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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돌리 Feb 29. 2024

[여행기] 니스에 가야 하는 이유 2

넘치는 파란색

  니스의 하늘은 하루 만에 돌아왔다. 동시에 맑아진 바다와 하늘 사이에는 경계가 흐려진다. 육지에 발붙이고 있는 것들이 간신히 하늘과 바다의 경계선이 되어 주는데, 그들 역시 파랑이 가득한 배경에서 비로소 자신의 색깔을 제대로 드러낸다. 겨울의 니스도 태양이 필요하다. 니스에 가야 하는 이유는 바로 그 파란색들이었다. 


 돌아오지 않는 생채 리듬 때문에 한번 더 새벽 5시에 일어났다. 시차 적응은 하루가 더 지나고 나서야 온전히 완료했다. 나이 때문인가. 그렇다면 먼 훗날 유럽에 오면 시차적응만 하다가 귀국해야 하는 걸까. 그래서 동양의 노인들을 이곳에서 볼 수 없는 것일까. 생각이 더 뻗어가기 전에 자리에서 일어나 배를 채워보기로 했다. 가져온 한식과 남은 빵으로 아침을 해결하고 나니 다시 잠이 쏟아졌다.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생채 시계는 위장에 있었나 보다. 


 아침 8시에 해가 떴다. 땅땅해진 배에 혼미해진 정신줄이라도 부여잡고 밖을 나설 수밖에 없었다. 드디어 여기까지 오게 한 이유가 찾아왔기 때문이다. 비가 많이 오는 겨울 니스의 태양은 의외로 보기 힘든 명물이다. 


프롬나드 데 장글레라
Prom. des Anglais

 숙소 바로 앞에는 영국인의 산책로, 프롬나드 데 장글레라가 있다. 니스 해변을 둘러 감싸고 있는 길이다. 해변과 해안도로 사이에 사람이 먼저 걸어 다닐 수 있게 조성해 놓은 산책로인데, 영국인들이 만들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니스는 영국인들이 자주 찾는 프랑스 휴양지였다. 자주 가는 휴양지에 알아서 길을 만들고, 또 자기들이 만들었다고 이름도 붙였다. 


 니스 해변의 아침은 이국적이다. 해변, 겨울비, 열대나무, 동양인과 서양인, 달과 태양이 파란 공간에서 한꺼번에 영역을 차지하고 있다. 아침에 담을 수 있는 거의 모든 것들이 쏟아져 나오는 시간에 산책을 나섰다.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니스 해변의 아침 하늘. 아직 달이 떠있다.
니스 해변의 아침. 야자수가 겨울비를 맞았다.
비가 그치자 관광객들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서둘러 해변으로 향하는 것이었다.
니스 해변가에는 아침부터 산책을 즐기는 현지인과 관광객들이 많다. 
니스 해변가에는 '프롬나드 데 장글레라'라는 긴 산책로가 있다. 영국인의 산책로라는 뜻이다. 니스는 영국인들에게 사랑받는 휴양지였고, 그래서 그들이 직접 길을 만들었다.
마세나 광장 Place Masséna
Plassa Carlou Aubert, 06000 Nice, 프랑스

 공항에서 멀어지는 쪽으로 영국인의 산책로를 걷다 보면 마세나 광장에 도착한다. 이 광장을 기준으로 신시가지와 구시가지가 나뉜다. 분수를 지나 해변에 가까운 골목으로 들어가면 구시가지가 있고, 유명한 살레야 꽃 시장 (Marché Aux Fleurs - Cours Saleya)도 금방이다. 분수와 해변을 등지고 곧장 앞으로 가면 신시가지다. 위아래로 오가는 트램길을 따라가다 보면 익숙한 상점들이 나타난다. 


 광장은 니스를 여행하는 기준이면서 동시에 각종 행사가 열리는 중심지다. 1월이지만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렸는데, 마세나 광장에 행사장이 마련되어 있었다. 광장에는 관람차가 있고, 버스킹을 하는 가수가 있고, 땅에서 올라오는 분수가 있다. 여행의 자투리 시간에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마세나 광장을 찾아가자.

