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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시바 Apr 26. 2024

하이브 사태에 대한 단상

사람은 어떻게 판단을 내리는가?


1.


어제 어도어 민희진 대표의 기자회견은 근 몇 년 안에 있었던 기자회견 중에 가장 놀라움을 금치 못했던 기자회견이었다. 


민희진 대표의 언행에 놀랐고(Feat. 횡설수설),

변호인단의 전략에 놀랐고,

기자회견의 효과에 놀랐다.



2. 


먼저 기자회견 내용과 결과에 대해 논하기 전에 이번 내홍의 원인이자 전제가 되는 경영권 탈취 시도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사태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는 배경에는 "어떻게 20%의 지분을 가진 사람이 80%의 지분을 가진 사람에게서 경영권을 뺏어올 수 있느냐?"에 대한 의문이 자리 잡고 있다. 


이는 엔터테인먼트 업계(이하 엔터 업계로 줄임)의 특성에 대해 생각을 해보면 '아주 불가능한 것은 아닐 수도 있다'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엔터 업계의 상품이라 할 수 있는 아티스트는 일반적인 회사에서 만들어내는 상품이나 서비스와는 그 특성이 많이 다르다. 


머나먼 옛날 동방신기가 SM 엔터테인먼트와 전속계약분쟁을 일으킬 때만 하더라도 계약 내용은 아티스트를 착취한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아주 가혹한 내용이었다. 


회사가 지시한 일정에 대해 소화를 하지 못할 경우 아티스트는 회사에 손해배상을 해야 된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동방신기와 SM 엔터테인먼트의 분쟁 이후 회사와 아티스트 간의 전속계약서는 (당시에는 약자였던) 아티스트를 보호하는 쪽으로 많이 변화가 이루어졌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반대로 아티스트가 전속계약에 반발하여 태업을 하여도 회사 입장에서는 손 쓸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현재로서는 아티스트가 회사가 마음에 안 든다며 태업을 하며 계약 무효를 주장할 경우 회사 입장에서는 해당 아티스트가 회사 밖에서 활동하는 것을 일시 중단시키는 정도의 행위 밖에는 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을 이용하려고 했던 것이 이른바 '피프티피프티 사태'라고 할 수 있다. 



3.


지금까지 드러난 정황이나 어도어 부대표로부터 나온 문건 등으로 보았을 때 아마 민희진 대표와 측근들의 계획은 아래와 같았던 것으로 보인다. 


① 하이브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을 조성한다.

② 부정적 여론을 이용하여 뉴진스 멤버들과 그 가족들을 설득하여 하이브 탈출에 대한 의견을 일치시킨다.

③ 탈 하이브를 위한 외부 펀드 자금을 조달한다.


(※ 어도어 및 뉴진스의 가치를 증권사 애널리스트의 분석대로 2조 원 정도로 책정한다면, 하이브가 보유한 지분 중 30% 정도 규모의 지분은 약 6천억 원 정도이다. 만약, 2~3천억 원 규모의 위약금으로 뉴진스가 하이브로부터 계약을 해지하고 새로운 활동을 보장받을 수 있다면, 어도어 부대표가 작성했다는 문건대로 중동 또는 중국 자본이 가세할 경우 충분히 거래 시도가 가능한 정도의 금액으로 보인다.)


④ 하이브 측에 이미 뉴진스 멤버들의 뜻이 모여 있으므로 하이브가 손 쓸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것을 어필하여 외부 펀드 자금에 일정 지분 매각을 종용한다.

⑤ 하이브가 약 30%의 지분을 정리할 경우 어도어는 하이브 탈출에 성공하게 된다. 


위와 같은 방법은 아주 어려운 방법이지만, 완전히 불가능하다고 볼 수는 없다. 


특히, SM 엔터테인먼트 인수전에서 보여준 하이브 경영진의 행동으로 보았을 때, 불필요한 분쟁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어 보일 경우 차라리 일부 지분만 보장받고 어도어와의 관계를 정리하려고 할 가능성도 충분해 보인다. 


