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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철현 Aug 16. 2023

유카탄 반도부터 멕시코시티까지 멕시코 일주

멕시코 여행 하이라이트는 바깔라르 호수와 똘랑똥코 폭포

멕시코 칸쿤, 따뜻한 휴양도시에 세운 '그들만의 천국'


햇볕이 따갑게 쏟아지는 정오 와카치나 데저트나잇 숙소를 체크아웃하고 택시운전자 루디를 불러 이카로 나갔다. 이카 버스터미널에서 리마로 올라가는 직행버스를 탔다. 4시간 30분가량 걸리는 길이지만 다른 구간보다 훨씬 힘들었다. 난폭운전에 짜증이 났고 줄곧 졸면서 왔지만 개운하지 않았다. 체력적으로 힘드나 보다. 지난 2개월 강행군을 거듭했다. 몸이 지쳤다고 신호를 보내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럴만하다. 페루의 도로는 최악이다. 울퉁불퉁하고 곳곳에 과속방지턱을 만들어놓아 자다가 깜짝 놀라며 깨기 일쑤다. 페루 운전자들은 그 엉망인 노면을 난폭하게 달린다. 뒤에 앉은 게 사람이 아니라 짐짝이라 생각하나 보다.  

리마 버스터미널에서 도착해 우버를 부르려 했다. 오후 6시 30분 리마 번화가 미라플로레스 부근서 우버를 부르려 하니 잡히지 않았다. 버스터미널 앞에 줄 서있는 택시는 공항까지 50 솔을 불렀다. 수중에 가진 현금은 45 솔이었다. 택시에 카드 계산기가 없었다. 우버는 잡히지 않고 페루 솔은 부족하니 이러 지도 저러 지도 못하고 있었다. 페루 화폐를 찾자니 현금인출기가 어디 있는지도 모르겠고 몇 시간 뒤면 떠나는 나라의 통화를 찾고 싶지 않았다. 늘 하던 대로 걷자고 마음먹었다. 


일단 버스터미널에서 벗어나야 했다. 비행기 출발시간이 새벽 1시다 보니 시간의 여유가 있다. 공항 쪽으로 방향을 잡고 걷기 시작했다. 이참에 리마 번화가 미라플로레스의 밤거리도 구경하자는 심정으로 리마의 도심을 정처 없이 걸었다. 한참 걷다 보니 택시가 섰다. 얼마나 물었더니 50 솔 부르길래 내 수중에 45 솔밖에 없다고 했더니 택시 운전사가 흔쾌히 탈라고 했다. 그래서 1시간 동안 공항까지 가면서 내장과 피는 울퉁불퉁 노면과 난폭운전으로 칵테일 셰이커 안에서 흔들려 섞인 칵테일처럼 너덜너덜해진 상태에서 공항에 도착했다. 지쳐서 공항 바닥에 한참 앉아 있다가 출발 3시간 전 체크인하기 위해 줄을 섰다. 우리나라 공항직원이 3명 처리하는 시간에 페루 공항직원은 1명 처리했다. 지루하기 그지없는 기다림 끝에 체크인하고 출국 게이트로 이동하자 맥이 풀렸다. 바닥에 앉아서 칸쿤 숙소를 예약했다. 


비행기 좌석에 앉자마자 곯아떨어졌다. 비행기가 어떻게 이륙했는지 생각나지 않았다. 비몽사몽 간에 깨어보니 멕시코 칸쿤이었다. 5시간 넘는 비행이었다. 새벽 1시에 출발해 오후 6시 30분가량 칸쿤에 도착했다. 칸쿤 공항에서는 멕시코 출입국심사 직원 하나가 밤새 비행에 시달린 여행객들을 녹초로 만들었다. 남성 직원 하나가 200여 명이 넘는 여행객 출입국 심사를 처리했다. 이 직원은 일하다 갑자기 사라졌다 한참 뒤에 나타났다. 그동안 여행객들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기다려야 했다. 일부 여행객은 자리에 삼삼오오 앉았다. 어이가 없었다. 우리나라 공항 출입국 직원들이 얼마나 빠르게 그리고 탁월하게 업무를 처리하는지 새삼 깨달았다. 점점 여행객들의 짜증이 극에 달하자 공항 측은 골통 직원을 빼고 여직원 3명을 배치해 수속 업무를 서둘렀다. 그리고 나오니 오전 8시가 훌쩍 넘었다. 2시간가량을 출입국 수속 업무로 소진한 것이다. 

