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9-10/5
1. 책
메마른 삶
탕비실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게
하늘을 꿈꾸는 아이, 덕이
미래는 생성되지 않는다
은수저
나를 소모하지 않는 현명한 태도에 관하여
사라진 서점
나는 슈뢰딩거의 고양이로소이다
연적
수를 놓는 소년
회색 여인
이번 주 최고는 그라실리아누 하무스의 <메마른 삶>이다.
브라질 작가다.
민주화 운동 하다가 감옥을 들락다니다 보니, 작품이 점점 순해졌다고 한다.
그렇게 나온 것이 <메마른 삶>이다.
한 유색인 부부의 비참한 삶을 그려냈다.
브라질 문학은 아마, 처음이지 않을까.
세상에는 내가 모르는 보석같은 작품들이 아직도 많이 있다.
고전을 읽어야겠다.
엘리자베스 개스켈의 <회색 여인>도 인상적이었다.
특히 두 번째 에피소드, <마녀 로이스>.
세일럼 마녀 재판을 다룬 소설이다.
이런 일이 지금 안 일어난다고 말할 수 있을까?
목숨만 빼앗지 않을 뿐이다.
아니, 그것도 아닌 것 같다.
2. 미니멀리즘
간만에 미니멀리즘 실천 게이지가 마구 올라가는 한 주다.
또 이사를 해야 하는 상황이라서 그렇다.
역시, 닥치지 않으면 인간은 한 없이 미루는 존재다.
이번 주 새로 들인 물건 - 없다.
이번 주 떠나보낸 물건 - 베개 3, 이불 1, 빌레로이앤보흐 접시 1개
빌레로이앤보흐 접시는 계약 종료된 인턴에게 선물로 줬다.
원래부터 그렇게 하려고 마음 먹고 있었는데, 선물 포장이 상당히 어려웠다.
포장하는 것 자체도 어려웠지만, 그 일을 하려고 마음 먹는 것이 더 어려웠다.
다이소에서 포장지를 이것저것 살펴보면서, 그냥 그만두겠다고 마음 먹은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결국, 이것도 인턴 근무가 끝나려고 하는 시점에 부랴부랴 해치웠다.
역시, 닥쳐야 한다.
베개를 전부 버렸다.
편한 베개를 찾아 그동안 얼마나 많은 시간과 돈을 들였던가.
인체 공학적으로 만들었다는 베개를 몇 개나 샀는지, 헤아리기도 어렵다.
그렇게 십수 년을 들여 겨우 내게 맞는 베개를 찾았다고 생각했는데,
한 달쯤 전에 베개를 베지 않고 자는 것이 건강에 좋다는 영상을 보았다.
실제로 베개 없이 자보니, 더 나은 것 같다.
적응하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목 디스크 진단을 받은 적이 있다.
요가 하면서 목 돌리기를 하면, 왼쪽으로 돌릴 때 135도 부근에 딸깍 하는 느낌이 난다.
그런데 베개 없이 자다 보니 그게 없어졌다.
기쁜 마음으로 베개들에게 사요나라.
3. 사요나라
윗 문장을 쓰면서, 처음에는 베개들에게 "안녕"이라고 썼다.
그런데 안녕이란 인사말은 헤어질 때는 물론 만날 때도 하는 말이다.
헤어질 때 인사말은 크게 두 종류다.
다시 보자는 것과 잘 지내라는 것.
후자의 경우, 다시 못 볼 수도 있다, 내지 다시 보지 말자는 뜻이 담기는 경우도 많다.
안녕히 계세요, 라고 한다면 후자에 해당한다.
그러나, "영원히 안녕"이라고 말하지 않는 한, 다시 볼 일 없다는 뉘앙스는 없다.
그런데 이런 뉘앙스가 강한 헤어짐 인사말이 두 개 있다.
사요나라, 그리고 아디오스다.
사요나라는 유명하다.
<신세기 에반겔리온>에서 신지가 레이에게 간곡히 하는 말이, 사요나라라는 슬픈 말 하지 말라는 것 아닌가.
사요나라의 어원은 잘 모르겠지만, 다시 보자는 "마타 아시타" 계열의 인사말이 있는 걸 보면, 헤어짐을 강조하는 건 분명하다.
(찾아 보니, 사요나라의 어원은 then을 뜻하는 '사라바'라고 한다.)
아디오스는 "신의 뜻대로"라는 뜻이다.
프랑스어의 adieu도 같은 의미다.
다시 보자는 의미의 au revoir가 있는 걸 보면, 아디오스든 adieu든 헤어짐을 강조하는 건 분명하다.
사요나라까지는 아닐지 모르나, 다시 못 볼 경우를 강하게 가정하는 느낌이다.
영어에서도 see you again류에 대비되는 good bye가 있으니 두 가지 카테고리가 모두 존재한다.
그러나 good bye라고 해서 사요나라나 아디오스 같은 느낌은 들지 않는다.
워낙 이런 계열 인사말을 쓰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이별 통보가 아닌 다음에야 헤어질 때 이런 말을 하지는 않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