뒷걸음쳤다. 그 마약중독자는 방향을 틀어 벤치에 홀로 앉은 백인 여성에게 다가갔다. 그 여성은 눈길 한번 안 주고 그 마약 중독자를 무시했다. 불한당이 여성 몸을 여기저기 건드려도 꼼짝 하지 않자 또다시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얼른 그 자리를 피해 버스에 올랐다. 천만다행으로 우리는 밤늦게 항아리 칼국수를 맛있게 먹고 서로에게 감사하며 하루의 동행을 마쳤다.

다음날 숙소에서 만난 투숙객 2명과 함께 산타모니카 해변으로 갔다. 성격 좋고 예쁜 친구들이다. 유쾌하게 태평양 해안을 걸어서 둘러보고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에서 투숙객 4명과 함께 할리우드 사인에 올랐다. 이번에는 우버를 타고 갔다. 할리우드 사인에서 걸어서 그리피스 천문대까지 걸어가는 트레일을 걸었다. 한 시간가량 산 옆구리를 따라 난 산책길을 걷자 멀리 그리피스 천문대가 보였다. 이상기후 탓에 서늘한 바람이 차갑게 느껴지는 로스앤젤레스의 산길을 걸어 그리피스 천문대로 걸어가는 게 상쾌했다. 이번에는 코리아타운에서 감자탕을 먹었다. 로스앤젤레스에서는 먹고 자는 게 한국과 별반 차이가 없다.


다음날 같은 숙소에 묵은 성재와 함께 UCLA에 갔다. 캠퍼스는 넓었고 건물은 깨끗했다. 햇살이 눈이 부시게 쏟아지는 캠퍼스에는 졸업 시즌을 맞아 여기저기서 기념 촬영하는 학생과 가족들이 보였다. 발끝 닿는 대로 캠퍼스 곳곳을 돌아다니다 코리아타운 H마트에서 스테이크 용 소고기를 사서 숙소로 돌아왔다. 중남미 여행과 비교해 로스앤젤레스의 여행은 밋밋했다.


미국 횡단 첫날, 캘리포니아 동부 해안도로 따라 달리다


로스앤젤레스에서 출발 앞두고 악재가 생겼다. 페루 쿠스코부터 왼쪽 복숭아뼈 근처에 보기 흉한 돌기가 자라고 있었다. 손으로 뜯어내다 2차 감염이 됐는지 더 크게 커지며 검붉어졌다. 처음에는 팥알만한 종기 같았으나 점차 자라나 M&M 초콜릿만큼 자라 검붉게 엉겨 붙었다. 얼핏 악성 흑색종처럼 보였다. 코리아타운 내 피부과를 검색했다. 평점이 가장 높은 마이클 김 피부과로 일어나자마자 갔다. 사전 예약 없이 방문한 터라 어렵사리 예약을 잡았다. 존스홉킨스 의대와 하버드 의대를 나왔다고 하니 실력만큼은 신뢰할만하다고 판단했다. 예상은 적중했다. 마이클 김 전문의는 해당 부위를 보더니 사마귀라고 진단하고 바로 제거했다. 진료실에 들어간 지 10분도 지나지 않아 사마귀는 깨끗하게 제거됐다. 

홀가분한 기분으로 렌터카를 인수하고 동행을 픽업한 뒤 바로 캘리포니아 1번 도로를 타고 올랐다. 드디어 21일간 미국 횡단의 장정이 시작한 것이다. 로스앤젤레스 코리아타운에서 산타모니카 해안으로 빠진 뒤 캘리포니아 1번 도로로 진입했다. 왼쪽으로는 태평양 동쪽 바다가 따라왔다. 기후변화 탓에 캘리포니아는 6월 초임에도 춥고 날이 궂었다. 햇빛은 숨었고 바람이 강하게 불었고 기온은 낮았다. 우중충한 날이지만 태평양 동부 해안을 바라보며 쭉 뻗은 해안도로를 달리니 미국 횡단에 들어갔음을 실감했다. 

숙소를 르무어라는 작은 마을에 잡았다. 요세미티와 멀지 않은 곳으로 로스앤젤레스에서 600 km가량 달려야 닿을 수 있었다. 한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말리부 해안이 펼쳐졌다. 오른쪽으로 높은 구릉이 펼쳐진 곳에 집들이 띄엄띄엄 자리했다. 그 자리라면 태평양이 내려다볼 수 있어 경관이 기가 막힐 듯했다. 영화 <아이언맨>에서 주인공 호화주택도 말리부 해안 절벽 위에 자리했다. 싸늘한 날씨에도 바다 위에서 서핑을 즐기는 이들이 많았다. 가야 할 길이 멀다 보니 말리부는 지나치기로 했다. 날이 추워 바닷바람을 맞고 싶지 않았다. 차 안에서 바라보는 말리부 해안의 경관으로 충분했다. 날이 좋은 날 햇살이 쏟아지는 말리부는 천국일 게다. 

말리부를 지나 산타바바라로 향했다. 태평양 쪽으로 선착장이 있고 크고 작은 요트들이 떠 있는 스턴스 부두가 목적지였다. 한 시간 달리니 Stearns Wharf 표지판이 눈에 들어왔다. 나무로 선착장 기초를 만들고 그 위에 나무로 식당과 가게를 올려 오래된 항구의 풍모가 정겹게 다가왔다. 선착장 끝까지 나아가 시야를 막는 방해물 없이 올곳이 태평양과 마주했다. 추위 탓인지 선착장은 한적했다. 동네 청년 2~3명이 낚시를 드리우고 있었다. 관광객으로 북적이는 산타모니카 해변보다 한갓져서 좋았다. 

산타바바라를 지나자 길은 산으로 접어들었다. 산길에 오르자 도로 양쪽으로 초원이 펼쳐지는 듯하더니 키 작은 포도나무들이 가지런히 이어진 포도밭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예상치 못한 장관이었다. 산타모니카나 말리부, 산타바바라를 지날 때는 그 명성을 확인하는 여정이었다면 산길에서 펼쳐진 경관은 기대치 않은 거라 훨씬 인상적이었다. 감탄을 거듭하다 솔뱅에 도착했다. 덴마크 이민자들이 캘리포니아에 세운 덴마크 풍 마을이다. 고향을 떠나온 이민자들이 고향을 잊지 못하고 덴마크 식으로 지붕을 얹고 집의 뼈대를 세우고 마을을 설계했다. 5년 전 덴마크에서 본 마을의 모습이 너른 평지 위에 아기자기하게 펼쳐졌다. 구석구석 돌아다니다 레바논 이민자가 운영하는 카페 돌체에 들어가 서아시아 풍 커피와 과자를 맛보았다. 커피 맛은 강했고 과자는 달았다. 


해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했다. 사위는 빠르게 어두워졌다. 야간운전을 시작했다. 250km 달려야 숙소가 있는 르무어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야간에 낯선 도로를 달려야 했지만 피로감은 멕시코 유카탄반도보다 훨씬 덜했다. 도로가 워낙 잘 정비되어 있고 운전자 친화적이다. 밤이지만 표지판은 눈에 잘 들어왔고 중앙 차선은 선명했다. 밤 10시30분 넘어 르무어 숙소에 들어갔다. 퇴역 미국 해군장교가 주인장인 집 치고는 아주 좋았다. 깨끗했고 거실은 넓었고 침실은 깔끔했다. 우유, 계란, 시리얼, 아이스크림까지 냉장고에 잔뜩 채워놓고 우리에게 맘껏 먹으라고 했다. 최고였다. 

24시간 편의점에서 식수를 사려고 나갔다. 느닷없이 경광등을 켠 경찰차가 뒤를 쫓아왔다. 사이렌 소리도 없고 서라는 경고음도 없어 그냥 갔더니 갑자기 사이렌을 울렸다. 서둘러 인도 옆 차선에 차를 세웠다. 경찰이 다가왔다. 경찰은 낯선 이방인에게 운전면허증을 보여 달라고 하고 어느 나라 사람이고 어디서 왔는지 르무어 방문 목적, 체류 기간, 목적지 등을 세세히 물었다. 내 대답이 끝나자 옆자리에 탄 준수에게도 같은 질문을 물었다. 준수는 이미 패닉에 빠진 얼굴이었다. 버벅 거리며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내가 대신 답하려 하자 동행에게 물어보니 내게는 조용히 하라고 했다. 준수는 당황해 경찰 말을 알아듣지도 못했다. 영어가 유창하지 않지만 이 정도까지 엉망은 아니었다. 어쩔 수 없이 내가 이 사람은 영어를 구사하지 못한다고 말하자 무선으로 여기저기 묻어니 내게 다음부터는 경찰차가 경광등을 켜고 따라오면 무조건 서라고 경고했다. 한국과 달리 경찰차가 따라온다는 건 서라는 지시라는 것이다. 미국에서 처음 운전하다 보니 몰랐다고 변명하자 면허증을 돌려주고 가라고 했다. 식겁했다. 도로주행에서 처음으로 경찰 심문을 받은 경험이란. 겁났지만 짜릿했다.  

