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버스가 그리워요
도시는 집값이 비싸다. 이것은 어느 나라나 같아서, 경기도민인 나는 호주에 와서도 근교 지역에 살게 되었다. 어느 외국 영화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자그마한 집들이 늘어선 조용한 주택가가 마음에 쏙 들었다. 트레인 역과는 좀 거리가 있지만 집 앞에 버스 정류장도 있으니 훌륭하지!
얼마 뒤, 한인 부부가 하는 편도 한 시간 거리의 식당에 일자리를 얻게 되었다. 면접 때 통근 걱정을 하시기에 경기도-서울 출퇴근도 오래 했으니 괜찮을 거라고 말씀드렸다.
근데 여기가 서울은 아니잖아요.
..라는 대답을 웃어넘길 게 아니었는데.
집에서 일터까지는 버스를 타고 트램으로 갈아타는, 환승 단 한 번의 환상적인 코스. 광역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다니던 내게는 사실상 누워서 떡 먹기처럼 느껴졌다.
먼저 집 앞에 다니는 버스를 성토해 본다. 여기 버스는 시간표에 따라 운행되고 간격은 20분-40분이다. 답답해 죽을 간격인데 이마저 잘 안 맞는다면? 맘대로 10분씩 늦고 한 대씩 그냥 안 오기도 한다. 물론 그 어디에서도 해명과 안내는 없다. 게다가 호주 버스는 타고나면 정류장 안내 방송을 안 해주는 데다, 벨을 누르지 않으면 정류장을 지나치므로 계속해서 구글 맵을 보고 있어야 한다.
트램은 대체로 제시간에 출발하지만 도착할 때는 아니라는 점이 나를 미치게 했다. 트램은 노면을 다니는 만큼 신호나 도로 혼잡도에 영향을 받다 보니 가는 동안 점점 연착이 된다. 얼마나 연착될지는 그날의 랜덤. 게다가 어느 퇴근길에는 갑자기 중간에 내리라고 해서 버스 막차를 놓친 적도 있었다.
내 출퇴근길은 환상의 코스가 아니라 환장의 코스였던 것이다. 앱으로 오는 때 실시간으로 알려주고, 내릴 정류장도 알려주는 광역버스와 연착 없는 서울 지하철이 그리웠다.
가장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이 대중교통 상황을 받아들이는 호주인들의 여유로움이었다. 우리나라 같았으면 다들 화를 내고 담당자를 알아내서 전화를 걸었을 것 같은데, 호주 사람들은 그냥 다음 차를 기다렸다. 성격 급한 사람들은 이미 차를 다 사서 느긋한 사람들만 대중교통에 남아버린 것일까? 나도 호주에 적응을 하면 괜찮을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으로서는 내가 아무리 경기도민이어도 호주 도시 외곽에서 2시간 출퇴근은 무리수라고 말하고 싶다.
아마 이래서 다들 호주 외곽에서는 차가 필수라고 하나 보다. 하지만 일단은 차 없이 살고 싶으니 다음 직장은 가까운 곳에 얻을 수 있기를 아주 간절히 기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