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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린 Jun 13. 2024

내가 생각하는 인간다움이란?

영화 'Her'을 통해 비춰 본 인간다움

현대 사회의 급격한 발전과 변화로 인해 인간은 인간다움에 대한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다. 인공지능과 함께 살아가는 세상이 이미 일상이 되어버린 지 오래다. 이러한 시대 속에서 우리는 왜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해야 할까?


우선, 보편적으로 인간을 구성하는 요소는 크게 네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는 신체적 요소이다. 우리가 ‘몸’이라고 부르는 부분이다. 인간의 신체는 뇌, 심장, 폐 등 주요 장기와 신경계, 순환계 등으로 구성된 굉장히 복잡한 생물학적 시스템이다. DNA와 같은 유전학적인 부분도 여기에 해당한다.


두 번째로는 정신적인 요소이다. 정신적 요소란 논리적 사고, 문제 해결 능력, 지능을 포함해 우리가 의식과 무의식이라고 부르는 부분이 여기에 해당한다. 감정과 정서, 타인과의 공감, 감정적 유대 역시 포함된다. 인간에게 감정은 기쁨, 슬픔, 분노, 두려움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며 이는 우리의 행동과 결정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인간은 이를 통해 다양한 사회적 관계를 맺고 유지한다. (사전적 정의에 보면 ‘정신에는 육체나 물질에 대립되는 영혼이나 마음 또는 사물을 느끼고 생각하며 판단하는 능력. 또는 그런 작용.’이라고 되어있지만 두 번째 요소에서 말하는 정신은 후자의 사전적 정의를 의미한다.)


세 번째는 사회적 요소이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로 절대 혼자서 살아갈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가족, 친구, 동료 등과 사회적 관계를 맺으며 삶을 살아간다. 여기에는 문화적 특성과 사회적 규범에 따라 가치관과 사고방식, 생활 방식 등이 달라지기도 한다.


이 외에도 인간을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들이 있지만, 가장 대표적인 요소는 이 세 가지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AI와 인간을 비교해 보았을 때, ‘위 세 가지는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특수한 요소일까?'라는 질문을 해볼 수 있다.


신체적 요소는 이미 많은 인공지능이 대체하고 있다. 휴머노이드라고 불리는 인간형 로봇이 등장했고, DNA의 영역까지 과학 기술이 건드리기 시작하면서 인공 수정, 인공 관절 등 인간의 신체는 이미 많은 부분 인공지능이 대체하고 있다. 더 이상 신체적 요소만으로 인간다움을 정의할 수 없다는 뜻이다. 어쩌면 신체적 요소 그 자체보다는 오히려 인간이 가지고 있는 ‘육체의 유한함’이라는 요소가 인간다움에 영향을 끼칠지도 모른다. 인간이 죽음을 두려워하며 영생을 살고 싶어 하고, 사후 세계와 천국 등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도 이 때문이 아닐까. 그 자체만으로도 인간임을 증명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인공지능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정신적인 요소는 어떨까? 김기현 저자의 ‘인간다움’이라는 책에서도 인간다움의 핵심에는 이성과 감정과 공감이 있다고 말하고 있다. 물론 영화 <HER>을 보면 주인공 테오도르는 인공지능 사만다와 관계를 통해 일정 수준의 감정을 공유하고 있지만, 사만다가 테오도르의 감정을 인간과 같은 감정으로 이해하거나 공감할 수는 없다. 인간에게 감정과 기억, 경험은 지극히 주관적인 부분이다. 나는 여기서 ‘주관적’이라는 단어에 집중하고 싶다. 인간의 감정은 단순히 정보를 주입해서 만들어질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는 뜻이다. 인공지능이 아무리 방대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스스로 학습한다고 해도 어쨌거나 이는 ‘데이터’에 해당될 뿐 개개인이 겪는 구체적이고 복합적인 경험을 직접 체험할 수 없으며, 그를 통해 얻게 되는 주관적이고 고유한 인식을 대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는 인간다움의 핵심이 여기에 있다. 이것이 바로 모든 인간이 다 다르며 동일한 깊이와 생각, 인식을 갖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세 번째로, 사회적 요소는 현대 사회에서 공허함과 외로움이 큰 문제로 나타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우리는 고도로 발달된 기술을 통해 끊임없이 연결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연결성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영화 <HER>에서도 마찬가지다. 테오도르는 기술을 통해 외로움을 극복해보려고 하지만, 결국엔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나 역시 코로나 시기 온라인으로 수없이 많은 사람들과 연결되어 다양한 방식으로 강의를 진행했지만, 오프라인으로 연결되는 것에 비해 그 효과가 떨어지는 것을 직접 경험했다. 사회적 요소는 단순히 ‘연결’ 그 자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눈을 보고 인사를 하고 함께 허깅 등을 하며 온기를 나누는 행위를 통해 제대로 연결될 때 비로소 진정한 인간다움을 느끼게 된다. 또한 이러한 상호작용을 통해 우리는 서로에 대한 깊은 교류와 이해를 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이 바로 감정적 요소와 신체적 요소의 결합이 사회적 요소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를 보여준다.