첫날 먼 거리를 달려온 데다 이른 아침부터 동분서주한 터라 늦은 저녁식사를 마치고 곯아떨어졌다. 흉측하게 검붉게 돋아난 돌기가 사마귀에 불과하다는 게 다행스러웠고 별 탈 없이 첫날 먼 거리 여행을 안전하게 마친 게 감사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 르무어 거리를 한 시간가량 산책했다. 평범한 미국 시골마을이다. 생활하기 불편하지는 않지만 솔뱅만큼 멋진 곳은 아니다. 다음날 홍일점 나윤이 합류했다. 


미국 횡단 절반의 이유, 요세미티를 만끽하다


르무어 숙소를 출발해 제3의 동행 나윤을 픽업했다. 나윤은 텍사스 오스틴대학에서 토목공학 석사과정을 공부하는 대학원생이다. 방학 맞아 하와이, 알래스카, 시애틀을 여행하고 미국 횡단에 합류했다. 나윤은 기차로 요세미티 국립공원 인근 도시까지 이동해 우리 일행을 기다렸다. 첫인상은 공부 잘하게 생긴 수수한 차림의 유학생이었다. 밝고 언변이 좋아 일행과 봄눈 녹듯 녹아들었다. 당초 우려했던 것과 달리 유들유들한 성격이라 다행이다. 

미국 횡단 절반의 이유, 남쪽 출입구 통해 요세미티에 들어섰다. 내비게이션 목적지를 방문자센터까지 설정해 두었는데 남은 시간은 1시간이 넘었다. 공원 입구부터 중앙까지 차로 1시간 이상 걸리는 공원이라니. 규모가 어마어마했다. 길게 넘은 침엽수들이 줄지어 서서 우리 일행을 반겼다. 구불구불 숲길을 따라 한 시간 넘게 달리자 엄청난 크기 바위가 구름을 이고 길 정면에 나타났다. 엘 카피탄. 바닥부터 꼭대기까지 1천 m 넘게 치솟은, 세계 최대 화강암 바위다. 암벽등반 명소로 남동과 남서 쪽 등반루트에 인간들이 달라붙어 오른다. 

다시 꼼꼼히 보자고 다짐하고 방문자센터로 향했다. 곧 방문자센터가 문을 닫을 예정이라 센터를 비롯해 주요 명소가 몰려 있는 요세미티 밸리로 서둘러 움직였다. 다음날 트레킹 루트 정보를 파악하고 미국 국립공원 여권 스탬프도 받아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가 막힌 광경을 보면 내려서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저 멀리 왼쪽으로 엘 카피탄이 자리하고 맞은편으로 폭포가 한줄기 내리고 그 사이에는 산들이 겹쳐지며 멀어지는 광경이란. 요세미티 최고의 전망이라고 한다. 전망대에 잇댄 인도를 오르내리며 한참 머물렀다. 

문 닫기 직전 방문자센터에 도착했다. 요세미티 폭포 트레일과 버널 폭포 트레일 루트가 가장 아름답다는 정보를 얻고 바로 밖으로 나왔다. 해가 지기 전에 얼른 요세미티 곳곳을 눈에 담고 싶었다. 거칠게 때로는 우아하게 맨살을 드러낸 화강암 바위들이 그 앞에 형성된 늪지 수면에 반사되고 있었다. 고개를 들면 화강암 바위가 압도적인 자태로 다가서고 고개를 숙이면 늪지 위에 어른거리는 화강암 바위가 햇빛을 튕겨내고 있었다. 차를 타고 이동하며 내리는 식으로 공원 곳곳을 염탐하듯 돌아다녔다. 하프돔을 어렵사리 찾아서 직관하고 엘카피탄을 다시 찾아 프리솔로 코스를 보며 전율했다. 

다음날 일행 셋은 쉬운 코스 위주로 여러 곳을 돌아다니기로 했다. 나 혼자 가장 아름답다고 하는 어퍼 요세미티 폴스(Upper Yosemite Falls) 트레일에 오르기로 했다. 요세미티 폭포는 2단이다. 위 폭포와 아래 폭포가 굉음을 내며 하얀 포말과 함께 엄청난 물줄기를 내린다. 지난겨울 강설량이 평소 2배 이상이라 요세미티 정상에는 많은 눈이 쌓여 있는데 비가 내리자 엄청난 물을 쏟아내고 있다. 로어 폴스까지는 20분가량 걸으면 닿을 수 있지만 어퍼 폴스 넘어 폭포가 시작되는 곳까지는 가파란 오르막을 3시가량 올라야 한다. 안내책자에는 왕복 6시간 걸린다고 나와 있다. 

일행과는 로어 폴스까지 동행했다. 로어 폴스도 장관이었다. 서쪽 입구로 들어오는 길에 있던 브라이덜베일 폭포 못지않은 장관이었다. 신부 면사포 폭포라는 이름에 걸맞게 브라이덜베일 폭포는 길게 그리고 우아하게 쏟아져 내렸다. 로어 폴스는 그 위로 어퍼 폴스의 장관을 구름으로 가리고 구름 아래서 느닷없이 물을 내리고 있었다. 굉음이 물과 함께 내렸다. 수학여행 온 일본 학생들이 야생 염소처럼 여기저기 출몰했다. 수학여행을 요세미티로 오다니 복 받은 녀석들이다. 


일행과 헤어지고 어퍼 폴스 트레일 입구 앞에 섰다. 좁은 산길을 30분가량 오르자 오른쪽으로 맞은편 화강암 바위 산이 정면으로 눈에 들어왔다. 올려다보던 거대 바위 산을 눈높이에서 바라볼 수 있어 좋았다. 저 멀리 겹쳐지며 멀어지는 산들이 구름 속에 숨었다 나타났다 하며 내게 숨바꼭질을 하자고 했다. 눈을 깔자 산 앞에 펼쳐진 늪과 숲이 미니 세트처럼 펼쳐졌다. 요세미티 빌리지에 주차된 차량들이 미니카 같고 호텔 안에 있는 수영장이 눈에 들어왔다. 

지상에서는 볼 수 없었던 요세미티의 숨겨진 모습을 재밌어하며 한 시간가량 오르자 어디선가 굉음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굉음을 쫓았다. 숲 사이로 어퍼 폴스가 나타났다. 폭포가 튕겨낸 물이 부슬비처럼 쏟아졌다. 사이렌에 이끌리듯 폭포 쪽으로 끌려갔다. 지각이 깨지는 듯한 굉음을 내며 엄청난 양의 물이 부서지듯 쏟아졌다. 그 원시의 아름다움에 넋을 잃고 쳐다보았다. 반팔을 입고 있어 드러난 팔 위로 폭포물이 맺혔다. 시원했다. 이내 추웠다. 방수재킷을 꺼내 입고 폭포가 시작하는 정상을 향해 걸었다. 폭포를 오른쪽에 두고 오르는 등반이라니. 


폭포를 지나자 안개가 가득했다. 구름 속으로 들어선 것이다. 등산로 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오르막 길을 1시간 30분가량 오르자 짙은 안갯속에 숨은 폭포 정상을 볼 수 있었다. 폭포 물은 거칠 것 없이 흘러 벼랑 끝을 만나면 주저하지 않고 무너져 내렸다. 폭포 물은 벼랑을 만나 낙하하기 전까지 여기저기 바위를 굽이치며 맹렬하게 흘렀다. 안개가 더 짙어졌다. 자칫 하산길을 잃어버릴 수 있어 서둘러 하산했다. 중간에 길을 잃고 헤매다 미국인 등산객들을 만나 간신히 길을 잡을 수 있었다. 달리듯 내려오자 총 등산시간은 4시간이었다. 안내책자에 나온 등산 시간보다 2시간이나 빨랐다. 중남미 트레킹에서 많이 단련됐나 보다. 


요세미티 빌리지에서 일행을 만나 스테이크 용 쇠고기와 맥주를 사서 숙소로 들어갔다. 성재가 해주는 스테이크를 안주삼아 맥주를 2병 마시니 피로감이 갑자기 찾아왔다. 왕복 3시간 운전에다 4시간 산행이 피곤했나 보다. 결국 씻지도 못하고 뻗었다. 새벽 4시 일어나 샤워 마치고 모닝 맥주 한 병 마시며 미국 시골마을 마라포사의 아침을 맞았다. 이 나른한 평화가 좋다.


햇살 가득한 날 버널 & 네바다 폭포에 닿다


요세미티 셋째 날 날이 갰다. 파란 하늘에 옅은 흰구름이 성기게 몰려다녔다. 햇살이 화강암 바위와 수면 위에 화사하게 내렸다. 요세미티에서 하루 더 지내자고 동행을 설득했다. 동행 셋에게 내가 어제 오른 어퍼 폴스를 다녀오라고 권했다. 나는 혼자 버널과 네바다 폭포에 가기로 했다. 버널과 네바다 트레일 코스는 어퍼 폴스 못지않게 아름답다고 한다. 방문자센터부터 트레일 입구까지 걸었다. 트레킹 코스 초입을 찾느라 애를 먹었다. 출발 전에 파파로니 피자를 시켜 먹으며 걸었다.