지금까지 공개된 정황으로는 ②번 단계까지는 거의 이뤄진 것으로 보이며, ③번 단계 진행 중 문제가 드러난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뉴진스 멤버 가족들이 하이브 측에 뉴진스 홀대에 대해 항의를 하자 → 하이브는 이 문제에 대해 어도어와 뉴진스 멤버 가족들과 논의하는 자리 제안했고 → 뉴진스 멤버 가족들이 이를 거절하자 → 상황이 심상치 않다고 느낀 하이브가 먼저 치부를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민희진 대표가 기자회견에서 뉴진스와의 강한 유대감을 어필하고, 뉴진스 멤버 가족들이 이 문제에 개입된 것이 드러나자 민희진 대표 개인의 추출 정도로 끝날 줄 알았던 문제가 더 커지고 있다는 사실에 하이브의 주가가 다시 한번 더 하락을 하고 있는 것이다. 



4. 


민희진 대표의 기자회견 내용대로 위와 같은 시나리오를 측근들과 논의했다는 것만으로도 문제가 될지에 대해서는 현재 단계에서는 결론을 내리기 어려운 상황이다. 


다만, 위와 같은 시나리오의 실제 진행 가능성과 별개로 민희진 대표 및 어도어 경영진은 많은 범법행위를 저지른 것으로 추정된다. 


민희진 대표가 설명했어야 하는 것은 "하이브가 뉴진스를 홀대했다" 라거나 "하이브가 나를 마녀사냥 하려고 한다"라는 내용이 아니라, 하이브가 현재 주장하고 증거를 내밀고 있는 범법 행위들에 대한 해명을 했어야 하는 것이다. 


"하이브에 대한 역 바이럴 행위를 지시한 바 없다."

"외부 투자자 접촉을 지시한 적 없다."

"기업 내부 기밀 자료를 외부에 유출한 적 없다."

"(무속인 등에게) 개인정보를 유출한 적 없다."

등을 명확하게 설명했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민희진 대표는 교묘하게 "외부 투자자와 만난 적 없다.", "경영권 탈취를 시도한 적 없다."라는 두루뭉술한 설명 외에는 위와 같은 구체적인 의혹들에 대해 대응을 하고 있지 않은 상황이다. 


아마도 구체적인 범죄 사실이 될 수도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위증죄 발생 가능성이 있으므로 구체적인 대응을 하지 말라는 법률 조언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번 사태에 있어서 민희진 대표가 직접 외부 투자자와 물리적으로 얼굴 보며 만나지 않았다고 해서, 측근들과 농담 따먹기 수준의 이야기를 나눈 것으로 치부한다고 해서 아무 문제가 없었던 것이 아닌 것이다. 



5. 


그런데 인지과학에 관심이 많은 사람으로서 흥미로운 것은 위와 같이 정확한 설명 없는 엉터리 같은 기자회견이 실제로 큰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중의 여론은 이제 민희진 대표에 대해

"경영권 탈취 시도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없어 보이는 사람인데, 하이브가 오버하고 있다."

"일개 직원과 이렇게까지 싸우려고 하는 하이브에도 문제가 있어 보인다."

"이번 사태는 방시혁 개인이 민희진 대표를 질투해서 생긴 문제로 보인다." 

라는 평가를 내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민희진 대표는 기자회견에서 하이브가 자신을 프레임 씌우고 있다고 호소했지만, 사실 프레임을 이용해서 완전히 이야기의 구도를 바꾼 것은 민희진 대표라고 할 수 있다. 


이번 기자회견으로 인해 이번 사태를 바라보는 대중의 관점은 3번 문단에서 이야기한 내용에서 

'방시혁 대 민희진'

'능력 있고 헌신적인 여성을 질투하고 괴롭히는 기득권층 남성들'

'홀대받고 불리한 상황에서도 성공을 이뤄낸 능력 있는 여자의 위기'

로 바뀐 것이다. 