 

공항에서 나오자 택시 삐끼들이 한여름 날파리처럼 달려들었다. 나는 공항 셔틀버스 ADO를 탄다고 거듭 말했지만 지겹게 쫓아왔다. 결국 버스로 들어가서야 날파리들이 물러갔다. 20분가량 달리니 칸쿤 센트로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숙소까지는 도보로 10분 거리. 체크인 시간까지 시간이 남아서 여기저기 정처 없이 돌아다녔다. 길거리에서 만들어 파는 타코를 사 먹었다. 닭고기와 양파를 얇은 빵에 넣어 만든 음식이었다. 우리나라 돈으로 1300원밖에 되지 않았지만 엄청 맛있고 먹고 나니 듬직했다. 자기네 음식을 맛있게 먹는 동양인이 보기 좋았나 보다. 음식을 가져다주는 여인네가 따뜻한 미소를 게걸스럽게 먹고 있는 나를 보고 있었다. 하나 더 시키니 웃으면서 하나 더 가져다주는데 닭고기 속이 훨씬 많이 들었다. 


따뜻한 휴양 도시, 칸쿤은 여유가 넘치는 도시다. 이곳이 마음에 들었다. 숙소로 가서 짐을 맡기고 비치웨어로 갈아입은 뒤 해변으로 나갔다. 숙소에서 해변까지 30분 걸어야 한다. 따스한 햇볕을 받으며 느리게 해변으로 걸었다. 도로 옆으로 한참 걸었더니 호텔과 콘도미니엄이 줄지어 해변을 따라 줄지어 늘어서 외부인의 해변 접근을 막고 있었다. 호텔 사이로 비집고 들어갔더니 하얀 모래사장 위에 침대들이 늘어서 있는 해변 휴양지가 펼쳐졌다. 호텔마다 해변을 구획을 나누어 투숙객이나 회원 대상으로만 음식과 음료 서비스를 실시하고 외부인은 돈 주고 음식이나 음료를 사 먹을 수조차 없었다. 칸쿤 해변은 가진 자들의 천국이었다. 얼핏 보아도 서유럽 국가에서 온 백인들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었다. 

해변을 따라 걸었다. 해안가로 밀려든 해초들이 썩어가고 있어 해안은 썩은 내와 비린내가 진동했다. 해안 모래는 하얀 분말처럼 고왔으나 해변으로 밀려든 해초의 잔해들로 지저분했다. 해변 따라 7km 이상 걸었을게다. 서핑 클럽에서 도로로 빠져나와 시내버스 R-1을 타고 도심으로 돌아왔다. 공항에서 도심으로 들어올 때는 ADO버스, 해안가에서 도심으로 들어올 때는 시내버스 R-1을 탔다. 관광객이 비싼 택시를 이용하는 것과 달리 나는 현지인처럼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할 때 뿌듯해진다. 뭔가 여행지 속으로 조금 더 깊게 들어가 체험한 느낌이랄까. 시내버스 안에는 라틴 음악이 떠나갈 듯 울리고 현지인들이 하나둘씩 어울려 버스를 타고 있는 모습이 현실적이었다. 칸쿤의 시내버스는 운전기사 옆으로 난 앞문으로 맨 뒷좌석에 붙은 뒷문으로 내린다. 버스비는 12페소로 대략 한국 원화로 920원가량이다. 


다음날 칸쿤을 떠나 버스로 한 시간 떨어져 있는 플라야델카르멘으로 옮겼다. 칸쿤과 비슷한 휴양지지만 물가는 칸쿤보다 싼 곳이다. 그곳에서 미국 횡단팀 멤버들과 함께 멕시코 여행 전문가를 만났다. 열흘간 멕시코 여행 일정을 함께 짜기 위해서다. 마야와 아즈텍 유적지 위주로 동선을 짰다. 멕시코 여행은 중부 아메리카 고대 문명을 공부하며 채워졌다. 