어렵사리 입구를 찾았다. 여행객들이 삼삼오오 버널 폭포로 향하고 있었다. 오후 2시 오르막 길에 들어섰다. 동행들과 오후 6시 요세미티 빌리지에서 보자고 약속한 터라 서둘렀다. 안내책자에는 왕복 여섯 시간 코스로 나와있다. 네시간만에 주파하려면 잰걸음으로 올라야 했다. 앞서 출발한 여행객을 앞지르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고 버널 폭포가 나타났다. 폭포까지 이르는 가파른 계단길을 한숨에 올랐다. 엄청난 굉음을 내며 쏟아지는 폭포물이 바닥에 부딪치면서 물보라가 올라와 비처럼 흩날렸다. 흠뻑 젖었다. 다른 등산객들은 우비를 입고 올라왔다. 폭포에서 쏟아져 올라오는 물보라는 아주 차가웠다, 초겨울 보슬비를 맞는 느낌이었다. 반팔 셔츠만 달랑 입은 터라 한기가 찾아왔다. 폭포 바닥에서 올라오는 차가운 물보라를 피해 폭포 정상으로 급하게 올라와야 했다.

버널 폭포 정상에 이르자 하늘에는 다시 햇살이 쏟아졌다. 옅은 초록빛 물줄기는 하얀 포말을 내며 격렬하게 흘러오다 벼랑을 만나서 주저 없이 낙하했다. 폭포 밑으로 쏟아지는 푸르고 하얀 물줄기를 위에 내려다보았다. 그 앞으로는 화강암 바위들이 크게 작은 숲을 끼고 겹쳐서 멀어졌다. 그 산세 사이로 하얀 폭포가 한줄기 흘러내렸다. 한참 정상 위에서 노닐다 다시 방향을 위로 잡고 네바다 폭포로 향했다. 등산객들이 뜸해졌다. 버널 폭포까지 보고 내려가는 이들이 많은 것이다. 위에서 내리는 물줄기를 오른쪽에 두고 돌길을 따로 한 시간가량 올랐다. 내려오는 이쁘장한 소녀들이 “정상까지 5분 남았다"라고 개구지게 말하며 지나갔다.

네바다 폭포는 화를 내고 있었다. 엄청난 물을 쏟아냈고 그 충격으로 하얀 포말이 장막처럼 나무들 사이로 떠서 날았다. 등산로까지 포말의 장막이 다가와 몸은 다시 젖었다. 압도적으로 쏟아지는 물의 장막을 쳐다보며 다시 계단을 올랐다. 폭포 정상에 이르자 다시 하늘은 맑아졌다. 햇살은 따뜻했고 바람은 시원했다. 정상에서 더 올라가 폭포로 이어지는 물줄기 옆에 너른 바위에 누웠다. 햇살을 받으며 바람을 맞으며 잠들었다. 바람 한줄기가 소매 속으로 쏙 들어오는 바람에 눈에 떴다. 얼마나 지났을까. 시간을 확인해 보니 30분이나 잠들었다. 머리는 맑아지고 기분은 상쾌해졌다. 바위 위에 마르라고 올려놓은 양말과 신발을 다시 신고 하산하기 시작했다.

30분 자는 바람에 서둘러야 약속 시간에 간신히 닿을 듯했다. 뛰다시피 내려왔다. 다시 등산로 초입에 이르렀을 때 이미 오후 5시 50분이었다. 그다음부터는 뛰었다. 약속장소인 요세미티 빌리지까지 셔틀버스가 있지만 도착 시간을 기다리느니 뛰는 게 나을 듯싶었다. 예상보다 거리가 훨씬 멀었다. 약속 시간보다 30분 넘게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산행을 싫어하는 준수는 둘레길을 걷고 일찌감치 요세미티 빌리지에서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성재와 나윤은 도착하지 않았다. 내가 왕복 4시간에 어퍼폴스 구간을 마친 터라 왕복 6시간 걸릴 것으로 예상하고 성재와 나윤을 정오 정각에 해당 구간을 출발하게 했다. 성재가 산행에 서투른 탓에 소요 시간이 늘어났다.

오후 7시 지나 동행을 모두 픽업해 샌프란시스코를 향해 출발했다. 나윤이 아직 렌터카 운전자로 등록되지 않아 내가 혼자 운전해야 했다. 샌프란시스코 초입에 예약한 숙소까지 5시간가량 달려야 했다. 6시간 등반 코스를 4시간 만에 주파하고 다시 운전대를 잡고 초행길을 5시간을 달려야 하니 상당히 피곤했다. 졸업이 쏟아지면 도로 갓길이나 휴게소에 차를 대고 눈을 붙였다. 나윤이 ‘급속충전'이라 표현한 10~15분 자기는 졸음운전 방지에 상당히 유효했다. 천신만고 끝에 자정 넘어 1시쯤 숙소에 도착했다. 너무 피곤해 씻지도 못하고 맥주 한잔 마신 뒤 곯아떨어졌다.

내일은 샌프란시코를 여행한다. I left my heart in San Francisco’를 흥얼거리며 낭만적인 도시로 기억하는 곳이다. 부두에는 바다사자 무리가 누워있고 언덕 위에 경사로를 따라 알록달록한 집들이 촘촘이 이어지고 골목 사이를 앙증맞은 케이블카가 다닌 곳이다. 세계 최고의 대학인 스탠포드대학이 인근에 있고 세계 정보기술 산업을 이끄는 실리콘밸리가 자리한 곳이다. 기대만땅이다.



금문교 양안에서 금문교와 샌프란시스코 도심 조망


샌프란시스코 숙소에서 차를 타고 금문교로 직행했다. 당초 금문교 넘지 않고 샌프란시스코 쪽에서 보려 했으나 길을 잘못 드는 바람에 금문교를 건넜다. 전화위복이었다. 물 건너 언덕에 자리한 전망대에 오르자 금문교가 한눈에 들어왔다. 요트가 한가롭게 오가고 화물선도 금문교 아래를 지나 도심 쪽으로 지나고 있었다. 금문교 너머로는 샌프란시스코 스카이라인이 펼쳐졌다. 샌프란시스코 만 가운데 떠있는 알카트라즈가 샌프란시스코 만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한때 탈출 불가 감옥이었던 곳이 이제 샌프란시스코 관광명소가 되었다. 

방문자센터에 주차하고 트레일 코스를 따라 걷자 바다로 돌출된 포트포인트가 나타났다. 주민들이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었고 곳곳에서 크고 작은 물고기를 걷어올리고 있었다. 금문교와 샌프란시스코 도심 사이 바다에 떠있는 터라 그곳에 서면 시야를 가리는 방해물 없이 샌프란시스코 도심이 가까이 다가왔고 금문교는 밑에서 위로 올려다볼 수 있었다. 금문교나 샌프란시스코 도심 스카이라인을 조망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였다. 그곳에서 한참 머물면서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금문교와 샌프란시스코 도심 사이 바다에 떠 있는 포트포인트에는 강태공들이 물고기를 걷어 올리고 있다

금문교 주변에서 한참 노닐다 서부 최고 명문 스탠퍼드 대학으로 향했다. 세계 정보기술 산업을 이끄는 수재들을 실리콘밸리에 꾸준히 공급하는 곳을 직관하고 싶었다. 동행들이 따라오겠다고 해서 넷이 함께 갔다, 전 세계 여러 대학들을 돌아다녔지만 스탠퍼드보다 캠퍼스가 아름다운 곳을 보지 못했다. 짙은 황토색 외벽이 낮고 넓게 퍼진 건물을 따뜻하게 감싸고 있었다. 건물 외관은 깔끔했지만 전통을 자랑하는 대학이 갖는 기품과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대학 중심지에 해당하는 메인 쿼드에는 마침 졸업 파티를 마친 여학생들이 하얀 원피스들을 입고 샴페인을 터트리고 있었다. 남학생들은 슈트 차림에 빨간 머플러를 목에 걸고 떼를 이루며 메인 쿼드를 가로질렀다. 졸업 파티를 마친 학생들은 밝고 흥겨운 기운을 발산하고 있었다. 

다시 대학을 갈 수 있다면 주저 없이 스탠퍼드를 택할 것이다. 그곳에서 학업을 마친 학생들이 너무 부러웠다. 동행 셋도 마찬가지였다. 오스틴대를 다니는 나윤도 스탠퍼드에 오고 싶다고 토로할 정도였다. 캠퍼스 곳곳을 돌아다니다 동아시아 도서관과 강의실이 있는 곳까지 왔다. 계단을 올라 열람실 입구에 닿자 그 정면에 한글로 동아시아 연구라고 쓰여 있었다. 한자와 일본어도 병행 표기하고 있었다. 스탠퍼드대에서 동아시아를 연구하며 늙어가도 멋질 듯하다. 


