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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말 Jun 18. 2021

다빈치가 로또를 산다면

[책을 읽고] 조던 엘렌버그, <틀리지 않는 법> (3)

카유보트, <유럽의 다리>


3차원 세계를 2차원 평면에 투사하는 기법


원근법은 사실적 회화의 기본이다. 카유보트가 그린 위의 그림을 보라. 작은 화폭이 압도적인 거리감을 담고 있다. 이런 원근법을 수학적으로 뒷받침하는 것이 사영 기하학이다. 사영 기하학의 디테일은 쉽게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지만, 결론은 확실하다. 아래의 두 가지 공리가 그것이다.


임의 두 점은 딱 하나의 공통된 선에 속한다. 임의의 두 선은 딱 하나의 공통된 점을 갖고 있다. (456쪽)


첫 번째 공리는 유클리드 기하학에서도 공리이니 당연해 보인다. 그러나 두 번째는 어떤가? 이에 대해서는 평행한 철도를 2차원의 화폭에 투사할 때 나타나는 사영 기하학에 관한 설명을 책에서 직접 읽어보기 바란다. 아무튼 결론은 그렇다. 무한원점의 존재로 인해, 사영 기하학에서 임의의 두 선은 딱 하나의 공통된 점을 갖게 된다. 사영 기하학의 두 공리를 만족시키는 것들 중 가장 작은 것이 파노 평면이다.



이 평면에서 하나의 직선 위에 있는 점들의 집합을 표시하면 딱 7개가 나온다.

123

167

145

246

257

347

356



사영기하학이 나와 무슨 상관인가?


일곱 개의 번호 중 세 개를 골라 적는 로또를 가정하자. 가능한 조합은 모두 35가지다. 그런데 이 로또에는 아차상이 있다. 당첨 번호 3개 중 2개를 맞추는 경우다. 그런데 이 로또에서 3개의 번호를 위와 같이 고르면, 즉 파노 평면의 한 직선을 고르게 되면, 그 사람은 무조건 당첨금을 받을 수 있다. 1등에 당첨되거나, 아니면 아차상 3개를 받게 된다. 이렇게 환상적인 조합이 가능한 이유는, 7개의 숫자 조합이 서로에게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이제 그 얘기를 해보자.


2진수 메시지를 보낸다고 가정하자. 잡음이나 실수로 인해 메시지가 오염될 수 있다. 해법의 하나는 메시지를 중복해서 보내는 것이다. 예컨대 101이라는 메시지 대신 11 00 11이라고 한 번씩 부호를 반복하는 것이다. 이럴 경우 01이나 10같은 부분은 오염된 메시지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원래 00이었는지 11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렇다면 세 번 반복하면 어떨까. 받은 메시지가 110이었다면 원래 메시지는 아무래도 111이었을 확률이 높다. 숫자 두 개가 오염되었을 가능성보다는 숫자가 하나만 오염되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111이라는 원래 메시지가 110이라는 잘못된 메시지로 바뀌려면 숫자를 한 번 바꿔야 하고, 원래 메시지가 000인데 110이 되려면 두 번 바꾸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 책에 나오는 얘기는 아니지만, 이것을 수정거리(editting distance)라고 한다. (이 책을 읽기 조금 전, 나는 이 개념을 <Python Workbook>이란 책에서 만났다. 한꺼번에 여러 권 읽기의 위력이란.)


당연한 얘기지만 수정거리가 먼 것이 통신 시스템에 좋다. 오염된 메시지를 받았을 때 원래 메시지를 쉽게 유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염된 메시지를 받았고, 원래 메시지로 추정되는 것이 두 개 있다고 하자. 각각 수정거리가 1, 4라면 원래 메시지 추정은 쉽다. 그러나 만약 2, 3이라면 조금 더 애매해진다.


이제 연관성이 보이지 않는가. 파노 평면을 사용하면 수정거리가 가장 먼 짝들만 골라 쓸 수 있게 된다. 오류에 강한 메시지 전송 시스템이 완성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3차원 공간을 2차원인 화폭에 옮겨 놓는 방법을 강구하던 사영 기하학은 부호 시스템과 로또 싹쓸이 기법에도 활용될 수 있다.



그래서, 로또는 도대체 왜 사는데?


잠깐, 사람들은 기대값이 마이너스라는 걸 잘 알면서 복권을 대체 왜 사는 걸까? 한 가지 재미있는 해석은 무려 밀턴 프리드만이 내놓은 것이다. 복권이 당첨되면 그 사람은 갑자기 상류 계급에 진입하게 된다. 그러나 복권이 꽝이라고 해서 그 사람이 가난의 구렁텅이로 떨어지지는 않는다. 따라서 극악의 확률이기는 해도, 복권의 기대값 구조는 불균형적이다. 꽝이라고 해서 삶이 크게 망하는 일은 없지만, 만의 하나 당첨이라도 되면 인생이 바뀌는 구조인 것이다. 그래서 복권을 사는 것은 합리적인 행위다.


그러나 또, 잠깐. 우리는 사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알고 있다. 사람들이 왜 암벽을 오르고 스피드를 즐기는가? 기대값으로 치면 아주 형편없을 뿐 아니라, 최악의 경우 사망이라는 벌칙이 기다리는데 말이다. 재미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복권도 게임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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