해초 썩은 내 진동하는 카리브해의 휴양지 플라야델카르멘

칸쿤에서 ADO버스를 타고 한 시간가량 달리는 플라야델카르멘에 도착했다. 칸쿤이 신혼여행지라면 플라야델카르멘은 카리브해 해변에 바짝 붙어있는 해양 스포츠 천국이다. 관광객에 맞춰 잘 조성된 휴양지라는 느낌이 드는 곳이다. 하지만 걸어서 5분이면 닿는 해변이 썩어가고 있다. 바다 한가운데 떠올라 썩어가는 해초들이 해안가로 밀려들면서 해변을 시꺼멓게 오염되었다. 원래는 해안까지 몰려오지 않은데 얼마 전부터 격년 주기로 해안에 몰려들고 있다. 기후변화 여파가 카리브해까지 닿은 것이다.

썩어가는 해초 냄새가 마을 전체를 감싸지만 센트로 지역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음악을 크게 틀어놓아 시끌벅적하고 거리는 오가는 관광객들로 북적인다. 이곳에서 하루도 더 있고 싶지 않아 내일 아침 일찍 렌터카를 빌려 도시를 빠져나가기로 했다. 미국 횡단팀 일원을 일찍 만나 멕시코 여행을 함께 하기로 했다. 내일부터 차를 빌려 유카탄 반도를 시계 방향으로 돌면서 주요 관광지와 마야 유적지를 들른다. 준수와 성재가 워낙 역사에 대한 지식이 풍부해 함께 가면서 마야와 아즈텍 문명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을게다. 


준수는 참 많이 안다. 지식에 대한 탐심이 아주 강하다. 그걸 다른 사람에게 정확하게 설명하는 걸 좋아한다. 역사와 유적지 위주로 여행하는 사람에게는 더없이 좋은 파트너다. 성재는 아직 모르겠다. 한국에서 2번 만나고 말았으니 섣불리 어떤 사람이라고 규정하기 조심스럽다. 다만 오늘 성재 숙소에 가서 타코를 안주 삼아 맥주를 함께 마셨는데 여유가 느낄 수 있어 좋았다. 만만치 않은 사람임에 틀림없지만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서 부드러움과 여유가 느껴진다. 이런 친구들과 멕시코와 미국을 여행할 수 있다니 다행이다. 


내일 멕시코 일주가 시작된다. 나야 운전만 하면 된다. 국제 운전면허증이 나만 가지고 있다. 유카탄 반도를 손수 운전해 돌아다닐 수 있다니 꿈만 같다. 유적지도 들르고 세노테에서 수영도 하고. 멕시코에서만큼은 생고생하는 걸 피하려 한다. 지난 2개월간 고생으로 충분하다. 멕시코에서는 여행을 느긋하게 즐기고 싶다.


렌터카 몰고 멕시코 유카탄 반도를 시계 방향으로 돌다


멕시코 여행은 편하다. 렌터카를 빌려 이동이 간편하다. 동선이 자유로워지다 보니 몸도 편하고 시간 활용도 알찼다. 숙소는 해안에 떨어진 곳을 빌렸는데 1인당 하루 3만 3천 원으로 방 2개 딸린 레지던스를 빌릴 수 있었다. 방 앞에는 길이 15m 수영장도 있다. 꽤 잘 꾸민 리조트임에도 우리 일행 말고는 투숙객이 없다. 우리만 수영장을 이용했다. 마트에서 쌀과 고기, 상추, 마늘, 고추장까지 사와 돼지고기구이와 밥을 해 먹었다. 여행의 질이 상당히 높아졌지만 셋이 비용을 부담하다 보니 1인당 비용은 훨씬 줄었다. 

차를 빌린 뒤 가장 먼저 간 곳은 플라야델카르멘에서 남쪽으로 1시간 30분가량 떨어진 마야문명 유적지다. 유카탄반도 북부에서 가장 높은 피라미드(42m)를 비롯해 서기 600~800년 세워진 돌 건축물이 밀림 속에 자리한 곳이다. 입구에 차를 세운 뒤 걸어서 1시간 30분가량 걸어서 코바 곳곳의 유적지를 돌아다녔다. 마야와 아즈텍 문명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준수와 성재가 돌아가면서 들려주었다. 마야 유적지를 걸어 다니며 여러 나라 문명과 역사에 대한 해박한 사람들을 2명이나 함께 다니다니 여러모로 유익했다.   