준수가 생일을 맞았다. H마트에 들러 저녁 식재료를 샀다. 돼지불고기, 김치찌개, 미역국 재료와 케이크를 구입했다. 오늘은 내가 셰프를 맡았다. 돼지불고기를 굽고 김치찌개를 끓였다. 성재가 미역국을 끓였다. 준수는 자기 생일잔치에 함께 먹겠다며 광어회와 사케를 샀다. 음식과 숲이 꽤 많았지만 밤늦게까지 먹고 마셔 동을 냈다. 내일은 느즈막하게 일어나 샌프란시스코 도심을 외로운 늑대처럼 혼자 돌아다니고 싶었다.

피셔맨스와프부터 베이브리지까지 샌프란시스코 만따라 걷다


샌프란시스코 둘째 날. 도심을 홀로 걸었다. 취향이 제각각이라 각자 하고 싶은 것을 하고 보고 싶은 것을 보고 오후 6시 주차장에서 보기로 했다. 도심 중앙에 주차하고 베이브리지까지 걸었다. 적갈색 금문교와 달리 베이브리지는 하얀색 현수교다. 샌프란시스코와 오클랜드를 잇는 다리다. 유명세가 금문교보다 떨어지지만 오클랜드와 샌프란스시코를 잇는 다리다 보니 기능 면에서는 금문교보다 낫다. 금문교 넘어서는 부촌인 티뷰론과 소살리토가 바다 넘어 샌프란시스코 도심을 조망한다. 

베이브리지를 뒤로 하고 해안 따라 걸었다. 주말 맞아 샌프란시스코 해안가는 인파로 북적이고 활기가 넘쳤다. 길거리에서 큼지막한 소시지를 양파와 피망을 곁들여 구운 음식을 10달러에 사서 걸으며 먹었다. 해안 쪽으로 바짝 붙어 걷다가 샌프란시스코 페리 부두에 들어갔다. 주말 시장이 서서 갖가지 샌프란시스코 특산품을 팔고 있었다. 글루텐 없는 소박한 파이를 파는 판매대에서 독살스럽게 단 딸기 파이를 먹었다. 달다 못해 입 안이 아릴 정도였다. 덕분에 오후 내내 칼로리가 부족할 일은 없을 듯했다. 

39번 부두에 닿자 알카트라즈 가까이 다가왔다. 수영해서 건널 수 있는 것 같은 거리였다. 이곳이 탈출 불가능한 감옥이었다니 이상하다. 나중에 알아보니 조류가 빠르고 물이 차서 수영으로 건너기 어렵다고 한다. 북적이는 상가를 가로질러 나가자 난간 너머로 배를 까고 누워있는 바다사자가 보였다. 그 너머로 바다사자 무리들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다. 39번 부두 명물로 꼽히는 바다사자 서식지다. 서로 대가리하는 녀석들부터 햇볕 쬐며 자빠져 자는 녀석까지 온갖 포즈로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었다. 


39번 부두를 지나자 바로 옆에 피셔맨즈와프가 나왔다. 샌프란시스코 첫날 클램차우더를 먹은 식당 부댕이 있는 곳이다. 알카트라즈로 떠나는 페리를 타기 위해 줄 선 인파를 지나 방향을 도심으로 틀었다. 해안에서 빠져나오자 차이나타운 쪽으로 사선으로 뻗은 길을 걸었다. 샌프란시스코 차이나타운은 규모가 엄청났다. 과거 골드러시 시절 미국은 중국 이민자들을 대거 투입해 서부 철도를 부설했다. 당시 수많은 사상자가 나왔다. 살아남은 이민자들은 샌프란시스코에 정착했고 미국 서부에서 가장 큰 차이나타운을 건설했다. 거리에는 한자가 적힌 가게들이 늘어섰다. 중국식 기와를 이은 전각이 눈에 들어오는 공원에서는 중국인 노인들이 모여 장기를 두고 있었다.

차이나타운을 빠져나오자 고층빌딩들이 밀집대형을 이루며 솟았다. 유료주차장에 주차한 차에서 10분가량 기다렸더니 일행 셋이 왔다. 바로 유레카라는 마을을 향해 떠났다. 레드우드 국립공원에서 한 시간 떨어진 작은 마을이었다. 모텔6에서 2인 1실을 빌려 잤다. 비교적 깔끔하면서도 싸서 여행객에게 인기 있는 모텔 체인이다. 나윤이 4시간가량 차를 몰았다. 느리지만 안정적이라 옆좌석에서 자면서 올 수 있었다. 당분간 운전을 맡겨 빨리 미국에서 운전에 익숙하게 만들 필요가 있었다. 앞으로 장거리 운전이 이어지는 날이 많을 거다. 

샌프란시스코는 해안이 아름다운 도시다. 규모는 로스앤젤레스보다 작지만 다양한 색깔이 알록달록하게 꽉 찬 도시 같다. 도시를 이루는 요소들이 아기자기하고 나름 품위를 갖추고 있었다. 물론 텐더로인 거리처럼 노숙자들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는 위험한 곳도 있긴 하지만 전반적으로 깔끔하고 예쁜 도시다. 실리콘밸리를 배후에 둔 첨단도시지만 언덕 위로 케이블카가 달리고 트램에 전기를 공급하는 전기선이 도심 하늘을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곳이기도 하다. 지그재그로 난 언덕길 따라 꽃들이 피어나는 롬바르 가에서 바다까지 뻗어내리는 길을 내려다보는 경치가 일품이다. 언덕길 따라 걷다 보면 파스텔톤으로 페인트칠한 작은 집들이 좌우로 늘어섰다. 

멋진 도시다. 미국인들은 샌프란시스코를 떠날 때 마음을 두고 온다고 했다. 이방인인 나로서는 마음까지 두고 올 일은 아니지만 뇌리에 멋진 도시로 남을 듯하다. 다시 오고 싶다. 그때는 사랑하는 이와 함께 샌프란시스코 만을 따라 걸으며 걸거리 소시지를 함께 먹을 수 있기를.


레드우드 국립공원, 거인의 숲을 거닐다


샌프란시스코에서 101번 도로 타고 북쪽으로 4시간가량 달렸다. 태평양 해안을 왼쪽에 두고 달리다 보니 잊을만할 때쯤 태평양이 얼굴을 비췄다. 밤 10시 넘어 유레카라는 작은 마을에 도착해 모텔6에 체크인했다. 준수와 나윤이 한 방을 썼고 나는 성재와 방을 공유했다. 침대에 눕자마자 곯아떨어졌다. 샌프란시스코 시내를 여섯 시간 걷고 4시간 이상 운전했으니 피곤할만하다. 일행 넷이 여행 욕심이 많아서인지 연일 강행군이다. 속도를 늦출 필요가 있다. 피로도가 높아지면 일행 간 갈등이 생길 확률이 커진다. 벌써 갈등의 싹이 자라는 게 보인다. 여행의 피로는 실수나 오해가 빚은 작은 관계의 상처를 큰 종기로 커지게 한다. 곧 종기가 터질 듯하다. 

다음날 일찍 레드우드 국립공원으로 갔다. 아침나절 바다에 안개가 자욱하고 추웠다. 날씨 탓에 레드우드 국립공원의 절경을 보지 못할까 걱정했다. 정오가 다가오면서 햇살이 비추자 안개가 걷혔다. 레드우드는 세상 밝은 모습으로 우리 일행을 맞이했다. 페루 와라즈 트레킹에서 만난 미국인 피터가 요세미티나 옐로스톤보다 더 아름다운 곳이라고 추천한 곳이 레드우드다. 레드우드를 방문하자고 일행을 설득했다. 결과적으로 대성공이었다. 일행 모두 레드우드의 경치에 감동했다. 준수는 복잡한 요세미티보다 한적하고 아득한 레드우드가 훨씬 낫다고 극찬했다. 

레드우드 국립공원은 캘리포니아 주 북서쪽 해안에 연한 자이언트 메타세쿼이아, 레드우드의 숲이다. 레드우드는 소나무 목 삼나무 과로 세계에서 가장 키 큰 나무다. 하늘을 향해 곧게 뻗어나간다. 100m 이상 자라는 나무가 즐비하다. 나무 계의 모델이라 할까. 거대한 신 하이페리온의 이쑤시개 같다고나 할까. 레드우드가 곧게 자라는 이유가 있다. 비탈진 길에 뿌리를 두고 비스듬히 자랐다가는 일정 크기 이상에서 자기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허리가 부러져 성냥개비처럼 꺾여버린다. 오로지 곧게 자라는 나무들만이 자기 키의 하중을 버텨내며 하늘로 치솟는다. 

