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전하민 Jul 17. 2022

서른둘, 미국 서부 여행

무엇을 바라고 가나

결코 안락하다고   없는 아시아나 항공 이코노미 좌석에서 기지개를 수십  켜고 있다. 11시간 동안의 야간 비행이 끝나간다. 잠은  숨도 자지  했다. 와인을 두어  마셨는데도 소용없었다. 피곤하지만 정신이 말짱했다. 나는 맹수를 만난 타조가 모래에 머리를 파묻는 것처럼 눈을 계속 감고 있었다. 오은영 박사에 따르면 이렇게 눈을 감고만 있어도 90% 잠을  효과가 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 내가 느끼는 수면부족으로 인한 편두통과 안압, 어지러움을 생각하면 90%라는 숫자는 대체 어디서 나온 건지 그녀에게 따저묻고 싶다.)


뭐, 괜찮다. 한 시간 후면 시애틀에 도착하니까. 언젠가부터 막연하게 삼십 대 초반 즈음엔 미국을 한번 여행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품었지만 구체적인 계획은 세우지 않았다. 그러다 몇 달 전 어느 금요일 밤, 야근을 마치고 자정이 넘은 시간에 쓰러지듯 귀가한 밤이었다. 평소처럼 혼자 술을 마셨다. 그날 유독 고됐는지 나는 정신이 핑 돌 정도로 빠르게 맥주캔을 비웠다. 그리고 충동적으로 다음 달 LA행 비행기 티켓을 결제하고 잠들었다.


다음날 술에서 깨고 보니 아무래도 미국을 혼자 여행하는 건 별로일 것 같았다. 제주도 정도라면 혼자여도 괜찮았지만 미국은 혼자 돌아다니기 부적합하다. 그건 여행이라기보단 여행을 빙자한 정신적 자해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겐 이래저래 사람들을 많이 만나던 시절도 있었지만, 근 일이 년은 회사 말고는 딱히 사람들을 자주 만날 기회가 없었다. 주말도 보통 혼자 집에서 쉬거나 호수를 뛰는 게 전부였다. 그래서 이번 휴가는 혼자 푹 가라앉기보다는, 좋아하는 사람들과 웃고 떠들고 싶다고 생각했다. 다행히 두 친구와 마음이 맞아, 날짜를 조금 조정하고 다시 티켓팅을 했다.


행선지를 고르면서 고민이 있었다. 시애틀은 친구(의 친구)가 살아서, 샌프란시스코와 LA는 서부를 대표하는 대도시니까 넣어주고, 대자연도 좀 봐야 하니 요세미티 국립공원에도 가기로 했다. 문제는 라스베이거스와 포틀랜드를 둘 다 갈 수 없다는 것. 환락을 위해 지어진 사막 위의 인공도시와 힙스터의 성지 중에 나는 후자를 골랐다. 이 선택을 두고 나의 팀장은 ‘왜 그런 선택을 했냐’고 했고, 나의 친구는 ‘너는 무언가를 선택할 때 감성을 한 스푼 덜으라’고 했다. 뭐 어쩌겠나. 이게 나인 걸.


이런 여행은 인생의 특정한 시기에만 가능하다. 떠나기 며칠 전 그 사실을 불현듯 깨닫고 황급히 카메라를 한 대 샀다. 짐벌 카메라 오즈모 포켓 2. 눈에 담기는 타지의 면면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다. 서툴지만 여행 브이로그 같은 느낌으로 짧은 영상도 만들어보기로 했다. 유튜버나 인플루언서가 되기 위한 것은 아니다. 힘이 없을 때, 작은 한 두 개의 영상이 꽤 든든한 지원군이 될 수 있음을 이제 알기 때문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