아쉬운 건 카리브해의 상태였다. 갈조류 모자반 속 해초들이 해안으로 몰려와 썩으면서 황화수소 같은 유해한 기체를 내뿜고 있다. 플라야델카르멘에서 차를 타고 1시간 떨어진 해안 마을 툴룸은 해안에 나가는 것조차 역겨울 만큼 시커먼 해조류로 뒤덮였다. 단지 유카탄 반도 쪽 해안만의 문제가 아니다. 카리브해 연안의 국가 대다수가 겪고 있는 문제다. 기후변화가 야기한 재앙이라고 여겨진다. 결국 바다에 들어가는 건 포기하고 숙소 수영장에서 수영하고 놀았다. 내일은 툴룸에 있는 마야 유적지를 둘러본 뒤 호수와 세노테에서 놀기로 했다. 바다보다는 내륙의 담수호에서 노는 것이 좋을 듯하다.


멕시코서 가장 아름다운 호수 바깔라르에 빠지다


툴룸에서 남쪽으로 3시간가량 달리니 유카탄반도 남쪽 끝 바깔라르 호수에 도착했다. 바깔라르는 일곱 빛깔로 빛나는 담수 호수로 유명하다. 얼마 전 tvN이 방영한 <서진이네>의 촬영지로 유명하다. 숙소로 가는 도로 옆으로 나란히 달리는 호수를 보면서는 일행은 탄성을 질렀다. 직선주로에서 잠시 고개를 돌려 본 호수의 빛에 홀렸다. 서둘러 체크인한 뒤 호숫가로 나갔다. 호숫가를 따라 줄지어 들어선 사유지 탓에 호수로 접근하기 쉽지 않았다. 차를 타고 5분가량 달려 공용 해변으로 나갔다. 쪽빛 물이 하얀 모래 바닥에 풀리면서 가까운 곳은 연하디 연한 푸른빛으로 따뜻하고 멀리는 수심이 깊은지 쪽빛 물이 층을 이루며 뻗어나갔다. 호수 반대편에는 짙은 녹음으로 덮인 숲이 지평선을 대신했다. 가까운 곳부터 먼 곳까지 그라디에이션처럼 물빛이 변하고 그 끝에는 푸른 숲이 얇게 뻗고 그 위로 연한 하늘색 하늘을 배경 삼아 하얀 뭉게구름이 곳곳에 흩어졌다. 그곳 호수에 누우면 햇빛은 얼굴 가득히 쏟아지고 하늘빛에 눈이 시리다. 

호수 물이 따뜻해 수영하기 좋다. 햇빛이 따갑지만 물속에 들어가면 물놀이하기 쾌적한 수온을 느낄 수 있다. 그러다 호수 가운데로 나가면 찬물이 쓱하고 몸을 감싸고 나가면서 수심이 깊어지고 있음을 알려준다. 호수 가운데까지 나아가도 물이 목까지밖에 차지 않는다. 더 나아가 쪽빛 호수까지 가고 싶었지만 아무래도 위험할 듯해 눈으로만 쪽빛을 즐기고 이내 누워 하늘을 보며 배영으로 선착장으로 돌아갔다. 호수 깊숙이 가면 사방이 나 혼자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쾌적한 호수를 홀로 차지하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천국을 닮은 곳이리라. 

일행 중 물 공포증이 있는 친구가 있어 선착장 근처에 정박되어 있는 배에서 구명조끼와 구명튜브를 구해와 발로 일어설 수 있는 곳까지 데려다주었다. 발이 닿지 않는 곳을 지나야 수심이 낮은 곳까지 갈 수 있었는데 한번 물에 빠져 죽을뻔한 기억 탓에 이 친구는 구명조끼를 입었어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결국 구명튜브까지 가져와 몸에 끼고 나서야 호수 가운데로 움직일 수 있었다. 그곳에는 수심 1.5m 미만이라 서 있을 수 있었다. 외국인 관광객들이 그 해프닝을 보며 웃고 있었다. 그러다 잠시 수영 배우던 때를 생각했다. 당시 수영강사 팔을 하도 세게 잡는 바람에 팔에 멍이 들게 한 기억이 떠올랐다. 수영을 2년 이상 배운 덕에 지금이야 물 공포증에서 벗어났지만 나도 그전에는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인간이 그런가 보다. 그리 쉽게 옛일을 잊는다. 그 친구가 물 공포증에서 벗어나 눈이 시릴정도로 아름다운 호수에서 즐겁게 놀 수 있도록 도왔다. 호수 가운데까지 나아가 구명 튜브에 의존해 움직이며 노는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았다. 그렇게 나는 조금 더 나아지고 있었다.