레드우드 숲 안에 들어가면 거인의 나라에 닿은 걸리버로 변한다. 엄청나게 거대한 나무 사이에 서면 다람쥐만큼 작은 동물로 줄어드는 느낌이 든다. 숲에는 나무의 텁텁한 향이 가득하다. 무성한 나무 가지들 사이로 햇살이 간간이 쏟아져 들어와 신비감을 더한다. 나무 외피에 손을 대면 감당할 수 있을 만큼 건조하다. 곳곳에 벼락 맞아 속이 탄 나무들을 볼 수 있다. 속 안은 불탔으나 외피가 담고 있는 수분 덕에 겉은 여전히 푸르러 생명을 잇는 나무가 많다. 두터운 갑옷을 두른 성장한 장군처럼 치솟기도 하고 껍질 없이 근육 섬유처럼 줄기가 뒤엉켜 올라가는 나무를 볼 수 있다. 

숲은 완전했다. 거칠 것 없이 하늘 향해 치솟는 나무들이 숲의 그늘을 만들어내고 무성한 가지와 잎 사이로 햇살이 눈부시게 내려 숲의 조도를 적당하게 유지한다. 숲의 그늘 아래서는 엘크들이 풀을 뜯고 새, 도마뱀, 다람쥐가 바삐 움직인다. 잎으로는 안갯속에서 수분을 얻고 뿌리로는 땅 속 깊은 곳까지 뻗어나가 물을 흡수하는 터라 레드우드 숲은 건조하지 않다. 물기가 묻은 나무 향이 숲을 감싸고 있어 들이쉬는 숨마다 나무의 맛과 향을 음미할 수 있다. 

톨트리스(키 큰 나무 숲)와 레이디 버드존슨 트레일 코스를 걸어서 다녔다. 레드우드 국립공원의 베스트 코스다. 3시간가량 트레일을 마치고 북쪽으로 40분간 달려 제데디아 스미스 주립공원으로 갔다. 그곳은 서식하는 나무들은 더 크고 웅장했다. 벨로시랩터나 티라노사우르스가 숲 속에서 나타나도 이상하지 않은 풍경이었다. 성인 남성 여섯 명가량이 손을 잡고 둘러싸도 넘칠 만큼 큰 지름과 끝이 보이지 않은 나무들이 집단으로 서식하고 있었다. 곳곳에 뿌리째 뽑혀 넘어진 나무들이 말라가면서 숲의 원시성을 더했고 썩어가면서 새 세대를 위해 자양분을 만들고 있다. 지금까지 본 숲 중 단연 최고였다. 톨트리스나 레이디 버드 존슨 숲 트레일도 멋졌지만 시간 없는 이라면 제데디아 스미스 주립공원을 먼저 방문할 것을 권한다.

요세미티가 바위와 폭포라는 무생물이 만들어낸 경이라면 레드우드는 나무라는 생명체가 엉켜서 연출하는 절경이다. 위태롭게 깎아지르는 바위와 무시무시하게 쏟아져내리는 폭포가 만들어내는 절경이 감탄스럽다면 나무들이 거대하게 자라면서 만들어낸 숲은 따뜻하고 아득한 풍경을 안으로 담고 있다. 요세미티가 외경의 대상이라면 레드우드의 사랑의 상대라 하겠다. 고대 원주민에게 요세미티는 숭배의 대상이라면 레드우드는 삶의 터전이지 않을까 싶다. 미국인은 샌프란시스코에 마음을 두고 온다면 나는 레드우드에 내 마음을 남겨뒀다. 아쉬움에 여러 차례 돌아보면 다시 올 것을 다짐하고 다음 행선지 포틀랜드를 향해 떠났다.


마약 무방비 도시, 포틀랜드


포틀랜드 여행은 최악이었다. 명물로 소문난 장미정원은 10분 돌아다니면 얼추 다 볼 수 있는 면적에 난생처음 보는 장미 품종을 줄지어 심어놓은 작은 정원에 불과했다. 그리 신기하지 않은 형형색색 장미가 피어있었으나 장미꽃에 무내한이다 보니 그리 인상적이지 않았다. 품종 개량해 화려한 꽃보다 산이나 들에 피는 야생화를 선호하는 터라 화려한 장미꽃에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장미밭에서 일행과 한 시간 노닥거리다가 포틀랜드 도심으로 향했다. 워싱턴 주와 캘리포니아 주 사이 태평양에 연한 오리건 주의 주도가 포틀랜드다. 성재는 스타벅스에서 커피 한잔 마시며 앉아있겠다고 해서 준수와 둘이 돌아다니고자 했다. 

도심 여행에 나선 지 10분 만에 성재가 있는 스타벅스로 철수했다. 길거리 곳곳에 마약에 취해 쓰러져 자는 노숙자가 즐비했고 청년 4~5명이 떼를 지어 길거리에서 마약을 사고팔았다. 마약에 취해 돌아다니는 이들도 눈에 띄었다. 멕시코시티에서 밤 11시 넘어 돌아다녔을 정도로 겁이 없는 나도 겁났다. 준수는 이미 패닉 상태에 빠졌다. 위험을 본능적으로 감지하고 뛰다시피 해 스타벅스로 들어갔다. 서둘러 워싱턴 주 밴쿠버(캐나다 밴쿠버 아님) 숙소로 가서 체크인했다. 키 큰 나무 앞으로 잔디밭이 예쁘게 가꾼 고급 저택이었다. 가스 벽난로에 불을 붙이자 거실은 따뜻해졌고 4개나 되는 침실은 아주 고급스러웠다. 

갈등의 씨앗이 자라더니 드디어 종기가 터졌다. 커뮤니케이션 실패로 인한 오해가 겹치다 보니 상대의 불만을 마음속에 쌓아두고 있었다. 종기는 사소한 계기로 터졌다. 나윤이 장미정원을 가자고 했고 성재는 장미정원에 너무 실망했다. 준수까지 성재 편에 섰다. 나윤에게 장미정원에서 충분히 시간을 보내라고 하고 우리 셋은 도심에 다녀오겠다고 말했다. 나윤이 화를 냈다. 남자 셋이 자기 두고 도심을 다녀오겠다는 건 따돌림이라 생각한 거였다. 성재는 나윤의 태도에 화를 냈다. 나윤의 운전실력이 형편없는 것도 불만이었다. 준수는 나윤이 너무 자기 생각대로 여행 일정을 밀어붙이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일촉즉발이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불만을 토로할 듯했다. 

포틀랜드는 수제가 맥주가 유명하다. 맥주 양조장에 들러 수제맥주를 샀다. 한인마트 가서 삼겹살도 샀다. 삼겹살 굽고 수제 맥주를 마시며 대화를 시도했다. 갈등의 뿌리가 뽑히지 않았지만 겉으로 드러난 상처는 봉합할 수 있었다. 오랫동안 다른 환경에서 제멋대로 자라온 이들이 서로의 취향과 기호를 맞춰가며 여행한다는 건 상당히 힘들다는 걸 새삼 깨닫고 있다. 여행은 지금까지 몰랐던 자신의 모습도 발견하기도 하고 다른 이들과 갈등이나 이견을 조정하며 대안을 찾아가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면서 성장한다. 갈등을 해소하고 이견을 조정하는 스킬도 는다.


눈길 밟고 높이 얼룩무늬 산 레이니어에 오르다


지난밤 과음한 탓에 운전한 지 한 시간 만에 운전대를 나윤에게 넘기고 뒷자리로 넘어가 졸았다. 술의 힘을 빌어 동행 사이 갈등은 얼마간 봉합했지만 포틀랜드 산 수제맥주를 너무 많이 마셔 컨디션은 좋지 않았다. 준수는 속에 탈이 나 설사까지 했다. 뒷좌석에서 한참 졸다가 눈을 떴다. “우와~ 대박!” 눈 안으로 한가득 들어온 레이니어 산의 절경에 감탄했다. 검정과 하양이 명징하게 뒤엉켜 흡사 범고래를 연상시키는 설산이 눈앞에 버티고 있었다. 

레이니어 산은 미국 워싱턴 주 중서부에 있는 높이 4392m 화산이다. 캐스케이드 산맥 최고봉으로 수세기 전 분화한 흔적이 있는 사화산으로 만년설에 뒤덮여 있다. 방문자 안내센터에 들렀다. 안내 직원에게 트레킹 코스와 뷰포인트를 추천받았다. 레이니어 국립공원 안에서 여행객이 많이 찾는 곳은 파라다이스와 선라이즈 구역이다. 

우리는 레인저 추천대로 파라다이스 설산 트레킹 코스를 다녀오기로 했다. 조금씩 녹고 있는 눈 위를 걸어 레이니어 산 앞 전망대까지 2km가량 오르는 구간이다. 포틀랜드가 따뜻해 늦봄 같았는데 얼마 올라오지 않은 레이니어 산은 겨울이었다. 산봉우리에서 내려오는 찬 바람을 몸으로 받으며 설원을 밟고 올랐다. 눈 녹은 물이 산자락으로 흘러 내려왔다. 고개를 들면 하얀 눈밭에 검은 얼룩이 물든 모양의 설산이 흰 구름을 이고 버티고 있었다. 눈을 밟고 한참 오르다 뒤를 돌아다보면 멀리 캐스케이드 산맥을 이루는 설산들이 병풍처럼 펼쳐졌다. 설원 위에 길게 솟은 푸른 침엽수림이 자리하고 그 너머로 얼룩이 모양 산들이 병풍처럼 늘어선 절경에 탄성이 흘러나왔다. 

