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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린 May 03. 2024

우리에게 인문학적 사유가 필요한 이유

지나가는 깊은 생각들

집에 들어오자마자 가방을 벗어던지고 곧바로 침대로 향했다. 
‘시리야 ~시간 후에 알람 맞춰줘.’
그렇게 나는 깊은 잠에 들었다. 
그리고는 영영 알람 소리를 듣지 못했다.

인문학적 사유가 필요한 ‘이유’에 대해서 이야기 전에 ‘사유’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알아볼 필요가 있다. 나에게 이해한 ‘사유’란 단순히 생각하는 차원에서 멈추지 않는 것이다. 생각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는 것이다. 생각은 단편적이기 때문에 하루에도 수십 번씩 머리를 스쳐 지나가고 어느 한 곳에 잘 머무르지 않는다. 어떤 의미에서는 무책임하다. 그러나 ‘사유’는 일단 깊이 머물러야 한다. 섬세하게 살피고 질문하고 이해하고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전에 더 중요한 것은 많은 이들이 ‘생각’조차 하지 않으면서 살아간다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가 살면서 흔히 이야기하는 ‘생각’은 ‘생각’이 아닐 수도 있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보고 듣고 경험한 것들을 기반으로 한 고정관념일 수도 있다. ‘생각’이라는 것 자체가 ‘무언가를 헤아리고 판단하는 작용’이라는 정의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헤아리지도, 판단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당연히 ‘사유’의 차원으로 넘어갈 수 없다.

데카르트는 '사유란 의심하고, 이해하며, 긍정하고, 부정하며, 의욕하고, 의욕하지 않으며, 상상하고, 감각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나는 이것을 ‘깨어있음’이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그런 의미에서 ’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말을 빗대어 보았을 때 이 세상에 제대로 존재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눈을 뜨고 있지만 장님처럼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많은 사람들이 사유하는 능력을 잃었다. 이는 곧 세상에 ‘생각’을 빼앗겼다는 의미이다. 생각하기를 귀찮아한다. 자신으로서 존재하기를 거부한다. 결국 우리는 가장 먼저 생각을 빼았길테고 그다음에는 자신을 빼았길테고 그다음에는 자신의 삶 그 자체를 빼앗길 것이다. 깊은 잠에 든 채 자신의 삶이 빼았겼는지도 모르는 상태로 말이다. 그래서 ‘사유’란 삶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이쯤 되니 사유는 '지성인'과 ‘지혜로운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능력이 아닐까 싶다.


나는 우리의 삶이 그저 얕은 생각에서 출발하는 삶이 아닌 깊은 사유로 만들어지는 삶이길 바란다.

매거진의 이전글 ’인문학이란 무엇인가?‘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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