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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린 Dec 08. 2023

’나답게 살아라‘라는 말의 함정

여기저기에서 ‘나답게 살아’, ‘나답게 살래!’라는 말들이 들려온다. 너무 쉽게 소비된다. 너도나도 ‘나다움’을 들먹인다. 물론 누구에게나 필요한 말이다. 그러나 그 단어가 얼마나 무거운 단어인지 알지 못한 채 사용된다는 게 문제다.


도대체 ‘나’다운게 뭔데?


어쩌면 많은 이들이 ‘이게 저다운 거예요.’라는 말에 속고있는 것는 아닐까. 사람들이 미친듯이 열광하는 MBTI만 봐도 그렇다. 과거에 비해 자신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졌다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그 내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나’라는 사람에 대해 제대로 알고 싶은 욕망 보단, 사회 속에서 자신을 유형화 시킴으로 상처받지 않기 위한 방패막을 만드는 경우가 더 많다.


사실 “저 T예요, 저 F예요.”라는 말 안에는 자신에 대한 일방적인 이해를 바라면서, 타인에 대해서는 이해하고 싶어하지 않는 모순이 숨어있다. ‘나는 이래서 이래 그래서 저 사람하고는 안맞아. 그러니 미리 피하자‘ 라는 생각이 밑마음에 깔려있다. 누군가의 ‘진짜’ 모습을 알아가기 위해 마음과 정성을 쏟아야하는 시간과 자신을 일일이 설명하는 시간 조차 비효율적이라 느끼기 때문이다. 결국 틀에 맞춰진 성격으로 서로를 이해하는게 훨씬 더 효율적일테니까.


그런데, 사람을 이해하는데 ‘효율’이라는 단어가 적절한가? 인간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큰 존재임을 자각하지 못한 채, 작은 상자 안에 스스로가 스스로를 구겨넣고 있는것과 같은게 아닐까.


과연 그게 진짜 나다운걸까?

참 아이러니한것은 우리가 ’나답다‘라고 말하는 그 말들 역시, 잘 생각해보면 내가 없는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나답다‘라고 이야기하는 출발점이 결국 자신의 온전함으로 부터 출발한다기 보다는 상대적 비교로 출발하기 때문이다. 단어만 다를뿐 여전히 외부에 휘둘리고 있는 것은 별반다르지 않다.


만약 이 말이 무슨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 평소 ‘나답다’라는 말에 대해 한 번도 깊게 생각해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어쩌면 세상이 이야기하는 ‘나답게 살아라‘는 함정일지도 모른다. 진정으로 나답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 속에 ‘나’만 존재하지 않는다. 진짜 ‘나답다’라는 것은 자신의 유일무이함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존재 이유에 대한 명확함과 존중이 밑바탕 되기에 그 안에는 반드시 ‘너‘에 대한 이해와 수용이 함께 한다.


‘나’ 없이 ‘너’가 있을 수 없고

‘너’없이 ‘나’가 있을 수 없듯이.


나답게 살고 싶다면, 자신의 존재에 대한 깊은 물음을 먼저 해봐야 한다. 과연 지금껏 나라고 믿었던 것들이 정말 나인지. 그리고 그것들은 어디서부터 출발했는지.


그 물음이 없는 ‘나다움’은

‘나다움’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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