치첸이사에서 마야의 얼굴과 마주하다


느지막하게 아침을 먹고 치첸이사로 갔다. 치첸이사는 900~1000년 유카탄 지역을 지배한 마야와 툴텍 문명의 합동 유적지다. 쿠클칸의 피라미드를 비롯해 마야의 건축물들이 비교적 잘 보전되어 있다. 북부에서 번성한 툴텍 문명의 일부 세력이 유카탄 반도로 내려와 마야인과 섞여 살면서 형성된 도시로 알려져 있다. 툴텍과 마야 문명이 결합한 유적지로 유명하다.

치첸이사의 랜드마크는 유적지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 쿠쿨칸의 피라미드다. 쿠쿨칸의 깃털 달린 뱀이라는 뜻으로 마야의 주신이라 한다. 마야 신화의 제우스라고나 할까. 쿠쿨칸은 치첸이사 유적지마다 볼 수 있다. 스페인인들이 엘 카스(성)이라고 부른 이 거대 피라미드의 첫 계단 양쪽으로 쿠쿨칸이 입을 벌리고 있다. 쿠쿨칸은 제사장을 겸한 왕의 이름이기도 했다. 신의 이름을 빌려 왕권의 신성함을 강화하려는 의도였을 거다. 

피라미드 정면은 보수 공사해서인지 계단 모양을 갖추며 웅장하게 위로 뻗어올라가 마야 문명의 전성기를 가늠하게 했다. 반면 뒷면은 돌계단이 무너져 내려 그 속에 쌓은 돌무더기가 피라미드의 속살처럼 드러나있다. 쿠쿨칸이 입을 벌리고 있는 정면이나 입구에서 들어오면 보이는 면은 인간의 노력에 의해 옛 모습을 갖추고 있지만 다른 면은 세월이 남기고 간 파괴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어 유적으로서 가치가 더 돋보였다. 

피라미드를 보고 뒤로 돌아 후에고 데 펠로타(축구와 농구가 결합된 마야 구기) 경기장으로 향했다. 스포츠이면서 제사 행사인 후에고 델 펠로타는 손을 쓰지 않고 신체의 다른 부위를 써서 상당히 높이 설치된 고리 모양의 상대 골대에 공을 넣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끔찍한 건 이긴 팀 주장의 심장을 산채로 꺼내 신에게 바쳤다고 한다. 산 재물은 영광으로 여겼고 그의 가족에게는 많은 재물이 제공됐다. 심장은 차크몰이라는 조각상에 올려놓았다.   

산 재물의 심장을 바치는 제례 행위는 중앙아메리카에서 널리 퍼진 악습이었다. 아즈텍은 산 재물의 심장을 꺼내 먹기도 했다고 한다. 마야는 먹지는 않고 꺼내기만 했다. 후에고 데 펠로타 경기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사람 목을 잘라 꼬챙이에 꿰어 전시한 곳(촘판플리)도 있다. 스페인 사람들이 그 광경을 보고 경악했다고 한다. 잔악하기로는 결코 뒤지지 않은 이들이 놀랐다고 하니 어이없기도 하지만 인간 목을 꿰어 전시한 광경을 떠오르니 소름이 끼쳤다. 그 제단 벽은 해골이 양각된 돌로 마감되어 있다. 

깊숙이 안쪽으로 들어가면 신성한 세노테가 있다. 그곳에서도 인신공양을 비롯해 제시가 행해졌다고 한다. 제법 깊은 세노테라 들어가면 살아 나오기 쉽지 않을 듯하다. 멕시코 유카탄 반도에서 세노테는 흔하다. 마야 시대에서는 세노테를 연결해 왕족을 비롯해 지배계급이 작은 카누를 타고 피신하는 통로를 만들었다고 한다. 유카탄에서는 땅을 파면 세노테가 나온단다. 세노테는 식수와 용수를 구하던 곳이라 마야는 세노테를 중심으로 마을을 조성한 듯하다. 

