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쓰는제인 Nov 26. 2020

[Nov:11월] 죽어가는 것들에 대한 사랑



어쩐지 슬픈 달이다. 월초부터 전혀 생각지 못했던 개그맨의 죽음은 그녀가 뿌린 웃음만큼 충격적이었다. 그녀의 생일 전날 일어난 참담한 사건은 그녀의 팬이었든 아니든지 영향을 준 듯했다. 자존감이 높은 데다 남에게 웃음을 주는 직업을 가진 그녀의 극단적 선택이 시사하는 바란, 정말 사람 일은 모르겠다는 것이다.



내 생일도 11월에 있다. 나는 오래 간 자영업을 하며 최악의 비수기인 11월을 견디는 데에 급급했었다. 생일 즈음이 되면 유난히 쓸쓸하고 우울했다. 


그럼에도 나는 이 계절을 좋아했다. 길거리의 쌓여있는 낙엽들을 밟는 것을 좋아했고, 노랗고 빨갛게 물든 산의 공기 마시기를 좋아했다. 코끝이 시려 가을인지 겨울인지 모를 계절의 냄새를 좋아하고, 이때쯤 나오는 사과를 가장 사랑한다. 

나는 내가 태어난 달을 멀리하고 싶었으면서도 사랑하고 있다. 그건 어쩌면 내가 나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와 같은 맥락이다.




마이너스의 손을 가진 나는 식물들을 죽이기 일쑤였는데, 호기롭게 심어놓은 메리골드 몇 포기를 끝내 죽이고 말았다는 것을 거실 밖 창문을 열어보고서야 알았다. 바싹 마른 줄기 위로 곧 떨어질 듯한 꽃이 달려있었고, 심어보겠다고 미뤄둔 대파 한 단이 심어지지 않은 채 놓여 있었다. 


나는 식물을 바라보면서 사랑에 대한 고찰을 했다. 내가 아낀답시고 물을 듬뿍 주어도 뿌리가 썩고, 집착하지 않으려 외면해도 말라버렸다. 아름다운 메리골드도 죽었고, 파스타에 넣어 먹겠다고 곱게 데려온 바질도 끝내 생명을 다 했다. 내 사랑도 그랬다. 아, 적당이란 수치는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어느 봄, 따릉이를 타고서 한강변을 달리던 때에 길가에 핀 개나리들에게 감동받았던 적도 있다.  어렵게 꽃잎을 틔웠을 그것들을 손으로 만져 보면서 문득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해야지'라는 윤동주 시인의 구절이 왜 생각난 것일까. 어렸을 땐 알지 못했던 의미를 이제야 알았다는 듯이. 


개나리와 이름 모를 들꽃들이 무척 예뻤다. 살아있는 것들은 이렇게 아름답구나. 하지만 추운 계절이 오기도 전에 지고 말겠지. 나도 살아있으나 언젠가 죽는다. 앞으로 남은 날 중에 제일 젊은 오늘, 나라는 인간도 살아있음에 감사하고 살아있어서 아름다운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이 11월 늦가을의 계절을 사랑한다. 사람 일이란 것을 정말 모르겠으면서도 살아있어서 감사한 이들을 사랑하면서. 나도, 그리고 당신들도. 내게는 11월이 그런 의미를 일깨우는 달이 되었다. 완벽한 사랑은 아니지만 노력하는 것이다. 느닷없는 이별에 원망이 되더라도 깊게 슬퍼할 줄 알고,  아름다웠던 10월보다 추워서 패딩을 껴입더라도. 


나는 내가 11월에 대하여, 미워하는 마음보다 그럼에도 불구한 날들이 되길 바란다. 

살아있어서 사랑하는 게 아니라, 죽어가는 것들을 진심으로 사랑할 줄 알게 되길 바란다.  



매거진의 이전글 [Oct:12월] 자, 코를 풀 시간이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