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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망친 곳의 낙원 Sep 05. 2022

[Day43-49] 457 단상 in London

Presessional 3주차 기록 

2022.08.11~08.17 

1. 3주차 프리세셔널 

프리세셔널은 매주 다른 주제(예를 들면 소셜미디어, 젠더, AI 등 사회문제들)에 대한 2~3가지 논문이나 저널을 던져주고 그와 관련한 읽기, 듣기, 말하기, 쓰기 강의를 진행한다. 말이 논문 3개이지 개당 20페이지를 상회하니까 지금의 내 영어실력으로는 하나를 완벽히 읽는데 꼬박 하루가 소요된다. 


그러다보니 자연히 하루 일과가 굉장히 단조로워졌다. 오전 10시부터 오후3시 15분까지는 강의, 그리고 이후부터 자정까지는 꼼짝없이 도서관 살이다. 조금 여유있는 날에 2시간 정도 운동을 하는 게 유일한 변수라면 변수다. 

영어가 부족해서 도서관에 강제로 감금될 수 밖에 없다. 그나마 파파고마저 없으면 밤샘 각이다. 


그렇게 정성스레 읽은 논문을 '제대로' 읽었는지 너무도 불안했던 나는, 결국 매일 같은 테이블에 앉은 친구들과 스터디그룹을 만들기에 이른다. 스타디그룹이라 해봐야 14명 중 11명이 중국인인 우리 반에서 유일한 제3세계 국민인 나와 일본인 친구 타카히로, 태국 친구 조지가 멤버의 전부다. (그래서 스터디그룹 이름도 아예 '제3세계(the third world)'로 정했다). 


정해진 기간까지 논문과 저널을 각자 읽고 요약하고 브리핑해서 오해의 여지가 있는 부분들과 중요한 부분들을 함께 정리하자는 것이 모임의 핵심이다. 그렇지만 기실, 같이 스터디를 한다기 보다는 저 친구들이 나를 케어해주는 느낌이 더 강했다. 

일본인 타카히로와 태국인 조지. 다 자기 나라 서울대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수재들이다. 본인들도 바쁠텐데 나까지 멱살캐리하는, 지덕을 갖춘 이 시대의 참인재들이다. 

스터디가 주효했던 탓일까. 이번 주는 저번 주보다는 훨씬 덜 민망한 주간 timed writing 시험지를 제출할 수 있었다. 제3세계 멤버들아, 고맙다! 


2. 제3세계 파티 

고맙다고 낼름 말로 퉁칠 수는 없는 터. 유일하게 숨통 트이는 주말, 제3세계 멤버들을 집으로 불러 조촐한 저녁파티를 열었다. 고맙다고 돈을 줄 수도 없는 노릇이니 정성이 담긴 밥 한 끼 대접하는 것 정도가 내가 고마움을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셈이다. 

'제3세계' 멤버 외에도 타카히로의 아내 치카와 나를 유독 따르는 중국인 동주도 함께 참석했더랬다. 


메뉴는 보쌈과 김치볶음밥으로 결정했다. 물론 내가 그런 고급음식을 만들 수 있을 리 없다. 나의 동거인 The Great Chef - 현우의 신속, 정확, 명확한 지시 아래 열심히 조수노릇이나 할 뿐이었다. 

현우의 야심찬 메뉴, 보쌈. 질 좋은 삼겹살은 집 근처 버러마켓(bourough market)에서 매우 합리적인 가격에 구입할 수 있었다. 김치는 당연히 비비고 포장김치...ㅋㅋ


현우의 놀라운 요리실력 덕에,기어이 내가 그들에게 느끼는 고마움 이상의 요리가 탄생해버리고 말았다..심지어 함께 참석한 일본인 친구 타카히로의 아내는 나름 요리에 자존심이 강한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수준 높은 요리에 대한 샤라웃을 연신 내뱉기도 했다. (정말이지 일본 드라마에서 보던 그 리액션 그대로였다). 

연신 쏟아지는 '오이시이~'와 무수한 악수 요청 

식사 후 수업 시간에는 채 나누지 못했던 각자의 배경, 각자의 고민, 각자의 미래를 디저트 삼아 술을 기울이다보니 금방 자정이 되어버렸다. 저 똘똘하고 어디 꿀릴 것 없는 배경을 가진 녀석들도 나름의 고민을 하고 산다는 사실에 새삼 인간미를 느끼고 왠지 모를 자극도 받는 저녁이었다. 괜히 저놈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동문이 되고 싶은 그런 묘한 오기 같은 것 말이다. 


오는 주말에는 더 이 악물고 영어와 씨름해보기로 한다. 

정글 같던 직장에서는 만날 수 없었던, 순수하디 순수한 영혼들이다. 모두 올 한 해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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