푸에고 데 펠로타를 빠져나오면 천 개의 기둥으로 만들어진 신전이라는 불리는 제법 웅장한 건축물이 나온다. 얼핏 피라미드와 닮았지만 신전 앞뒤로 돌기둥들이 신전을 지키는 전사처럼 줄지어 서 있다. 옛날에는 그 기둥 위에 지붕을 얹었다고 하니 옆으로 아주 넓게 지어진 건축물이라 하겠다. 고층 상가 건물 앞에 만들어진 쇼핑몰 같은 곳이라나 할까. 햇볕이 강한 유카탄 반도의 기후 조건을 감안하면 돌기둥들이 받치고 있는 지붕 아래를 걸으면 시원하게 신전을 관통했을게다. 돌기둥은 제법 넓은 면적의 신전 폐허를 따라 같은 간격으로 꼼꼼하게 세워져 있다. 일부는 무너져 내리고 있지만 그래도 보존 상태가 상당히 좋다. 

쿠클칸의 피라미드를 등지고 숲 속으로 들어가면 쿠클칸 피라미드의 미니미 같은 작은 피라미드가 세워져 있다. 그 앞으로는 둥근 원형 돌판이 세워져 있고 그 너머로 금성을 관측한 비너스 플랫폼이 세워져 있다. 벽에는 마야의 얼굴이 담긴 문양이 돋을새김으로 조각되어 있다. 여기저기서 파는 티셔츠마다 새겨진 마야 전사들의 전투 장면이나 생활상을 담은 그림은 이 조각들에서 따왔을 거다. 이 돌에 새긴 조각에 새긴 마야인의 얼굴을 한참 보았다. 1000년 넘은 문명의 주인공과 마주하는 기분이 묘했다. 

5월 유카탄은 우리나라 한여름이다. 섭씨 38도 넘는 더위 탓에 걷는 내내 땀으로 샤워했다. 햇볕은 살인적이라 할 정도로 무지막지한 자외선을 쏟아붓고 있다. 이 더위를 견디며 2시간 치첸이사 내부를 걸었더니 녹초가 되었다. 에어컨 바람에 더위를 식히고 메리다로 떠났다. 메리다는 인구 100만 명 이상이 사는 유카탄 최대 도시다. 인근에 욱스말이라는 마야 유적지 외 달리 갈만한 곳은 없지만 메리다에서 이틀을 지내기로 했다. 잠시 쉬어가는 곳이라나 할까. 

메리다에서 어이없는 해프닝 탓에 미국 횡단이 무산될 뻔했다. 멤버 하나가 처한 특수 사정과 타협하기 힘든 내 성격이 지랄처럼 꼬여 미국 횡단은 거의 포기했다. 결국 그 멤버가 이탈하고 나는 제정신 차리고 나서 멤버 4명으로 21일간 횡단으로 방향을 겨우 잡았다. 납득이 가지 않은 지출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내 고집이 여러 사람을 힘들게 했다. 절대 가치는 없다는 진리를 지금까지 본 그 많은 책에서 깨달았다면서. 지금까지 지켜온 원칙도 상황에 따라서 바꿀 수 있을 만큼 나이가 들었다고 생각했는데. 글쎄 아직도 철이 없는지 쓸데없는 고집이 여전하다. 아슬아슬한 위기에서 벗어나 미국 횡단 계획은 간신히 살아남았다. 철현아~ 이제 철 좀 들자. 나라 팔아먹지 않는다는 원칙 빼고는 상황에 맞추면서 살자. 제발. 


바야돌리드 산체 세노테에서 즐긴 빗속의 물놀이


바깔라르를 떠나 바야돌리드로 향했다. 북쪽으로 300km 떨어진 곳이다. 차로 3시간 달리니 인구 1만 명가량이 사는 마을, 바야돌리드에 도착했다. 바야돌리드는 스페인 식민도시로 메리와 칸쿤 사이에 있다. 마야 대표 유적지 치첸유사와 가깝다. 숙소에 체크인하자마자 우리 일행은 두 패로 나뉘었다. 준수는 마야 유적지 악발람을 보러 갔고 나와 성재는 악발람 옆 산체라는 세노테로 향했다. 

