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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yden Jun 12. 2018

새벽 2시에 건네는 깊은 위로

라디오 디톡스, 백영옥입니다.

라디오디톡스, 백영옥입니다
편성 : MBC 표준 FM
주파수 : 95.9 MHz(서울/경기)

 가끔 깨어 있는 새벽 2시에는 외로움이 느껴진다. 주변은 고요하기만 하고, 자연스레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던 일들이 떠오른다. 가장 친한 친구와 뜬금없이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가도, 지금 자고 있겠지 하는 생각에 들었던 핸드폰을 아쉽게 내려놓는 밤. 그래서 이때는 라디오를 즐겨 듣는다. 어디 사는 누군가의 사연이 전파를 타고 DJ의 입을 통해 흘러나오는 것을 들을 때면 나와 상관이 없는 사연인데도 왠지 모를 동질감이 느껴진다. 이 시간에도 쉬지 않는 TV를 보며 외로움을 잊는 방법도 있겠지만, 마치 모닥불과 같이 라디오 앞에 모여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고 공감을 하며 외로움을 달랠 수 있는 건 라디오만이 주는 장점이다.


 이 시간대에 방송하는 다양한 프로그램 중에서, '라디오 디톡스, 백영옥입니다(이하 디톡스)'는 사연에 특히 집중한 프로그램이다. 디톡스는 무조건 익명, 긴 사연에 긴 호흡으로 우리끼리 깊은 이야기를 나눠보는 시간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운 '딥톡스' 코너를 중심으로 흘러간다.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했던 속내를 함께 고민해주고, 누구보다도 가장 깊이 이해해주는 것이 청취자에게 위로가 된다면, 딥톡스를 통해 청취자를 깊이 공감하고 위로해주고자 하는 제작자의 기획의도가 엿보인다. 그 의도는 두 가지 차별점에서 찾을 수 있다.


 먼저 긴 상담내용이다. 이 코너는 하나의 사연만으로도 30분에 이르는 분량을 방송한다. 사연의 내용은 편지 한 통의 분량이며, 이에 대해 DJ가 사연을 자세하게 상담하며 코너를 이끌어간다. 이 과정에서 다른 청취자의 의견이나 코너의 개입은 최소화된다.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던 깊은 고민을 털어놓는 과정에서 사연 당사자는 단어 하나하나에도 신중하게 생각하며 편지를 적어 내려갔을 것이다. 그래서 이 사연은 정제된 언어로 쓰인 연애편지와도 통하는 부분이 있다. 실제 종이를 넘기는 소리와 함께 천천히, 낮은 톤으로 사연을 읽는 DJ를 통해 청취자는 자신에게 온 편지를 읽듯 자연스럽게 몰입하게 된다. 그러면서 당사자의 사연을 마치 내 것처럼 받아들인다. 사연 당사자와 DJ, 청취자 간의 공감이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부분이다.

라디오 디톡스의 진행을 맡고 있는 백영옥 작가 Ⓒ채널예스

 그다음으로, 소설가인 백영옥 작가님이 DJ 진행을 맡고 있다는 점이다. 사내 아나운서나 유명 연예인이 DJ를 맡는 보통의 라디오 프로그램과 다른 부분이어서 의아할 수도 있다. 하지만 소설가야말로 인간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다. 소설가는 아무것도 없는 백지에서 인물의 마음을 그려낼 수 있을 만큼 인간 내면의 심리 묘사에 강하다. 그만큼 인간에 대한 깊은 통찰을 하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사연을 정확하게 진단하고 당사자의 마음을 보듬어줄 수 있다. 


 DJ는 다른 사람과 결혼을 앞둔 전 남자 친구가 나를 찾아와 마음을 흔든다는 사연에는 남자의 이기적인 행동에 절대 흔들리지 말라고 단호하게 조언하면서도 "함께 읽는 나도 마음이 너무 아프다"며 울먹거린다. 시기심에 친구랑 똑같은 직업을 선택했다가 고생하고 있다는 사연에는 "얼마나 힘들까, 손이라도 잡아주고 싶다" 마음 아파하면서 진정한 자존감에 대해 짚어본다. "자존감이 높다는 건요, 나보다 더 뛰어난 사람에 대해서 '아, 대단하시네요 멋집니다'라고 말하면서도 '나도 나름대로의 멋짐이 있고 꿈이 있으니까'라고 생각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사연 당사자는 나의 가장 힘든 이야기를 함께 고민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으며, 청취자 역시 자신을 돌아볼 수 있게 된다. 앞선 공감과 함께 커다란 이해의 장을 만드는 것, 이것이 디톡스가 청취자에게 건네고자 하는 위로다.


 모두가 잠든 감성의 새벽 2시에 홀로 잠이 오지 않는다면, 디톡스를 청취하며 마음을 달래 보는 건 어떨까. 내가 사연의 주인공이 되지 않더라도 이야기를 함께 고민하고 공감하며, 어느새 나 자신에게도 울림이 전해지고, 차가워진 마음을 따뜻하게 녹일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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