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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험디제이 Feb 01. 2021

10개의 수익 파이프라인을 만든 부부N잡러가 되다

코로나로 인한 위기가 우리에겐 최고의 기회였다.

중국에서 시작된 코로나가 전세계의 팬데믹을 초래하고, 대혼란이 지속되고 있는 모습이 언론매체를 통해 연일 보도되는 상황. 직장인, 자영업자, 소상공인 할 것 없이 크고 작은 피해사례도 함께 보도되고 있었고, 보도되는 모든 사례에 아내와 내가 속해있었는데, 대표적인 3가지로 정리하자면 이렇다.     


첫째, 아내는 쇼트트랙 국내 상임심판과 ISU 국제심판을 오랫동안 역임해왔다. 도쿄 올림픽이 취소 되느냐하는 문제가 거론될 정도로 악화된 상황에서 기타 다른 경기들이 개최될 수 없는 상황이었고, 지난 10년간 사명감을 가지고 도전해오더너 심판의 자리에서 물러나게 된 것 또한 한 순간에 불과했다.     


둘째, 나 역시, 코로나로 피해받는 대표분야였던 항공업에 종사하는 입장으로서 가족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해왔던 회사의 기반이 흔들리기 시작했고, 내 의사와는 상관없이 반복되는 유/무급 휴직으로 불안감은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그리고, 회사의 모든 구성원이 불안에 떨고 있을 때, 어쩔 수 없는 회사의 의사결정으로 하나의 사업본부가 매각되면서 직장동료였던 사람들이 한 순간에 다른 회사 직원이 되는 모습을 지켜봐야만 하는 입장이었다. 할 수 있는 것도 너무나 제한되었던 탓에 불안함과 무기력 또한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음을 모두가 느낄 수 있었다. 회사에 다니고 있지만, 이미 실직이 된 것 같은 애매모호한 상황과 계속 암울해지는 항공업의 미래가 우리를 더욱더 암울하게 만들 뿐이었다.     


셋째, 국내에서 제법 많은 사람들이 기차를 이용하는 역사 내에서 프랜차이즈 매장을 운영해오고 있었다. 특수상권에서의 프랜차이즈 매장 운영 경력이 10년차를 넘어서면서 모든 산전수전을 다 겪어왔지만, 코로나로 인하여 악화된 시장은 매순간의 나의 멘탈을 붕괴시키고도 남을 정도의 충격을 안겨주었다. 한 달이 멀다하고 걸려오는 비슷한 업종을 운영하시는 사장님들의 전화. 정보와 노하우를 공유해오며 서로의 성장을 이끌어주시던 분들이 ‘이제 더이상 버티지 못하겠다.“라는 힘없는 목소리가 전화기를 넘어 들려올 때면 회복은 커녕 날로 악화되는 시장 상황에 불길한 마음이 지속되었다.     


하지만,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는 법!

난 이런 어둠의 시간을 충분히 극복해갈 수 있는 최고의 조력자이자 파트너인 아내와 함께하고 있었다. 불안한 마음이 들 때면 새벽까지 대화를 이어나가며 서로에게 위안이 되주었고, 무엇인가 아이디어가 번뜩일때면 시장에서 충분히 경쟁적일지에 대한 객관적이고 촌철살인같은 피드백을 주고 받았다. 어려운 시기를 아내와 함께 고민하고, 방법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다시금 잊고 있던 한 가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단 한 사람으로 결정된다.

언제나 서로를 믿고, 응원해주고.

같은 방향을 향해 함께 나아갈 수 있는 단 한 사람!

이 한 사람만 있다면, 세상에 넘어지 못할 산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 비록 눈앞의 상황은 그 어느때보다 암울했지만, 나에게는 칠흙같은 어려움이라 할지라도 함께 이겨내갈 수 있는 믿을 수 있는 평생의 파트너, 아내가 있었다. 그리고, 아내에게 역시 평생을 함께 믿고 의지해나갈 남편이라는 든든한 한 명의 친구가 있었다. 본업을 잃은 아내, 본업이 흔들리는 나, 그리고 언제 회복될지 모르고 혼돈의 연속인 악화된 시장까지.. 코로나가 초래한 모든 암울한 조건이 아내와 나를 가로막을 수록 더욱더 서로의 자존감을 지켜주기 위한 대화를 끊임없이 이어나갔다.


새벽 늦게까지 이어지던 대화는 단 한 줄기의 희망을 발견할 수 있게 해주었고, 그 한 줄기의 희망을 놓치지 않기 위한 행동으로 이끌어내는 원동력이 되었다. 만약 이런 아내와의 진솔한 대화가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상상이 안될 만큼, 암울했던 시기를 이겨낼 수 있었던 최고의 파트너는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비록, 때론 서로의 마음에 상처를 내는 말을 입밖으로 내뱉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속하는 대화의 힘으로 모든 어려움을 극복해내는 속에 차츰 차츰 몸과 마음을 함께하는 도전을 해가고 있었다.     