산체는 툴룸에서 갔던 그란데 세노테보다 상상했던 세노테에 가까웠다. 하늘이 뚫린 동굴 아래로 수심 15m, 지름 30m 물이 고여 있었다. 세노테에 누우면 뻥 뚫린 동굴 지붕 위로 파란 하늘이 보이고 물아래를 보면 깊은 어둠이 수심을 가늠할 수 없게 한다. 어린아이들은 겁도 없이 상당히 높은 다이빙 대에서 소리를 지르며 연거푸 떨어진다. 세노테를 가로지르며 헤엄을 쳤다. 검은 물고기들이 세노테에 가득하다. 검은 몰고기들과 어울려 세노테를 오가다 보니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동굴 속 깊은 우물 같은 곳에 비가 쏟아져 내렸다. 세노테 마감시간 30분가량을 남긴 4시 30분이다 보니 세노테에는 나와 성재, 시카고 출신 마이크와 그의 여자친구 4명이서 비 오는 세노테를 풍덩 거리며 놀았다. 

성재가 상당한 용기를 내 제법 높은 다이빙대에서 두 번이나 뛰어내렸다. 수영이 익숙하지 않아 물은 먹었지만 뛰어내린 뒤 의기양양하며 오는 모습이 근사했다. 마이크 강의에 맞춰 낮은 곳에서 두어 차례 다이빙 자체로 입수했지만 해본 적이 없다 보니 온몸으로 물이 받고 들어가다 보니 가슴과 복부과 따가웠다. 세노테 가운데 떠서 동굴 지붕으로 쏟아져 내리는 소나기를 맞으며 물놀이를 즐기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나중에 멕시코를 떠올리면 바야돌리드 세노테에서 비를 맞으며 헤엄치는 모습이 생각날 게다. 머릿속 깊이 새겨 오랫동안 잊지 싶지 않은 순간이다.


신이 고산에 숨겨둔 별천지, 똘랑똥코


멕시코 북동부 심산유곡에는 가장 아름답다는 온천, 똘랑똥꼬가 숨어있다. 숲을 가로지른 계곡 물이 물방울처럼 알알이 흩뿌리는 듯 내리는 폭포, 폭포수 아래 동굴을 가득 채우고 넘쳐흐르는 담청색 시냇물, 산비탈에 기대 파내어 만든 온천탕마다 가득한 담청색 온천수, 온천지 앞에 병풍처럼 펼쳐진 산세 등 별천지 비경을 보며 온천을 즐길 수 있는 곳이 똘랑똥꼬다. 유카탄 반도 남쪽 끝에 자리한 바깔로르와 함께 똘랑똥꼬를 멕시코 최고의 여행지로 꼽고 싶다. 

멕시코 시티에서 차를 빌려 북쪽으로 50km가량 달리니 멕시코 아즈텍 유적지 테오티우아칸에 도착했다. 세계에서 3번째로 큰 피라미드로 꼽히는 태양의 피라미드가 도시 한복판에 토산처럼 서 있는 아즈텍 이전 문명의 유적지다. 태양의 피라미드를 바로 보고 왼쪽으로 200m 이상 떨어진 곳 달의 피라미드가 자리한다. 달의 피라미드는 태양의 피라미드를 2분의 1 크기로 축소한 미니미처럼 보였다. 


서기 100년쯤 옛 문명의 주인들은 달의 피라미드에서 사람을 산채로 갈라 심장을 꺼내 신에게 바치는 의식을 벌였다. 셀 수 없는 사람들이 제단에서 죽었다. 일부는 그 고기를 먹었다고 한다. 장방형으로 계단을 쌓아 올린 제단들이 거대 피라미드 사이에 나열해 저 멀리 뻗어 있다. 서기 100년쯤에 지어진 도시라고 믿기 힘들었다. 아즈텍 문명이 훗날 이곳을 점령한 뒤 그 규모에 놀라 ‘신들의 도시’로 믿었다. 지배세력은 예부터 거대 건축물을 짓고 범접할 수 없는 권력을 과시했다. 거대 건축물 위에서 산 사람을 갈라 심장을 신에게 바치는 제사를 지내야만 유지할 수 있는 권력이라면 망하는 게 낫지 않을까 싶다. 이 도시의 주인은 아즈텍 문명에 밀려 몰락했지만 인신공양이라는 악습은 아즈텍과 마야 문명으로 이어졌다. 

