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희, <김 대리가 죽었대>
*** 강력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
김 대리가 죽었다. 그러나 이 소설의 제목은 김 대리가 "죽었다"가 아니다. "죽었대"다. 김 대리의 죽음을 전해 들은 사람들의 이야기다. 김 대리는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 그들의 기억 속에 등장할 뿐이다. 김 대리는 과연 어떤 인물이었나?
김 대리가 죽었다. 팔방미인이자 모두에게 사랑받던, 아니, 무엇보다 모두에게 도움을 주던 그가 사라지자 회사는 혼란에 빠진다. 그가 속했던 홍보팀은 거의 업무가 마비된다. 하다 못해 커피조차 없다.
김 대리가 없어서 이게 불편해 저게 불편해 하고 불평하던 그들은 갑자기 깨닫는다. 김 대리가 왜 죽은 거지?
왜 죽었는지는 알아야겠다는 팀장의 고집에, 부하 직원은 유족에게 전화를 걸어 조문 일정에 관해 물어본다. 그러나 전화 연결은 시원치 않고 (요즘 세상에?) 조문 일정은 아직 미확정이라는 대답을 듣는다. 부검 대기 중이라서 그렇다고 한다.
부검이라니? 교통 사고 아니었어? 젊은 사람이 죽었다면, 가장 그럴 듯한 사인은 교통 사고다. 그런데 부검이라니, 교통 사고가 아닌 것 같다. 젊은 층 사인 1위인 자살일까? 사람들은 억지 추리를 곁들여 김 대리가 상사 갑질에 자살했다는 결론을 내린다. 이 결론은 소문이 되어 널리 퍼진다.
그러나 갑질은 사실이 아니었다. 이제 완벽하기만 했던 김 대리가 정말 좋은 사람이었는지가 화제가 된다. 소문에 소문이 더해져, 김 대리가 갑자기 아주 나쁜 사람이 된다. 결국 김 대리는 학폭 가해자, 임신한 애인을 버린 나쁜 남자, 지방 흡입술로 식스팩 복근을 유지하던 위선자가 되어 버린다. 그의 사인 또한 한심하기는 마찬가지로, 지방 흡입술 중 사고로 인한 사고사다.
드디어 조문을 가려고 준비하는 홍보팀. 그런데 과비를 관리하던 사람은 하필 김 대리다. 조문 금액에 대해 갑론을박하던 사람들은 마침내 그들이 김 대리에게 받아낼 것이 더 많다고 결론 내린다. 부조는 생략하고 육계장 두 그릇씩 먹고 음료수도 물처럼 마시기로 결정하는 사람들.
그런데 한 사람이 신문 기사를 들고 온다. 광화문 시위 진압 과정에서 아이를 향해 떨어지는 간판을 몸으로 막은 의인이 사망했다는 기사다. 사진을 보니 김 대리가 확실하다. 그리고 이때 사무실에 나비들이 날아 든다.
“팀장님, 김 대리가 주방에서 나비를 기르고 있었어요.”
“뭐?”
“주방에서 커피를 끓이는 게 아니었다고요.”
이희진은 대화에 끼어들고 싶었지만 타이밍을 잡기가 어려웠다. 어디선가 나비가 한 마리 또 들어왔다. 나비가 어디에서 들어오는지 알 수 없었다. 마술사가 나비가 나타나는 마술을 시연하는 듯했다. 두 마리의 나비는 곧 네 마리가 되었고, 여덟 마리, 열여섯 마리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 갔다. 사무실이 어느새 흰 나비 떼로 가득했다. 사무실에 폭설이 내리는 것 같았다. (175쪽)
홍보팀 직원들은 나비 잡기에 혼신을 다한다. 그리고 나비들을 모아 창밖에 버리는 순간, 나비들이 날아 오른다.
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에게 물대포를 쏘는 경찰을 향해서 나비 떼는 빠르게 날아갔다. 광화문 광장에 모여 있던 모든 사람들이 하던 일을 멈추고 갑자기 나타난 나비 떼를 정신없이 쳐다보았다. (176쪽)
환상적인, 결말이다.
사족.
나는 이 소설이 "제대로 된" 포스트모더니즘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김 대리는 베일에 싸인 채, 그를 추적하는 홍보팀 직원 하나 하나에 대해서는 삶의 궤적을 돌아본다. 그 궤적들은 하나 같이 4차원적이다. 결말 역시 그렇다. 나비 장면이 이 소설의 진 엔딩이기는 하지만, 소설에는 짧은 챕터가 하나 더 붙어 있다. 바로 이 사족 엔딩에서, 홍보팀은 결국 김 대리 조문 대신 회사 상사가 얽힌 스캔들 현장으로 달려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