평생을 운동하며 자라온 아내와 지극히 평범한 삶을 살아왔지만 나름의 고집이 있던 나. 우리 둘의 스타일은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것이 정반대였다. 이때문에 다투기도 많이 다투었고, 서로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는 때가 얼마나 많았는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서로 다른 부분을 받아들이지 못한 삶을 살아왔던 것이다. 그러다 문득 코로나로 인한 펜데믹 쇼크가 우리 가정을 덮쳐왔고, 대화를 지속하는 속에 서로가 너무도 다른 것이 아니라, 각자가 가지고 있는 강점이 달랐다는 점을 깨달을 수 있었다. 서로의 미흡한 점을 서로가 보완해줄 수 있던 최고의 파트너가 바로 옆에 있었던 것이다.     


다른 무엇보다 ’돈 버는 것‘을 가장 좋아했던 아내는 돈되는 모든 사이드잡에 도전을 하기 시작했다. 공구, 사입판매, 구매대행 등의 스마트스토어는 물론 온라인 입찰, 주식, 부동산 투자까지 돈을 벌기 위한 모든 것을 즐겼다. 다만, 너무 본인의 욕심에 집중한 나머지 다른 누군가를 돕기 위한 시간은 사치라고 생각해왔다. 이런 아내의 강점을 바탕으로 당시 주어진 상황 속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에 끝없는 도전을 지속해가는 속에 다음의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 부동산 투자 신규 아파트 2채 (규제 전 투자 완료)

 - 스마트스토어 파워등급 이상의 성과로 3년째 운영 중

 - 구매대행, 사입판매, 공구 등 분야를 가리지 않는 판매 전략 수립 후 성과 갱신

 - 블로그, 인스타그램을 통해 에드포스트 광고 수익을 통해 주기적인 수익파이프라인 생성

 - 온라인 사업자 입찰에 끊임없이 도전하며, 낙찰 결과를 다수 만듬        


반면,  ’누군가를 도와주는 삶‘을 인생의 모토로 살아왔던 나는 힘든시기였음에도 불구하고, 나보다 더 힘든 사람들에게 도움을 손길을 내밀었다. 이렇게 ’함께 성장‘이라는 것을 삶의 모토로 가져왔다. 이런 이유에서일까 대학교 시절 친구들이 과외를 하며 용돈을 버는 시간에 난 보육원을 주기적으로 방문하며 교육봉사를 통해 보육원 아이들과 함께 성장하는 삶을 결혼전까지 8년 동안이나 지속할 수 있었다. 나에게 부족한 단 한 가지를 꼽자면, 돈을 벌기 위해 악착같이 달려드는 삶의 태도가 부족한 것이었다. 이런 나의 강점을 바탕으로 처절하고 치열한 노력을 이어가는 속에 만들어낸 결과는 다음과 같았다.

 - 마이크로 인플루언서로 성장 (블로그 이웃 6천명, 인스타그램 팔로워 1,600여명, 브런치 작가 등)

 - 습관플랫폼을 기반으로 한 다양한 습관 프래그램을 운영하며 만들어낸 온라인 수익화

   (부동산 투자나 프랜차이즈 창업과는 달리 무자본 수익 비지니스 모델임)

 - 특수상권 프랜차이즈 매장을 1개 추가로 오픈하며, 총 2개의 매장을 코로나 속에서도 흑자 운영

 - 다양한 N개의 명함에 도전하는 노하우를 바탕으로 다양한 무대에서 강의, 강연, 과정을 런칭함.    

  

코로나로 집안의 경제가 서서히 기울어가기 시작했을때, 더 이상의 푸념이나 걱정을 할 시간에 아내와 함께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던 것이 현재는 서로의 강점이 결합되어 최고의 시너지를 만들어내고 있는 [쇼핑 라이브]를 주 1회 실시하며, 믿기 어려운 수준의 매출 성과를 만들어내고 있다. 이렇게 서로의 장점이 만나 시너지를 만들어내는 속에 어느덧 10개 이상의 수익 파이프 라인을 구축한 프로 N잡러부부의 모습으로 성장해가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발견하였고, 현재는 다양한 커플이나 부부가 우리에게 찾아와 상담이나 컨설팅을 진행해주는 모습으로 한 단계 도약하며, 새로운 도전을 계속 이어나가고 있다.     


옛 선인들의 말대로..

”위기가 곧 최고의 기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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