느닷없이 번개가 치며 비가 쏟아질 듯 먹구름이 몰려왔다. 번개는 눈앞에서 내렸다. 우박 같은 비가 소나기처럼 내리려 했다. 동행 준수와 성재는 철수를 결정했다. 다시 북동부 방향으로 3시간을 달렸다. 똘랑똥꼬 초입에 있는 작은 마을에 숙소를 정했다. 숙소 근처 마트에 가보니 불닭볶음면이 눈에 보였다. 한국 음식이 그리웠던 터라 다섯 봉지나 집었다. 숙소에서 불닭볶음면을 땀을 흘려가며 먹었다. 그게 큰 탈을 일으켰다. 세 사람이 돌아가면서 화장실을 다녀와야 했다. 준수는 밤새 설사까지 하며 힘들어했다. 그나마 매운맛에 익숙한 나도 화장실에서 한참 고생해야 했다. 

다음날 채 수습하지 못한 속을 달래 가며 똘랑똥꼬에 도착했다. 산비탈에 따개비처럼 붙은 모양의 온천탕에 들어가 멕시코 산악을 바라보며 온천을 즐겼다. 신선놀음이 따로 없었다. 한참 따뜻한 물에서 물을 불린 뒤 온천탕 반대편 구석에 자리한 폭포와 동굴을 보러 이동했다. 구불구불 산길을 돌아가니 파스텔톤 담청색 온천물이 부러 쌓은 물막이 돌에 고여 층층이 수영장을 만들며 흘러내리는 광경에 황홀했다. 담청색 물빛이 너무나도 예쁜 수영장마다 물놀이객이 보였다. 그 물이 시작되는 곳을 찾아 상류로 올라가다 그 폭포를 만났다. 

높이 솟은 계곡에서 나리는 물이 알알이 방울져 이끼와 나무가 붙은 절벽 아래로 흩날리듯 떨어지고 있었다. 카메라 조리개를 열고 셔터 스피드를 늦추고 계곡이나 폭포 물을 연속 촬영해야 볼 수 있는 광경이 눈앞에서 펼쳐졌다. 그것도 동영상으로. 너무 아름다웠다. 고개를 한참 치켜올리고 알알이 떨어지는 비경을 넋 놓고 보았다. 그 폭포 밑으로 넓고 깊은 동굴이 보였고 그곳에서 담청색 물이 넘쳐 흘러나왔다. 동굴 속으로 들어갔다. 가슴팍까지 따뜻한 온천수가 올라왔다. 넓은 동굴 가운데 종유석이 매달려 있었고 갈라진 틈으로 온천수가 쏟아졌다. 동굴 속에서 폭포수로 즐기는 온천이라니 가히 가장 아름다운 온천이라 불리는 이유를 가늠할 수 있었다. 

폭포 위쪽에 깊숙이 파고 들어간 동굴이 하나 더 있었다. 입구 폭이 작지만 깊이가 깊어 한참 걸어 들어가야 동굴 끝에 닿는다. 동굴 안까지 빛이 들지 않아 인공조명 없이는 한 치 앞을 볼 수 없다. 사람들은 방수팩에 넣은 휴대전화의 조명을 켜고 오갔다. 아무 조명 없이 끝까지 가다 목까지 차오르는 온천수에 놀라기도 하고 동굴 벽에 머리도 찧으면서 끝내 동굴 끝까지 갔다. 그러다 브라질 리우데자이네루에서 산 슬리퍼 한 짝을 잃어버렸다. 물속에서 벗겨졌는데 동굴이 어두워 찾을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한 짝만 신고 동굴을 나왔더니 잃어버린 슬리퍼가 입구 앞에서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부력으로 떠올라 온천수 따라 밖으로 흘러나온 것이다. 

준수와 성재는 나 못지않게 비경 속에서 온천욕을 즐기고 있었다. 성재에게 “바깔로르 못지않게 똘랑똥꼬가 좋다"라고 말했다. 내가 바깔로르를 얼마나 좋아했는지 아는 성재가 다소 놀라워했지만 똘랑똥꼬가 멕시코 여행의 백미라는 것에 동의했다. 멕시코 여행을 계획하는 이라면 똘랑똥꼬와 바깔로르를 포함시키길 권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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