처음에는 이런 엉터리 같은 기자회견을 왜 변호인단이 말리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변호인단의 전략이 매우 뛰어났던 것으로 보인다. 



6. 


대중이 이번 사태를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진 이유는 무엇일까? 


사실 이번 사태 초반에는 민희진 대표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강했다. 


그 이유는 민희진 대표의 나르시시즘이 강한 언행들과 같이 일해본 직원들의 평가가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회사 생활을 하다 보면 유관부서, 지원부서의 지원은 싹 다 무시하고 자기 덕분에 성공했다고 내세우는 임원이나 직원을 흔히 볼 수 있기 때문에 +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이브가 민희진 대표에게 제공한 물질적 가치가 일반적인 회사원 수준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규모였기 때문에 민희진 대표에 대한 평가가 부정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민희진 대표에 대한 긍정적인 여론이 살아난 것은 민희진 대표가 자신을 공격하는 대상을 기득권층의 개저씨들로 규정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중들 사이에서 기득권층 개저씨들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나르시시즘을 지닌 임원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보다 더 광범위하게 퍼져 있고, 더 강하기 때문에 여론이 쉽게 뒤집힌 것으로 보인다. 


회사 생활을 오래 사람이라면 독단적인 임원에 대한 안 좋은 경험과 기억이 많겠지만, 사실 우리 사회를 이루는 다수의 구성원들은 대규모 조직 생활을 해보지 못하거나 그런 조직 생활의 기억을 잊어버린 사람들이 많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사람들은 판단을 내릴 때 자신이 보유한 기억과 이미지에 기반하여 + 자신이 납득하기 쉬운 이야기를 선택하여 판단을 내린다. 


사람들은 기득권층 개저씨들에 대한 부정적인 기억과 부정적인 이미지가 더 많은 상황이고, 20% 지분으로 80% 지분을 이긴다는 이야기에 대해 논리적으로 쉽게 해석이 되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의 평가는 하이브가 나쁜 놈들도 급속히 바뀐 것이다. 



7. 


그래서 하이브의 주가는 어떻게 될까? 


단기적으로는 뉴진스의 행방이 결정을 지을 것이다. 


어제 민희진 대표의 기자회견 초반까지만 해도 하이브의 주가 흐름이 나쁘지 않았던 것은 이번 사태가 민희진 대표 개인의 추출로 끝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하지만 기자회견 결과, 진짜 뉴진스와 뉴진스 멤버들이 민희진 대표와 한 몸처럼 행동하기로 결정했다면 이는 하이브 입장에서는 상당히 큰 악재라 할 수 있다.


게다가 이번 사태로 하이브와 하이브 아티스트들이 받을 부정적인 시선까지 생각하면 무형의 손해도 상당할 것으로 추정된다. 


중장기적으로는 평가가 애매해 보인다. 


긍정적인 점은 K-아이돌 시스템 자체가 무너진 것이 아니고, 아직도 경쟁자가 될만한 국가들에서는 K-아이돌 경쟁력의 핵심이자 정수가 무엇인지 파악을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K-아이돌 시스템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가 바뀔 수 있는 시점은 중국의 시진핑 정권이 바뀐다거나 일본인들의 지적재산권에 대한 인식이 바뀌는 시점이 될 수 있다. 


부정적인 점은 '피프티 피프티 사태'와 이번 하이브 사태로 인해 대형 기관 투자자들의 국내 엔터 산업에 대한 평가가 부정적으로 바뀔 수 있다는 점이다. 


이번 사태와 비슷하게 회사가 아티스트를 키워내도 그 권리를 계약 기간 내 명확하게 보장받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면, 기관투자자들 입장에서는 투자를 꺼리게 될 수밖에 없다. 


이런 사태의 관계자들이 의도한 것은 아니겠지만, 어쩌면 이번 사태는 국내 기업들의 무형 자산과 계약에 대한 방향까지 바꾸는 계기가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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