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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말 May 10. 2023

사과파이, 끝까지 쪼개보자

[책을 읽고] 해리 클리프, <맨땅에서 애플파이 만들기> (3)

반물질


폴 디랙은 순전히 수학으로 반물질의 존재를 예측했다. 댄 브라운의 소설 <천사와 악마>에서 보듯, 반물질이란 것은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우주 초기에, 특히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우주의 크기가 확 커진 직후에, 물질이 반물질보다 아주 조금 더 많았기에 지금 세상이 이렇게 되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러나 현대 물리학이라는 것은 보통 수준의 상상력으로는 부족한 영역이다.


예를 들면, 우주의 일부분은 반물질로 이루어졌을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러나 이 상상력은 비교적 쉽게 기각된다. 만약 그렇다면, 물질 우주와 반물질 우주의 경계면에서 지속적인 감마선 폭발이 일어날 것이고, 이것은 쉽게 관측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상상도 가능하다. 물질과 반물질이 만나면 에너지를 만들며 소멸한다. 그러나 이들이 서로 잡아당긴다고 넘겨짚을 수는 없다. 아직 실험으로 입증되지 않은 추측일 뿐이다. 만약 물질과 반물질 사이에 척력이 존재한다면, 우리는 굳이 반물질을 가두기 위해 전자기장이나 여타 기발한 방법을 고안하지 않아도 된다. 더구나 위에서 말한 반물질 우주가 존재해도 감마선 폭발이 일어나지 않을 수 있다.



성미자


물질과 반물질의 균형을 깬 것은 무엇일까? 나 같은 일반인은 그냥 우주 초기에 물질이 반물질보다 조금 더 많았으면 되는 거 아냐? 라고 단순히 생각하고 넘어간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집요하다. 이들은 일단 우주 초기 상전이 시기, 즉 약력과 전자기력이 분리되는 그 시점에 힉스장이 균일하지 않게 발생하는 시나리오를 만들었다. 순두부가 군데군데 뭉쳐 있는 것처럼 극초기의 우주는 힉스장이 존재하는 거품(순두부)과 힉스장이 없는 기타 공간(물)이 섞여 있다.


힉스 거품 내부에서는 약력과 전자기력이 분리되었지만, 그 바깥에는 하나의 힘으로 존재한다. 그런데 약력은 전하-패리티 대칭을 붕괴시키므로, 즉 물질과 반물질에 대해 다르게 영향을 미치므로, 거품의 표면에서 반쿼크가 튕겨 나올 확률은 쿼크가 튕겨 나올 확률보다 약간 더 크다. 즉 거품 안에는 쿼크(물질)가 반쿼크(반물질)보다 더 많다. 이 시점에, 거품의 외부에만 존재할 수 있는 가상의 입자, 스팔레론이 반쿼크를 삼켜 쿼크로 바꾼다. 그리고 거품이 점점 많아지며 우주를 채우면서, 물질>반물질의 시나리오가 완성된다.


그러나 계산 결과도 실험 결과도 이 시나리오를 배척했다. 특히 런던 임페리얼 칼리지 지하 시설에서 관측된 전자의 모양의 거의 완전한 구(sphere)의 형태인데, 이는 우리가 아직 모르는 대칭을 깨는 양자장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강력한 증거다.


그래서 우주 초기의 대칭을 깬 주인공 후보로 새로 주목받게 된 것이 중성미자다. 2020년, 일본의 중성미자 감지 장치에서, 물질-반물질과 관련된 대칭을 중성미자가 깰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관측되었다. 지금까지 그 대칭을 깨는 것은 약력이라고만 생각해왔는데, 중성미자도 그 대칭을 깰 수 있다면, 다른 설명이 가능한 것이다. 


우주 초기에 아주 질량이 큰 중성미자들이 존재했다면, 이들이 대칭을 깨고 사라졌을 수 있다. 문제는 이렇게 질량이 큰 중성미자를 확인할 수 있는 크기의 가속기는 지구상에 만들 수도 없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이 특별한 중성미자는 힉스 입자를 관측했던 방식으로는 관측할 수 없다.


