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은서영호'의 '이것은 아마도 사랑'을 듣고
밤하늘에 반달이 동그랗게 보인다면
이것은 아마도 사랑
있지도 않은 마음을 착각하는 게 사랑이면
이것은 아마도 사랑
이렇게 미운 당신을
자꾸 떠올리고 떠올리고 떠올리고
밤하늘에 별들이 반짝이는 듯 보인다면
이것은 아마도 사랑
있지도 않은 마음을 착각하는 게 사랑이면
이것은 아마도 사랑
이렇게 미운 당신을
자꾸 떠올리고 떠올리고 떠올리고
오지은서영호 <이것은 아마도 사랑>
오지은서영호의 이것은 아마도 사랑을 들으면 오래전 읽은 책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공지영의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는 엄마 공지영이 딸 위녕에게 보내는 편지를 엮은 책인데, 그중 사랑에 관한 편지가 한 통 있다.
위녕이 사랑을 하면 어떤 심정이냐고 묻자 공지영은 이렇게 대답한다.
응, 사랑을 하면 별이 한층 더 초롱 거리고 달이 애잔하게 느껴지며 세상의 모든 꽃들이 우리를 위해 피어나는 것 같아.
위녕이 그 말을 듣고 응, 그런 것 같아 하며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러 시골 동네에 갔던 얘기를 해준다. 그 사람을 기다리는데 하늘에 별들이 왕방울만 하게 떠 있었다고 한다. 친구들에게 별이 너무 아름답고 영롱하다고 말하자 친구들이 정신 차리라며, 여긴 공군 비행장 근처라고 했다는 얘기다.
19살의 나는 좋아하는 마음이 공군 비행기를 왕방울만 한 별로 착각하게 했다는 얘기를 읽으며 많이 좋아하던 사람을 떠올렸다. 그 날 이 책을 읽고 도서관에서 집으로 가는 길엔 방사형의 가로등 불빛이 평소보다 조금 더 아름다워 보였던 것 같기도 하다. 위녕의 착각이 왜 그렇게 귀엽고 순수하고 설레게 느껴졌던지 7년이 지난 아직까지도 노래 한 곡에 이렇게 이따금 떠오른다.
사랑을 하면 왜 착각하게 될까.
사랑하는 마음이 들어차면 온통 한 사람을 생각할 수밖에 없기 때문일까. 한 가지 상(像)을 뚫어지게 보다가 흰 벽을 보면 그 잔상이 보이듯, 생각의 비중이 한 곳으로 아주 많이 치우치게 되면 마음에도 착시가 생기지 않을까 생각했다. 거기에 기대나 희망 같은 것들이 묻어 착각을 낳는 것일까.
그 착각이 매번 아름답기만 한 것이라면 좋을 텐데. 손톱만 한 달이 세상에서 가장 밝게 빛나는 것만 같고 바람이 나무 사이를 스치는 소리조차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게 들리기만 한다면 좋을 텐데. 마음에 대한 착각은 어떻게 해야 할까. 있지도 않은 마음을 착각한 마음은 어디로 보내야 할까. 언젠가 착각에서 깨어나 흐리멍덩한 세상을 마주하게 된 사람의 마음은 어쩌나.
그 갈길 없는 마음들이 못내 걱정되었다.
지난겨울엔 오랜만에 시골 할머니 댁에 내려가 밤하늘을 보았다. 불빛 없는 밤하늘에 서울에선 도통 볼 수 없던 별이 가득 있는 걸 보고 이것은 아마도 사랑이 떠올랐다.
밤하늘에 별들이 반짝이는 듯 보인다면 이것은 아마도 사랑, 이랬다.
처음 이 노래를 들었을 때 별은 원래 누구에게나 반짝이는 거 아닌가 생각했다. 반달이 동그랗게 보이는 것도 아니고 별이 반짝이게 보이는 게 어떻게 사랑이지, 하고. 그런데 눈 앞에 별이 가득한 밤하늘을 놓고 보니 문득 별이 반짝였던가 싶었다.
생각해보면 지금까지 밤하늘을 보고 별이 반짝인다 느낀 적이 없는 것 같다. 반짝반짝 작은 별을 배우면서 부터 별은 반짝인다는 명제를 아무런 의심 없이 받아들이게 되어서인가 별은 당연히 반짝이는 것으로 인식했다. 하지만 내 눈으로 직접 본 별은 반짝인다기보다 그저 그 자리에서 빛나고 있을 때가 많았다.
그렇다면 반짝이는 별조차 사랑하는 이의 특권인 걸까. 사랑하는 이들의 눈에 이 하늘도 왕방울만 한 별들이 쏟아질 듯 반짝이는 것처럼 보일까.
그렇다면 그것은 온 우주와 별의 탄생과 그 별이 이 먼 지구에 닿기까지의 수많은 빛의 굴절에 감사하게 될 만큼 아름다운 착각일 텐데.
하지만 반짝이지 않은들 뭐 어때.
어차피 서울 하늘에 별 같은 건 없다.
사랑하는 이에게나 나에게나 이 서울 밤하늘은 공평한 잿빛일 테다.
있지도 않은 마음을 착각하고 이렇게 미운 당신을 떠올리는 게 사랑이라면 그냥 반달은 반달로, 별은 빛나지 않은 채로 남아주는 게 좋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