마세나 광장의 아침
트램은 니스의 주요 교통수단이다.
에즈 빌리지 Eze village France
06360 Èze, 프랑스

 메세나 광장에서 에즈 빌리지까지는 트램과 버스로 갈 수 있다. 마세나 광장에서 L1 트램을 타고 Garibaldi라는 역에서 내려서 조금만 걸으면 Boyer라는 버스 정류장에 도착한다. 그곳에서 82번 버스를 탄다. 버스는 오르막길을 탄다. 그리고 바다는 버스의 오른쪽에 펼쳐져 있다. 당연히 버스에서는 오른쪽에 앉아야 경치가 좋다. 오래 걸리지 않는다. 1시간 정도면 도착하는데, 산 중턱에 있는 아기자기한 마을들과 푸른 바다를 보다 보면 금방이다. 에즈 빌리지에 도착하면 들어가기 전에 정류장에서 버스 시간표를 찍어가자. 모나코 왕국으로 향하는 버스 시간표와 다시 니스로 돌아가는 버스 시간표 모두 정류장에 붙어있다. 배차 간격이 대략 한 시간 정도 되기 때문에 이왕이면 계획을 세우고 움직여야 낭비를 줄인다.  


 교통 이용권은 '까르네 Carnet'다. 트램 정류장마다 까르네 판매 기계가 있다. 교통 카드 한 장이 발급되며, 구매한 이용 횟수에 따라 충전이 되어 나온다. 여행 계획에 따라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에즈 빌리지는 니스에서 82번 버스를 타고 갈 수 있다. 에즈 빌리지 버스 정류장 바로 옆에는 마트가 있다.
에즈 빌리지는 중세 로마 시대에 만들어진 도시가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오르는 길에는 간간히 갤러리와 기념품 판매점을 볼 수 있다.
선인장 정원 Jardin Exotique로 오르는 길

 에즈 빌리지 꼭대기에 선인장 정원 Jardin Exotique라고 불리는 전망대가 있다. 남프랑스 해안의 강렬한 태양으로 먹고 자라는 선인장들이 가득한 정원이다. 선인장들이 광합성을 하기엔 최적의 장소다. 탁 트인 전망에 탄성이 절로 나온다. 이곳은 맑은 날에 가야 한다. 예정된 에즈 빌리지 방문날에 날씨가 좋지 않다면 일정을 변경하자. 날이 맑을 때 얼른 다녀올 수 있는 곳이다. 선인장 정원은 입장료를 받는다. 비싸지 않다. 선글라스를 챙겨가자. 직사광선이 강하다. 

선인장 정원 Jardin Exotique에서 내려다보이는 경관이다. 건너편으로 니스 해변도 보인다.
에즈 빌리지에서 모나코 공국 방향으로 바라보는 경관
에즈 빌리지 입구에는 관광 안내소와 기념품 판매점, 향수 판매점, 식당 등 다양한 편의시설이 있다. 
유럽에서는 아무 마트나 들어가도 만 원을 넘지 않는 와인을 잔뜩 볼 수 있다. 가판대에 주홍색을 더해주는 로제 와인은 남프랑스 지역의 특산품이다.
모나코 공국 Monaco

 에즈에서 602번 버스를 타고 망통 방향으로 향하면 그대로 모나코 공국까지 간다. 엄연히 별도의 '국가'이지만 실질적으로는 프랑스의 지배를 받고 있는 '부자 나라'다. 모나코 그랑프리오 유명한 그곳은 에즈에서 30분 정도 걸린다. 모나코 공국의 가장 유명한 관광지인 몬테 카를로 카지노 Monte Carlo Casino까지 가기 위해선 602번 버스를 타고 종점에서 내리면 된다. 그리고 거기선 '부 Wealth'가 무엇인지 피부로 느낄 수 있다. 그곳의 사람들과 공기, 건물, 차, 강아지, 고양이, 나무, 구름에서 모두 부유함이 흘러내린다. 나는 단 한 번도 그런 '부자 기운'에 압도당해 본 적이 없다. 들어보니 미국의 비버리힐즈에서 느낄 수 있는 감정이란다. 여행이 주는 감정 버프를 감안해도 모나코는 압도적으로 호화롭다. 니스를 여행한다면 모나코는 반드시 가보자. 프랑스 시골 해변 마을의 소박함이 더 소중해진다. 

