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번의 퇴사, 열 번의 남미
책 한 권으로 여행을 대신할 수 있을까? 많은 사람이 그렇듯 늘 여행을 꿈꾸지만, 현실에 발을 붙이고 있느라 일탈이 참 어렵다. ‘어차피 떠나지 못하는 것, 간접 경험이라도 해보자’는 마음에 여행 서적을 이리 기웃 저리 기웃하던 찰나, 좋은 기회로 남미 여행을 간접 경험하게 되었다. 텀블벅으로 후원한 책의 이름은 ‘한 번의 퇴사, 열 번의 남미’.
책을 기다리며, 지금 있는 대한민국과 지구 정 반대편에 있는 나라들에 대해 상상을 했다. 체 게바라, 세계적인 히트곡 Camila Cabello의 <Havana>, 리우의 예수상과 브라질의 리우 카니발, 또……. 아무튼, 직접 가보지 못할지언정 남미의 향기라도 맡고 싶은 열망을 책을 통해 채울 수 있길 바랐다. 소위 ‘잘 나간다’ 하는 대기업을 때려치우고 과감하게 남미 여행 인솔자가 된 작가의 생각이 궁금했다. 직장인들이 상상만 하는 판타지를 직접 실행하신 분이니까! 그리고 기다리던 책이 왔다. 책은 생각보다 얇았다.
책에는 대부분의 여행 서적들이 다루는 콘텐츠가 빠져 있었다. 맛집은 어디가 맛있으며, 여행 코스는 어떻게 짜면 가장 효율적이며, 박물관의 이용 시간은 어떻게 되며…. 따위의 정보들 말이다. 매번 블로그나 책에서 빈틈없이 빼곡하게 채우는 여행 정보를 보다가 이 책을 받아보니 어딘가 허전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새벽까지 책을 읽어가며 마음속 허전함이 더 단단하게 채워짐을 느꼈다. 늘 다루어지는 쓸데없이 자세한 정보 대신, 남미를 자신의 세계로 고스란히 받아들이고 보이지 않는 것들까지 사랑하려는 작가의 마음 때문이었다.
책은 나에게 다른 여행서적에서 볼 수 없었던 진짜 남미를 알려주었다. 포토시 광산에서 은을 채굴하는 사람들의 어두운 이야기, 보통의 한국 사람보다 훨씬 못한 월급을 받아가며 또 그럭저럭 웃으면서 살아가는 친구들 이야기, 히치하이크를 하며 만난 넉살 좋은 아저씨 등…. 패키지여행으로는 절대 얻을 수 없는 정보와 상념을 통해, 여행지로서의 남미가 아니라 진짜 남미 그 자체의 냄새가 났다. 남들에게 과시하려고 뿌리는 향수보다는 꾸미지 않은 사람 냄새 자체에 가까운 느낌이었다.
남미로 여행을 떠나기 전, 혹은 남미에 대해 자세히 공부하고 싶어 이 책을 찾는다면 생각과는 다른 내용에 조금은 놀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책의 백미는 정제되지 않은 남미 그 자체를 느끼는 데 있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남미 여행자들의 필독서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회사를 때려치우고 일탈에 성공한 작가의 상념은 덤이다. 굳이 남미 여행자가 아니더라도, 책을 읽으며 자유를 찾아 떠난 삶에 대한 갈증을 조금이라도 해소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