위 세 가지 이외에 인간다움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네 번째로 ‘영적 존재로서의 인간’이라는 부분이다. 많은 이들이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요소에 대해서는 많이 생각하고 이야기하지만, 영적 존재로서의 인간에 대해서는 간과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많은 철학자들은 인간이 육체로만 구성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주장해 왔고, 이미 그것이 증명되기도 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육체와 영혼은 서로 상호 의존적인 관계로 보았고, 데카르트는 인간을 ‘사유하는 존재’라고 이야기하며 인간의 본질은 영적인 존재에 있다고 했다. 이 외에도 아우구스티누스나  토마스 아퀴나스와 같은 철학자들은 기독교 관점에서 인간의 영혼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이렇게 여러 시대에 걸쳐 다양한 언어와 다양한 방식으로 인간의 영적인 측면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그렇기 때문에 ‘나는 스스로를 영적인 존재라고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라는 질문은 인간이라면 살면서 한 번쯤은 깊이 던져봐야 할 물음임에는 틀림없다.


인간은 단순히 생물학적 존재에 머물러 있지 않는다. 그것을 넘어서는 존재다. 인간은 언제나 더 높은 차원의 경험을 추구하고, 삶의 의미를 찾고자 하며 그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고자 하는 갈망을 가지고 있다. 단지 그것을 스스로 인식하고 있느냐 인식하지 않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인식이 차이에서 '의식 수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 게 아닐까 싶다.) 한 가지 예로, 우리가 수없이 많이 들어온 빅터 프랭클 박사는 나치 수용소에서 극한의 고통 속에서도 삶의 의미를 찾고자 하는 인간의 본능을 관찰하면서 이것이야말로 인간이 영적인 존재라는 것을 증명한다고 했다. 우리가 물질적 풍요와 사회적 지위, 타인의 인정 등 외부 조건에 의해 만들어지는 행복에 만족하지 못하고 일시적이라고 느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결국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간다는 것은 ‘행복과 충만함’과 맞닿아 있는 삶을 사는 것이다. 여기서 진정한 행복이란 내면의 만족감과 자아실현을 넘어 자신이 살아가는 이유를 찾았을 때를 말한다. 자신의 영혼이 외치는 것에 응답할 때 비로소 느낄 수 있는 진정한 삶의 충만함 말이다. 이것이 인간으로서 '살아있는 삶'아닐까.


이처럼 인간다움이란 어느 한 가지 요소로만 정의 내릴 수 없다. 신체적 요소, 정신적 요소, 사회적 요소, 그리고 그 너머 영적인 존재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 이 모든 것이 함께 할 때 비로소 인간답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그렇다면 과연 나는 인간답게 살아가고 있을까?  다행히도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고민하고, 자료를 찾고, 글을 쓰다 보니, 이 자체만으로도 ‘인간다움’에 조금은 가까이 다가간 것 같다!


가능한, 살아가는 동안에는 인간다움을 잃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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