눈이 잦아지고 바위와 흙길이 나오자 다람쥣과 설치류 마못이 껑충거리며 앞으로 지나갔다. 레이니어 산에는 마못이나 다람쥐 같은 설치류가 많이 서식한다. 생전 처음 보는 마못을 신기해하며 오르자 이번에는 다람쥐가 나타나 코 앞까지 다가왔다. 잠시 쉬던 중 성재가 단백질 초코바를 꺼내자 다람쥐는 대담하게 우리 일행 앞으로 다가오며 애타게 초코바를 바라봤다. 조금 떼어 주고 싶었으나 야생동물에게 음식을 주지 말라고 경고문을 떠올리며 다람쥐의 애타는 시선을 무시하며 다시 눈밭으로 발길을 돌렸다.

레이니어 산 전망대에 다가갈수록 바람이 세졌다. 위에서 내려오는 트래커들과 눈인사를 나누며 오르다 보니 금세 전망대에 도착했다. 더 오르고 싶었다. 레이니어 산에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가고 싶었다. 조금만 더 하며 산봉우리 쪽으로 몸을 기대며 눈밭을 밟고 앞으로 나아갔다. 하산 시간을 계산하니 더 오를 수 없었다. 설사 탓에 산에 오르지 못하고 공원 호텔 커피숍에서 준수가 우리 일행의 하산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쉬움에 입맛만 다시다 내려왔다. 준수를 태우고 차량으로 주요 뷰포인트를 돌아다녔다. 푸른빛 호수, 짙은 녹색의 침엽수림, 비탈에 피기 시작한 노란 야생화 밭, 그 너머로 펼쳐진 설산이 한데 어우러져 있는 절경을 찾아다녔다.

전혀 기대하지 않은 곳에서 절경을 보아서인지 레이니어 산은 레드우드와 요세미티 못지않게 깊게 뇌리에 각인되었다. 다음날 다시 오고 싶었다. 다음날 아침 준수 성재 순으로 숙소에서 하루 쉬고 싶다며 산행을 포기했다. 연일 강행군하다 보니 다들 지친 듯했다. 오로지 나윤만이 짐을 챙겨 레이니어 산으로 간다며 나섰다. 나도 하루 쉬며 재정비하고 싶었다. 

앞으로 15일 남았다. 100일 넘는 여행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남미 중미 북미 곳곳에 있는 어려운 트레킹 코스는 다 돌아다녔으니 지칠만했다. 빨래도 하고 넷플릭스 드라마를 보며 하루를 그냥 보냈다. 다음날 드디어 옐로우스톤으로 향한다. 미국 횡단의 하이라이트다. 옐로우스톤 여행을 준비하기 위해 하루 쉬며 재충전하는 거다.


옐로우스톤, 신이 산 지구에 만든 최고의 걸작


오전 9시 15분 워싱턴 주 레이니어 국립공원 인근 마을 팩우드를 출발해 오후 8시 30분 몬타나 주 뷰트에 도착했다. 시차 경계선을 넘으면서 1시간 늘어난 것을 감안하면 11시간가량을 달렸다. 뷰트는 옐로우스톤 북쪽 입구와 가까운 작은 마을이다. 가깝다고 하지만 차를 타고 한 시간 이상 달려야 했다. 국립공원 안이나 가까운 숙소는 비싸다. 한 시간 이상 떨어져 있어야 4인 동행이 부담스럽지 않은 비용으로 숙소를 잡을 수 있었다. 자동차 여행자에게 가장 인기 있는 모텔 6에 묵었다. 11시간 이상 운전한 탓에 도착하자마자 곯아떨어졌다. 

다음날 아침 일찍 옐로우스톤으로 출발했다. 북쪽 입구로 들어가 국립공원 입구마을 가르디너에 도착했다. 방문자 센터부터 들어가 레인저에게 공원 내 들러야 할 곳과 걸어야 할 곳에 대한 정보를 얻었다. 레인저는 옐로우스톤 여행 정보를 간략하게 설명한 뒤 초행자에게 맞는 트레킹과 드라이브스루 코스를 알려줬다. 옐로우스톤에 오자마자 방문자센터에 들러 레인저에게 최신 여행정보를 듣는 게 여행을 설계하는데 매우 유용하다. 

옐로우스톤은 1872년 세계 최초로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곳이다. 초거대 화산 위에 놓여 있다. 옐로우스톤 화산이 터지면 지구 생명체는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 한다. 다행히 화산이 워낙 커서 한방에 응축해 터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한다. 화산 속에서 터져나가려는 힘이 모여 한꺼번에 분출하는 것이 화산 폭발인데 옐로우스톤 국립공원이 깔고 있는 화산은 워낙 규모가 크다 보니 터질 때까지 힘이 모이기 전에 간헐천이나 온천으로 에너지가 빠져나간다고 한다. 지금도 간헐천, 온천, 진흙탕, 분기공이 공원 곳곳에서 에너지를 끊임없이 쏟아내고 있다. 옐로우스톤 화산이 마지막으로 터진 건 63만 1천 년 전이다. 

옐로우스톤 국립공원 내 최고봉은 높이 4300m 워시번 산이다. 산 아래로 연두색 목초지가 끝도 없이 펼쳐지고 침엽수림이 곳곳에 산재하고 있다. 저 멀리에는 만년설을 이고 있는 설산들이 병풍처럼 버티고 목초지 곳곳에 크고 작은 호수와 연못이 보석처럼 박혀 있다. 목초지에서는 들소와 엘크가 풀을 뜯고 숲 속에서는 그리즐리 곰, 검은 곰, 늑대 같은 야생 동물이 살고 있다. 인간이 옐로우스톤에 발을 들인 건 1만 3천 년 전이다. 

옐로우스톤 대표 여행 상품은 간헐천이다. 전 세계에 간헐천이 800개가량 있는데 그중 500개나 옐로우스톤 국립공원 안에 있다고 한다. 온천수나 마그마가 땅 속에서 모이다가 땅 위로 한꺼번에 솟아 나오는 곳이 간헐천이다. 여기저기 산재한 간헐천들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힘을 모았다가 한번 터져 나오면 수백 미터씩 솟구치기도 한다. 간헐천들은 부글부글 끓고 황화합물 연기를 뱉어내고 느닷없이 솟구치며 자기가 살아있다는 걸 쉴 새 없이 증명한다. 

간헐천들을 보며 옐로우스톤의 생동감을 느낄 수 있다면 풀(온천수 연못)이나 스프링(온천수 샘)에서는 옐로우스톤의 화려한 색감을 볼 수 있다. 크고 작은 연못이나 샘은 대부분 옥빛이다. 부글부글 물이 오팔이나 터키 같은 보석 색깔을 내 아름답다. 물속에 녹은 황화합물이 다른 가시광선을 모두 흡수하는데 오로지 푸른색만 흡수하지 못하고 반사한다. 그래서 우리 눈에는 푸른색만 인지하다 보니 푸른 것이다. 황화합물의 농도에 따라 짙고 옅음이 다른 뿐이다. 푸른색 연못 주변에 노랑, 주황, 녹색 같은 화려한 색은 그 연못에서 서식하는 박테리아 같은 미생물이 낸다. 그랑 프리즈매틱 스프링이나 모닝 글로리, 크로마틱풀처럼 옐로우스톤을 소개하는 책자에 담긴 총천연색 연못의 색은 황화합물의 빛 반사와 미생물들이 합작한 작품들이다. 

옐로우스톤 안에서 간헐천이 많이 모인 곳은 올드페이스풀과 노리스 구역이다. 올드페이스풀이나 노리스 트레일 코스를 걷다 보면 간헐천이 솟구쳐 오르고 부글부글 끓고 있다. 고사목 배경으로 옅은 하늘색 연못을 보고 있으면 들어가고 싶은 충동까지 생긴다. 그곳에 들어갔다가는 살아남지 못한다. 워낙 강한 산성인 데다 섭씨 100도 넘는 열탕이다.

레이크 빌리지는 바다인지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로 엄청난 넓이의 호수를 끼고 있다. 호수 주변에 숲이 울창하다. 나무 사이로 보이는 호수에는 파도가 친다. 호수로서 정체성을 잊고 자기가 바다인지 착각하는 게 아닌가 싶다. 날이 궂어 옐레펀드백 마운틴에 오르지 못한 게 아쉽다. 코끼리등 모양 산에 올라 호수를 내려다보면 절경이라고 한다. 비바람을 맞다 보니 저체온증을 걱정할 만큼 온몸이 적어 추웠다. 6월 하순 옐로우스톤 날씨가 이 모양이라니 기후변화가 이미 재앙으로 우리 가까이 다가온 듯하다. 호수만 바라보고 입맛만 다시다 발길을 돌렸다. 