2020년 관측은, 현재 존재하는 (매우 가벼운) 중성미자가 대칭을 깬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이고, 가벼운 중성미자가 대칭을 깬다면 매우 무거운 중성미자도 마찬가지 아니겠느냐 하는 것이 이 가설의 핵심이다. (입증이 불가능하니 마치 초끈이론 같다.)



미세조정의 문제


우주의 중요한 상수들이 인간 존재를 위해 미세조정된 것처럼 보인다는 미세조정의 문제는 과학을 불신하려는 사람들이 아주 좋아하는 소재다. 이 문제에 대해 현재까지 가장 강력한 설명, 즉 인류원리는 아주 많은 사람들이 싫어하는 설명이다. 이해하기 쉬운 다중우주를 선호하는 사람들도 꽤 있는 것 같지만, 저자의 말에 의하면 다중우주야말로 과학자들이 제일 싫어하는 대안이라 한다. (나는 스티븐 호킹에 대한 빠심 때문인지, 인류원리에 아무런 거부감이 없다...고는 말 못해도 별로 거부감이 없다.)


미세조정이 미세조정이 아니고 필연임을 밝힐 수 있다면, 그 이론이야말로 단박에 대통일 이론의 초강력 후보가 될 것이다.


이론적으로 힉스장의 에너지(질량)값 중 가장 확률이 높은 것은 0GeV와 10^19GeV 등 2개다. 아주 극단적으로 다른 값이다. 그러나 실제 힉스장은 246GeV다. 저자의 기막힌 비유에 따르면, 초강력 태풍 속에 연을 날렸는데 연이 사뿐하게 고도 30cm 위치에 떠 있는 상황이다. 땅에 처박히든지 하늘 높이 날아가 사라져버리는 게 정상인데 말이다.



여기에서 등장하는 것이 초대칭이론이다. 페르미온과 보손 사이에 초대칭짝이 존재한다는 주장이다. 초대칭짝의 이름은 그야말로 가관인데, 쿼크의 초대칭짝은 스쿼크(squirk)인 반면 광자의 초대칭짝은 포티노(photino)다. 대칭이라면서 규칙도 없다.


초대칭이 미세조정을 설명하는 방식은 이렇다. 예컨대 전자장이 힉스장을 한쪽 방향으로 밀면, 전자의 초대칭짝인 셀렉트론이 힉스장을 반대 방향으로 밀어 균형을 이룬다는 것이다. 저자의 비유를 다시 빌리자면, 두 개의 태풍이 힘의 균형을 통해 연을 적당한 높이에 떠 있게 하는 형국이다.


미세조정을 설명하는 또 다른 후보로는 여분차원이 있다. 초끈이론에서 말하는 10차원 공간이 한 예다. 중력이 다른 기본 힘에 비해 비교할 수 없이 약한 이유도 여분차원으로 설명 가능하다. 중력이 다른 차원으로 누출되기 때문이다. 즉 3차원 공간에서 중력은 약해 보이지만, n차원을 모두 감안하면 절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저자의 말에 의하면 초대칭은 이미 설 자리를 잃은 듯하다. 초대칭 입자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은 초대칭 입자의 질량이 그만큼 크다는 것인데, 그렇게 큰 질량의 초대칭 입자는 힉스장의 값을 골디락스 존 바깥으로 날려버리기 때문이다. 초대칭 이론의 각종 설정을 바꾸면 이론의 목숨을 당장을 살릴 수 있겠지만, 미세조정을 설명하려고 도입한 초대칭 이론의 설정값을 미세조정하는 것은 그야말로 주객전도 아닌가.


힉스 입자가 단일 입자가 아니라, 여러 양자장의 혼합이라는 상상도 가능하다. 물론, 이건 아직 그냥 상상의 영역이다.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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