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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으나랑나 Apr 27. 2022

공허함, 그 텅 빈 마음의 외침

그 어떤 것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마음속 배고픔, 허기짐의 이야기

저녁을 먹고 있는데 남자 친구 전화가 왔다.

오늘도 회사 생활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는지, 목소리에 잔뜩 화가 나 있었다.

"무슨 일 있었어?"라는 나의 물음에 봇물 터지듯 자기의 속상함, 화남, 억울함, 짜증남을 꺼내놓는 내 님.


그 내용을 줄줄 듣다 보니, 갑자기 배가 고파졌는지, 금방 밥을 먹어서 배가 부를 텐데도, 아무것도 먹지 않았던 것처럼 배가 차지 않은 느낌이라, 주섬 주섬 바나나 하나와 새우깡 한 봉지를 뜯어, 그들로 내 뱃속으로 채워주며 남자 친구 얘기를 계속해서 귀 기울여 들었다.


남자 친구의 얘기에 귀를 기울여 듣다 보니 내게 남았던 마음들은 속상함, 화남, 외로움이었다. 그리고 공허했다. 심리적으로 허기지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작년 그 허기짐에 나도 빠져나오지 못해, 술에 빠져서 살았던 두 달이 있었다. 매주 토요일은 맥주 5캔을 스트레이트로 마시는 날이었고, 주 중에도 냉장고에 맥주가 없으면 계속 채워 넣기 바빴었다. 그 허기짐의 결과로 나는 4kg 불어난 체중을 얻었지.


그때의 나의 상황을 돌아보면, 내가 좋아했던 누군가가 나를 외면하고, 계속 외면하고, 그렇게 처절하리만큼 나 스스로가 누군가로부터 외면당했었던 시간들이었다. 상대방은 분명 내게 거절을 했었지만, 그래도 연락을 하면 연락이 조금이라도 오는 그 상황 때문에, 나를 거절하던 그 대상의 마음을 '표현은 비록 거절이지만, 사실 표현은 그렇지 진짜 속마음은 그렇지 않을 거야.' 하며, 나 스스로가 부정하고, 또 부정했다.  그러다 보니 계속되는 상대방의 외면과 회피는 나를 점점 더 메말라가게 했고, 매일 같이 나는 화가 났고, 속상했다. 그 화가 나고 속상한 마음을 달랠 길이 없어 나는 계속 술을 마셨다. 차라리 술에 취해서 웃는 게 그 순간은 훨씬 즐거웠고, 나 스스로는 참 행복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던 것 같다.  


그 당시에는 그 화가 나고 속상한 마음 뒤에 외로움이라는 그 그림자가 사실은 있었다는 걸 나 조차도 인지하지 못했다. 단순히 가끔 스트레스받을 때 많이 먹거나 아예 먹지 않는 내 모습도 있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외면당한다는 슬픔과 분노로 인한 스트레스를 먹는 걸로 푼다고만 생각했었으니까, 단순히 지금 내 감정을 위로하는 방법이라고만 생각했었다.


그런데 요즘 들어 남자 친구의 모습을 보니, 그때의 나는 그 관계에서 외면당하고, 그러다 보니 나도 모르게 소외당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스스로가 고립의 무덤 속으로 걸어 들어가 나 스스로 지독하게 외롭게 내버려 뒀던 것 같다. 그래서 그 외로움을 속상함과 분노로 채우고 있어서 외로움 자체를 나 스스로도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부정적인 마음은 타인에게 전염도 빨라서, 금방 내 주변 사람들도 나의 부정 정서 병에 올라타게 만들 수 있지만, 그래도 그 순간이 지나가면 금방 내리는 경우도 존재한다.

하지만 그 외로움이 깃들어 있는 부정적인 마음은, 그 외로움을 겪어 본 기억이 있는 누군가의 판도라의 상자를 열게 만들어, 그 허기짐에 함께 젖어들게 만드는 것 같다. 그래서 남자 친구가 토해내는 스트레스가 나도 허기지게 만들어, 무언갈 나도 모르게 먹고 있는 내 모습을 보게 되었고, 어쩌면 남자 친구의 그 분노와 속상함은 사실 외로움에서 출발할지도 모른다는 걸 어렴풋이 짐작해보게 되었다.


감정적 허기짐, 그 공허함은 자기 자신의 마음과 생각을 고립시켜, 자기가 꽂혀있는 부분에 더 매몰되게 만들고, 그러다 보면 결국 자기를 파괴하고, 해치고, 미워하는 행동을 만들어 내, 결국 미운 내 모습을 어느 순간 보게 된다.


남자 친구가 토해내도 토해내도 계속해서 채워지지 않는 그 공허함이 계속 남아있어 여전히 고통스러워하고 힘들어하듯이, 그때의 나도 먹어도 먹어도 배부르지 않은 공허함이 나를 참 힘들게 했다. 지나고 보니 공허함의 끝은 분명히 있었다. 외면을 당하고도 한동안은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있었지만, 어느 순간 정말 오롯이 그 상황을 분명하게 다시 살펴보는 기회가 있었고, 그러다 보니 조금씩 '정말 아니었구나'하며 스스로가 다시 정신을 차리게 되는 시간들이 내게도 다가왔다.


그리고 남은 건 엄청 불어버린 나의 지방이었고, 지금도 그 남은 지방과 여전히 사투 중이다^^


아마 그때 한참 강렬한 행복을 주었던 그 마음의 또 다른 면은 그 관계에서 거절당할지도 모르는 외로움이었고, 그 면에 잠식당했지만, 그 잠식은 행복이라고 믿으며 혼자 만의 세계에서 한동안 젖어 살았다. 그래도 그때의 그 느낌과 생각을 내가 경험하지 못했더라면, 이렇게 다채로운 삶의 한 면을 알지 못했을 거고, 또 이렇게 남자 친구의 고통을 짐작조차 하지 못하며 아마 부정적인 얘기 좀 그만하라고 하며 회사에서 고군분투하며 힘든 남자 친구의 고통을 더 가중시켰을 거다.


그 당시는 암흑 같고, 너무 괴로웠는데, 지금 다시 돌아보니 정말 감정도 생각도 언젠간 끝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그때는 그냥 그 감정에 푹 절어서 이리저리 뒹굴어 보는 것도 인생에서는 아주 좋은 자양분이 되는 하나의 과정인 것 같다. 그래서 공허함에 몸부림치더라도, 몸부림 칠 수 있을 때까지 쳐보기를, 그 외로움과도 당당히 만나보기를, 그때의 나, 무모했던 나를 나는 여전히 응원하고 또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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