캐넌 빌리지에서 동행과 헤어졌다. 동행 셋은 차로 이동하며 캐넌 빌리지 경관을 즐기고 싶어 했다. 나는 걷고 싶었다. 동행 셋은 차로 캐넌 빌리지 가운데를 흐르는 강의 북쪽을 따라 오르고 나는 강의 남쪽을 따라 걷기고 했다. 나는 차에서 내리자 뭐에 홀린 듯이 주차장 앞에 펼쳐진 고개를 넘었다. 캐넌 빌리지 남쪽림과 반대 방향이었다. 고개를 넘자 보라색 꽃과 노란색 꽃들이 바닥에 바싹 붙어 모여 피면서 융단처럼 초원을 덮고 있었다. 꽃과 초지가 만드는 평원 사이에 난 좁을 길을 걸었다. 곳곳에 웅덩이가 생겨 하늘을 비추고 있었고 그 너머로 낮은 언덕과 침엽수림이 이어졌다. 언덕 위에 올라서 옐로우스톤의 끝 간 데 없이 펼쳐지는 평원을 한참 내려다봤다. 숲 속으로 들어가 나무를 더듬으며 걷다가 숲 속에 숨어있는 깨끗한 호수를 훔쳐볼 수 있었다. 나중에 알아보니 그 호수 이름이 클리어레이크였다. 참 잘 어울리는 이름이다. 

이러다 캐넌 빌리지를 볼 수 없을 듯 발길을 반대 방향으로 돌렸다. 캐넌 빌리지 사우스림을 뛰다시피 걸었다. 감당할 수 없는 양의 물이 엄청난 중량으로 밀려 내려오다 바위를 만나 굽이치고 하얀 포말을 만들어냈다. 물은 쉬지 않고 엄청난 속도로 밀려 내려갔다. 그러다 낮은 곳으로 가라앉은 곳을 만나 폭포로 쏟아져 내렸다. 짙은 녹색의 물은 폭포에 이르러 하얀색으로 변한다. 폭포를 지난 물은 다시 숲 사이로 난 수로를 따라 계곡 밑으로 흘러 내려간다. 마치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높은 전망대에서 물이 닿는 곳으로 시선을 옮기니 평원 속으로 도도히 달려가는 물줄기의 장엄한 행진을 감탄하며 비켜 보았다. 전설 속 기마부대의 행진을 마지막으로 지켜보는 심정이랄까.

차를 타고 가다 보면 들소와 엘크 같은 야생동물을 자주 본다. 엘크 무리가 도로 주변에서는 풀을 뜯고 있으면 차량들이 멈추고 지켜본다. 들소 무리가 도로에 올라오면 차에 내려 그 진귀한 모습을 보려고 인파가 몰린다. 곰이 출몰하기도 한다. 숲 속 깊은 곳에 숨은 곰들을 보기 위해 일부 여행객들은 망원경을 들고 다닌다. 고배율 망원렌즈를 장착한 카메라맨들은 곰이 자주 출몰하는 곳마다 진을 치고 곰의 출현을 기다린다. 옐로우스톤에는 1년에 꼭 한 번씩 곰에게 사람이 다치는 일이 발생한다고 한다. 공원 곳곳에는 곰 조심 경고문이 붙어 있다. 

옐로우스톤은 경기도 면적과 비슷하다. 신은 설산 침엽수림 초지 야생화 호수 연못 간헐천 계곡 폭포 같은 자연의 요소를 재료 삼아 지구 최고의 걸작을 만들어냈다. 그 결작 안에서 들소 늑대 코요테 엘크 같은 야생동물이 살아간다. 옐로우스톤 국립공원은 와이오밍 몬타나 아이다호 3개 주 접경지대에 걸쳐 있다. 아이다호 주 렉스버그에 숙소를 잡고 날마다 2시간가량 달려 몬타나 주 옐로우스톤 웨스트빌리지를 통해 공원에 출근했다. 웨스트빌리지는 서부영화에 나오는 평원 내 작은 마을을 깨끗하게 정비한 곳 같다. 그곳에 내려 작은 커피숍에 들어가 커피라기보다는 레드아이라는 카페인 농축액을 한잔 마셨다. 동행 셋은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참 취향이 다른 족속들이다. 

다시 한번 확인했다. 여행은 누구랑 하느냐가 중요하다. 아무리 좋은 곳이라도 일행과 호흡이 맞지 않으면 여행의 즐거움은 반감된다. 동행 셋은 나와 참 다르다. 동행 셋은 호텔이나 에어비앤비처럼 좋은 곳에 묵으면서 좋은 음식 즐기는 게 여행이라고 생각한다. 이와 달리 나는 오두막이나 도미토리룸에서 자도 전 세계에서 온 친구들과 만나고 트레킹과 하이킹을 다니며 자연을 만끽하기를 좋아한다. 동행 셋은 도시를 좋아하고 나는 산과 호수를 선호한다. 그러다 보니 숙소 잡기도 쉽지 않고 여행 경로를 정하기도 어렵다. 다음에 옐로우스톤과 그랑티톤에 올 때는 오랜 친구나 사랑하는 이와 오고 싶다. 여행 취향이 비슷하거나 서로에 대해 깊이 알고 지내는 이와 오는 게 여행의 즐거움을 배가한다. 

동행 셋은 시카고에서 미국 횡단을 중단하고 싶어 한다. 시카고 같은 도시에서 지내고 싶단다. 시카고부터 뉴욕까지는 혼자 여행한다. 나는 미국 횡단을 끝내고 싶다. 혼자서 나흘간 여행한다니 설렌다. 동행 셋의 갖가지 욕구와 관심을 다 맞추려고 급하게 달려오던 걸 멈출 수 있다. 혼자서 낯선 마을에 들러 커피 한잔하다 다시 출발할 수 있다. 가끔 낯선 고장의 바에 들러 위스키 한잔 마셔도 좋고. 미시간에 들러 친구 브라이언을 방문할 수도 있다. 동행 셋과 함께 방문해 폐를 끼치는 게 싫어 브라이언의 초대를 거절했는데. 이제는 가도 된다. 브라이언이 보고 싶다. 운전 시간만 무리가 없다면 브라이언을 만날 수 있을게다.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헤어진 지 3년 만에 만나는 친구다. 설렌다.


그랑티톤, 옐로우스톤 뒤에 숨겨진 숨겨진 보석


지난밤 그랑티톤 산 바로 밑 롯지에서 묵었다. 목재 2층 침대 4개, 수세식 화장실을 갖춘 나무 오두막집이다. 매트리스가 없어 나무틀에다 패드를 깔고 침낭 속에 들어가 자야 했다. 동행 셋은 매트리스와 침구가 없는 곳에서는 잘 수 없다고 해 나만 오두막에서 남았다. 오두막에는 피닉스에서 온 피터와 테네시에서 온 채닝이 지난 며칠간 묵고 있었다. 성격 좋은 채닝이 지니 호수를 배 타고 넘은 뒤 그랑티톤 산으로 이어지는 하이킹 코스를 다녀온 무용담을 높은 톤으로 떠들었다. 얼핏 예순은 넘어 보이는 피터는 지난 8일간 오두막에 머물면서 그랑티톤 곳곳을 다니고 있다. 

6월 하순이지만 와이오밍 그랑티톤 지역은 싸늘하다. 새벽에는 손이 굽을 정도로 춥다. 어제 하루종일 비가 내리고 바람도 불어 최악이다. 아침식사 준비하면서 만난 여행자는 그랑티톤에 하루 종일 비가 내리는 경우는 드물다고 귀띔했다. 비는 오늘 오전까지 이어진다는 일기 예보가 있지만 다행히 밤새 내리던 비가 아침에 비가 그쳤다. 아직 구름 속에 숨어 있지만 한떼의 구름이 지나고 다음 구름이 몰려오기 전 짧은 순간이나마 그랑티톤 산은 멋진 자태를 뽐냈다. 산새는 끊임없이 재잘거린다. 아침 식탁에 앉은 여행객들도 산새 소리와 불협화음을 내는 소리로 서로의 여행담을 주고받는다. 

비는 오고 갔다 다시 왔다. 비가 잦으면 그랑티톤의 절경을 짧은 순간이나마 볼 수 있었다. 지니 호수 전망대에서는 호수 넘어 솟은 그랑티톤의 산세를 올려다볼 수 있었다. 검은 산 줄기 사이 계곡에 쌓인 눈이 산의 검정과 대조를 이루며 얼핏 얼룩말 무늬처럼 보이고 산자락에는 짙은 침엽수림이 풍성해 푸르고 그 앞으로 짙은 심연의 호수가 펼쳐진다. 날이 맑으면 산이 호수에 비추며 절경을 연출한다고 한다. 날이 궂어 칙칙했지만 산 숲 호수가 어울리는 경치는 멋지다 아니할 수 없었다. 

