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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말 Jul 12. 2021

축구공에 왜 오각형이 있을까

[책을 읽고] 매트 파커, <험블 파이>

교양수학서 중에 이렇게 웃겼던 책이 있었던가. 교통 표지판에 축구공이 6각형으로만 그려진 것을 보고 저자는 지자체에 항의 편지를 쓴다. 그게 뭐 대수냐고 하지만, 6각형만으로는 절대 공을 만들 수 없다. 6각형으로만 만들겠다면 도넛 모양은 가능하다. 저걸로 축구가 되느냐는 별개의 문제지만 말이다. 위상 수학과 관련해서 썰렁한 농담은 많이 봤지만, 이렇게 유쾌한 방식으로 위상 수학 얘기를 하는 사람은 처음 봤다.


영국의 우편번호 체계는 숫자 외에도 알파벳을 사용하는데, 알파벳을 전부 쓴다면 약 2.9조 개의 조합이 가능하다. 이렇게 되면 영국 땅 30제곱센티미터 당 우편번호를 하나씩 할당할 수 있게 된다.


내 생각엔 좋은 아이디어인 것 같다. 집안의 찬장이나 냉장고마다 우편번호를 하나씩 부여해서, 온라인으로 식료품을 주문한 다음 제품마다 제 위치로 배달될 수 있도록 각각 우편번호를 적어주면 될 것 아닌가. (256쪽)


참, 이 책의 쪽번호는 417쪽에서 시작해서 줄어드는 방향으로 되어 있다. 그래서 256쪽은 책의 전반부에 포함된다. 별 시덥잖은 짓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이렇게 쪽번호를 매기는 방식은 의외로 쓸모가 있었다. 이 책은 나보다 아내가 먼저 읽기 시작했는데, 내가 이렇게 물은 적이 있다.


"책 얼마나 남았어?"

"36쪽."


의외로 실용적인 방법이었던 것이다.


저자는 여러 가지로 나와는 코드가 맞는 사람인 것 같다. 나도 예전에는 축구공에 오각형이 들어 있는 것을 보고 꽤 불편해 했기 때문이다. 저자와 마찬가지로 나도 <문명5>를 하면서 Be폭력주의 패왕 간D에게 핵공격을 당했다. 



수학 얘기는 별로 없다


시종일관 웃으면서 볼 수 있는 수학책은 많지 않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독보적이다. 그러나 웃기는 데에 집중한 전략에는 대가가 따르는 법이다. 이 책은 숫자와 수학에 관한 농담집이라고 봐도 된다. 이 책에서 독자는 수학에 관해 거의 아무 것도 배우지 못한다.


예컨대 어떤 숫자를 0으로 나누면 무엇이 되는가에 대해, 저자는 단순히 "무한이 아니다."라고만 단정짓고 만다. 고등학교 수학만 배운 사람이라도 당연히 아는 사실이지만, 인류는 이 사실을 꽤 어렵게 알아냈다. 단지 외우고 지나갈 문제가 아닐 수 있다는 얘기다. 


교양수학서 중에 심각한 쪽에 속하는 이언 스튜어트의 <수학사 강의>는 이 문제를 꽤 진지하게 다루고 있다. 뉴턴도 라이프니츠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이 문제에 철학자 버클리는 심각하게 도전했고, 수학자들은 100년이 지나서야 대답을 내놓을 수 있었다.



동전 던지기로 야바위를


페니 앤티(penny ante) 게임은 꽤 흥미롭다. 확률에 대해 조금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상대야말로 더 잘 속을 것이다. <통계학 수업>이라는 훌륭한 책을 쓴 수학자 데이비드 스피겔할터조차도 확률 문제는 손으로 계산해보기 전까지 자신이 없다고 말했다. 똑똑하다고 자부하는 많은 사람들이 몬티홀 게임의 승률을 잘못 생각한다.


일반적인 동전 던지기와 페니 앤티 게임이 다른 점은 상대방이 던진 결과를 내가 이어받는 점뿐이다. 또 하나 훌륭한 점은 내가 언제나 이기는 것도 아니라는 점이다. 내 승산은 상대방에 비해 꽤 높은 편이지만 대개의 경우는 상대나 나나 꽝이 나올 공산이 크다. 상대방이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시점은 게임이 꽤 진행된 다음이 될 것이다.


자, 이제 어디로 가서 야바위 판을 깔아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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