모나코 공국의 가로수
몬테 카를로 카지노 앞에는 대형 트리가 설치되어 있었다. 남부 프랑스 사람들은 크리스마스를 길게 즐긴다. 눈이 안 와서 더 아쉬운 연말인가 보다. 
모나코 공국 전경
몬테 카를로 카지노 입구만 서성이다가 결국 들어가지 못했다. 귀한 곳에 방문한 누추한 사람이 될 것 같았다.
몬테 카를로 카지노 건물 조각상
다음 투자처를 고민하시는 걸까. 
나처럼 호화로운 모나코에 황홀해진 관광객들도 다수 보인다. 
남부 프랑스 여러 도시를 비롯해 모나코 공국에도 역시나 요트 선착장이 있다.
몬테 카를로 카지노 건물 후면
모나코 크리스마스 마켓
11 Bd Albert 1er, 98000 Monaco, 모나코

 계획한 건 아니었지만, 니스에서도 그리고 모나코에서도 크리스마스 마켓을 즐겼다. 들어가고 나갈 때 짐 검사를 철저히 한다. 남부 프랑스에서는 폭탄 테러가 발생한 적이 있다. 보안 검색대를 통과하면 자유롭게 먹거리를 즐길 수 있다. 바비큐를 선택했다.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여러 가지 세트 메뉴가 있는데, 각종 고기 종류가 있는 모둠 바비큐를 시키면 돼지, 소, 닭, 양 고기를 맛볼 수 있다. 폭립이 난리 난다. 가격은 메뉴당 20~30유로. 

이 바베큐 장비들을 보고 그냥 지나친다고?
힘들걸?
모둠 바비큐 세트와 폭립 세트. 탄수화물은 감자튀김과 바게트로 보충한다.
모나코 대공궁에서 보이는 요트 선착장
몬테 카를로 카지노에서 해변 방향으로 걷다 보면 언덕이 나타난다. 그곳에 모나코 대통령이 일하는 대공궁이 있다. 대공궁 주변에는 일반 주택지와 식당, 기념품 판매점이 혼재한다.
Port Lympia 트램 정류장

 모나코 공국에서 니스로 돌아오는 길은 꽤나 멀다. 가는 길은 두 번에 나눠서 즐겼지만, 돌아오는 길은 그곳에서 일상을 살아가는 현지인들과 함께 버스를 타고 돌아와야 한다. 자리가 없다는 뜻이다. 이론상 왼쪽 좌석에 앉아서 나머지 경치를 즐기고 싶었지만, 현지인들도 같은 생각인지라 쉽지 않다. 더군다나 역방향 좌석이 있어서 덩치가 큰 승객이라도 앉으면 무릎을 맞대어야 하는데 불편을 주지 않으려고 신경 쓰다 보면 약하게 있었던 멀미가 심해진다.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몬테 카를로 카지노에서 니스 역까지 기차를 타고 왕복할 수 있었다. 빠르고 편한 귀갓길을 찾는다면 기차를 이용하자. 


 버스는 니스의 Port Lympia라는 트램 정류장에서 내려준다. 역시 요트 선착장이고, 니스 경치의 한 부분을 일임한다. 구시가지에서 조금 더 밖으로 나가면 찾을 수 있다. 주변에는 식당과 카페가 많다. 

Port Lympia 
Amorino 젤라또 
33 Rue Massena, 06000 Nice, 프랑스

 Amorino는 장미 모양으로 젤라또를 퍼주며 유명해진 아이스크림 가게다. 세 가지 맛을 고르면 먼저 말한 맛을 안쪽부터 채워준다. 맛있다. 그래도 겨울에 들고 다니면서 먹기엔 춥다. 서둘러야 했다. 해가 지기 전에 숙소로 돌아가 석양을 봐야 했다. 에어비앤비에서 그 숙소를 고른 이유 중 하나였다. 베란다에서 퇴근하는 태양 보기. 성공해서 다행이다. 

안쪽부터 피스타치오, 초콜릿, 딸기 맛이다. 
해 질 녘 숙소에서 에즈 빌리지 방향으로 바라본 전경. 오늘 일정을 소화한 장소들이 저 건너편에 있다. 
돌아와 열일해 준 태양도 적셔
공항 쪽으로 해가 진다. 비행기가 몇 번은 날아오른다. 
EL ALMACEN empanada bar 아르헨티나 음식점
13 Rue de France, 06000 Nice, 프랑스

 저녁은 구글 지도를 줄이고 늘려가며 찾은 아르헨티나 음식점 EL ALMACEN에서 엠빠나다로 해결했다. 중남미식 군만두 정도가 되겠다. 안에 들어 있는 소는 여러 가지가 있다. 나처럼 갑자기 니스에서 엠빠나다가 먹고 싶다면 육류와 치즈 메뉴를 시켜보자. 실패하지 않는다. 

여러 가지 맛을 즐길 수 있는 엠빠나다. 의외로 레드 와인과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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