차를 몰고 구름 위까지 올랐다. 고지에서 내려다본 그랑티톤 평원은 옐로우스톤 못지않았다. 옐로우스톤이 웅장하고 방대하다면 그랑티톤은 오밀조밀하지만 꽉 차있었다. 구룸을 이고 있는 설산이 멀리서 병풍처럼 두르고 그 앞에서 흉터처럼 얽힌 모양새의 강이 넓어져 호수처럼 평원에 머물다 흐르고 초지가 깔아놓은 바탕 위에 짙은 색 침엽수림들이 숲을 이루며 조경수처럼 평원을 장식하고 있었다. 내려다본 지 5분도 지나지 않아 구름이 안개처럼 깔리면서 평원은 구름 뒤에 숨었다. 

그랑티톤 산은 하루종일 숨바꼭질을 했다. 비가 거세지면 경치를 보기를 포기하려면 느닷없이 비가 그치면서 산이 드러나고 차까지 멈추고 카메라 셔터를 누르다 보면 다시 구름이 다가와 가린다. 결국 더 보기를 포기하고 그랑티톤 산자락에 자리한 내 오두막이 숙소에 체크인하려고 알파인클럽 롯지로 향하자 그랑티톤 산이 선명하게 자기 모습을 드러냈다. 동행 셋은 1시간 30분 떨어진 곳에 잡은 숙소에서 하루 자고 다음날 아침 다시 오겠다고 다짐하고 떠났다. 나야 산 밑에서 자니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그랑티톤 산을 볼 수 있을 거라 기대했다. 아침식사 시간까지는 산은 여전히 구름 속에 숨어 있었다. 

오전 8시 전날 레인저가 최고의 하이킹 코스라고 추천한 트레일을 걸었다. 그랑티톤을 다녀간 여행객마다 그랑티톤은 옐로우스톤이라는 성찬을 완성할 아주 맛있는 디저트라고 강력 추천하는 곳이다. 아침식사를 마치자 로스앤젤레스 그리피스에서 산 후드티가 젖을 정도로 비가 내렸다. 오두막 사무실에 들러 침낭을 기부하고 우비를 얻을 수 있었다. 가방 메고 카메라를 든 채 판초 우비를 뒤집어썼다. 이슬비가 흩날리는 정도라 뒤집어쓰는 일회용 우비는 안성맞춤이었다. 레인저가 알려준 트레일을 찾아 오두막 뒤로 펼쳐진 평원을 가로질러 숲으로 들어갔다. 혹시나 곰이 나오지 않을까 싶어 경계를 늦추지 않고 깊지 않은 숲 속으로 들어가니 오솔길 같은 트레일을 찾을 수 있었다. 밤새 비로 불어난 골짜기 계곡물이 경쾌하는 흘러 내려가는 소리를 들으며 타가트 호수를 찾아 걸었다. 


30분쯤 오르막길을 오르자 숲 속에 숨은 타가트 호수에 닿았다. 호수는 거울처럼 그랑티톤 산을 비추고 있었다. 수면과 산이 맞닿는 곳을 경계로 산이 물 위에 펼쳐졌다. 어느새 비는 그쳤다. 산은 여전히 구름을 이고 있었지만 호수는 구름마저 비쳐 비현실의 절경을 연출했다. 주위는 적막했고 산은 물 위에 내려와 내 앞으로 다가왔다. 호수는 나무에 가려져 제 모습 다 보이지 않았다. 나무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물가 바위에 올랐다. 산과 빙하, 짙은 숲, 호수가 어우러져 그랑티톤 최고의 절경을 만들어냈다. 한참 넋 놓고 보다 다른 여행객들이 몰려오는 소리를 듣고 서둘러 자리를 떴다. 

타가트 호수 위에 있는 브래들리 호수를 향해 떠났다. 밸리 트레일을 따라 한참 계곡을 올라가니 타가트 호수보다 작은 브래들리 호수가 숲에 숨어서 지나는 여행객에게 자기 모습을 감추고 있었다. 오르막길이 끝나자 남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숙소로 돌어가려면 이제 남쪽으로 난 도로를 따라 걸어야 했다. 열심히 걸었지만 일행과 약속시간에 숙소까지 가지 못할 듯했다. 트레일에서 벗어나 초지를 가로질러 가까운 민가로 갔다. 4인 가족이 사는 집에 들러 사정을 말하고 와이파이 비밀번호를 입력해 인터넷에 접속했다. 동행들에게 내 좌표를 알려주고 픽업해 달라고 요청했다. 벌써 약속시간이 지났는데 답변이 없었다. 보이스톡을 해도 답변이 없었다. 동행 셋이 인터넷 접속이 되지 않는 곳에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어쩔 수 없이 라이언에게 4마일 떨어진 약속 장소로 태워달라고 요청했다. 사례를 하겠다고 말하며 정중히 부탁했다. 라이언은 사례 필요 없다면 흔쾌히 자기 차로 약속 장소까지 태워주었다. 미국도 시골인심은 후했다. 그랑티톤에서 곰 봤냐고 물어보고 한국에는 한번 가보지 못했다며 어떤 나라냐고 궁금해하는 순박한 시골 남자와 나눈 대화의 시간이 특별하게 다가왔다.    


도로 양옆으로 펼쳐지는 절경에 취해 와이오밍 가로지르다


와이오밍 주를 서쪽 끝에서 동쪽 끝으로 관통했다. 와이오밍은 인구 57만 명에 불과하다. 미국 50개 주 가운데 인구가 가장 적다. 면적은 한반도보다 넓다. 옐로우스톤 그랑티톤 나오면 90번 도로 양쪽으로 기대하지 않는 절경이 이어진다. 서쪽에서 동쪽으로 달리다 보면 왼쪽으로는 벌판 위에는 탁자 모양의 거대 암석 덩어리들이 평원 위에 부지불식 간에 솟아오른다. 오른쪽으로는 푸른 초원에 침엽수림이 멋지게 솟고 여기저기에 한가롭게 소들이 풀을 뜯는다. 언덕 위에는 동화 속에서 나오는 예쁜 집이 한 채씩 외롭게 서 있다. 옐로우스톤이라는 왕의 외투의 끝 자락에 수놓은 멋진 금수(수놓은 비단)처럼 와이오밍 주 서부는 옐로우스톤과 그랑티톤의 끝자락을 멋지게 장식하고 있다. 

데빌스타워와 배드랜드 국립공원에 들르기로 했다. 데빌스타워는 평원 위에 홀로 솟은 화강암 바위 덩어리다. 얼핏 보면 툭 튀어나온 버튼 같고 머리가 잘려나간 버섯처럼 생겼다. 가까이 가면 주상절리 모양으로 줄줄이 금이 간 화강암 덩어리다. 악마의 탑이라고 불릴 만큼 사악한 면은 없다. 그곳에서 한 시간가량 떨어진 곳에 배드랜드 국립공원이 있다. 그랜드캐년의 미니미라고 할까. 더 오래되고 키 낮은 관목들이 계곡 사이를 채우는 것을 빼고는 그랜드캐년의 축소판 같다. 대신 절벽 가까이 접근할 수 있어 그랜드캐년보다는 더 스릴 있다. 낭떠러지 가까운 곳까지 가서 사진을 촬영했다. 동행들에게 우려 섞인 핀잔과 감탄을 동시에 들어야 했다. 


동행 셋이 가장 크게 기대한 곳은 러시모어 마운트다. 와이오밍 주를 벗어나 사우스 다코타 주로 넘어왔다. 마운트 러시모어는 조지 워싱턴, 토머스 제퍼슨, 에이브러햄 링컨, 테오도르 루스벨트 대통령 얼굴을 바위 덩어리에 조각한 것으로 유명하다. 조각상은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 그냥 미국 대통령 얼굴을 바위에 조각했다는 것 말고는 큰 감흥이 없었다. 자연을 깎아 대통령이라는 우상을 새긴 행위나 금강산에 김일성 수령을 찬양하는 글귀를 시뻘겋게 새긴 북한의 짓거리나 무슨 차이가 있겠나. 사람 얼굴을 크게 새겼으니 이색적인가. 자연은 사람 손을 타지 않을 때 가장 아름답다. 와이오밍 중서부에 걸쳐있는 거대 암석 덩어리나 초원처럼. 

질레트라는 작은 마을에서 숙소를 정했다. 동행 셋과 함께 보내는 마지막 밤이다. 시설 좋은 곳을 예약해 와인과 맥주를 마시며 여행을 정리했다. 늦게까지 마시고 다음날 늦게 시카고로 출발했다. 시카고에 도착하자마자 헤어지기로 했다. 질레트에서 시카고까지는 쉬지 않고 달렸다. 11시간 넘게 달려 밤늦게 도착했다. 시카고 다운타운에 있는 호스텔에 동행들을 내려주고 나는 오헤어 공항 근처 모텔 6으로 갔다. 동행 3명은 시카고에서 3박 4일 이상 머문다. 각자 흩어져 개별여행한다. 나는 다음날 아침 일찍 로체스터힐을 향해 떠났다.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만나 지난 2년간 소식을 주고받은 친구 브라이언을 만나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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