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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말 Sep 19. 2022

어떻게 계속 살아가시는 거예요?

[책을 읽고] 룰루 밀러,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스탠포드 대학교 초대 총장이다. 이 책이 나오고 6개월이 지나기 전까지, 그의 동상은 스탠포드 대학교에 당당히 서 있었다. 글쎄, 그게 왜 문제가 되냐고? E대학교의 김활*이나 K대학교의 김성*와 같은 이유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평생 우생학을 "실천"한 사람이다. 미국이 남들과는 다르게 누구(독일)보다 빠르게 우생학을 법제화하고 사람들에게 강제 불임수술을 대대적으로 전개한 바탕에는 이 사람의 공이 크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자기 죄에 대한 벌을 받지 않고, 상처 하나 입지 않고 빠져나갈 수 있었다. 이런 게 우리가 사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355쪽)



1905년,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스탠포드 대학교 총장으로 일하고 있었다. 그는 섹스 스캔들을 덮어버리고 갱단 두목처럼 학교를 운영한다는 평판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사장 제인 스탠포드가 곧 그를 해고할 것이라는 소문이 떠돌았다. 그런데 묘하게도 하필 그 시점에 제인 스탠포드가 사망했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제인 스탠포드의 독살 사건 조사를 끊임 없이 방해했고, 결국 조사는 흐지부지되었다. 그런데 제인의 죽음은 스트리크닌이라는 독성 물질에 의한 것이었다. 공교롭게도, 어류 분류학의 대가였던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 표본용 물고기를 잡기 위해 늘 써왔던 물질이었다.


저자는 왜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라는 악인의 생애를 탐구하기로 한 것일까? 그에게서 살아가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해서였다.


아무 약속도 존재하지 않는 세계에서 희망을 품는 비결, 가장 암울한 날에도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 비결, 신앙 없이도 믿음을 겆는 비결 말이다. (102쪽)


저자의 말에 따르면,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그릿'을 가지고 있었다. 다윈의 학설이 받아들여지면서, 신의 섭리라는 것을 조던은 포기해야 했다. 그러나 그렇게 살아갈 수는 없었다.


다윈이 나타나 신의 계획이라는 관념이 허상임을 폭로했을 때, 데이비드는 지구의 피조물들이 우연히 생겨났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완벽함의 계층구조에 관한 관념을 유지하는 방법을 어떻게든 찾아내려 애썼다. (307쪽)


그것이 바로 우생학, 즉 우연히 생겨난 피조물들이 피라미드와 같은 계층구조를 이루고 있다는 주장이었다.


조던은 그릇된 믿음과 수많은 악행으로 살아남았다. 하지만 그의 방법이 잘못된 것이라는 사실을 아는 저자는 그렇게 살 수 없다. 그래서 그녀는 다른 무언가를 찾아야 했다. 그것이 '민들레 법칙'이다.


우생학적 관점에서 소위 부적합자들은 쓸모없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수없이 존재하는 관점들 중 하나일 뿐이다. 어떤 다른 관점에서 보면 그 존재는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존재일 수도 있다. 민들레는 골프장 관리인에게 잡초일 뿐이지만 누군가에게는 기적의 영약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마음의 위안일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다윈이 독자들에게 그토록 열심히 인식시키고자 애썼던 관점이다. (342쪽)


자, 이것으로 저자의 방황은 끝났다. 그러나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란 악인, 대가도 치르지 않고 평생 악행만을 일삼다 간 자에 대한 복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저자는 캐럴 계숙 윤의 <자연에 이름 붙이기>라는 책에서 해답을 얻는다.

캐럴 계숙 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평생을 어류 분류학에 바쳤다. 그런데 캐럴 례숙 윤에 따르면 '어류'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어류가 견고한 진화적 범주라는 말은 실제로 완전히 헛소리다. 윤의 설명을 빌리면, 그것은 마치 '빨간 점이 있는 모든 동물'이 한 범주라든가 '시끄러운 모든 포유류'는 한 범주라는 말과 같다. (362쪽)


진화의 계통수를 연구하는 분기학자들의 제1원칙은 다음과 같다. 타당한 하나의 진화적 집단은 특정한 한 조상의 모든 자손을 포함해야 하며, 다른 것은 하나도 포함해서는 안 된다. (다시 말해, 진화적 집단 분류 결과는 MECE여야 한다.) '어류'라는 분류는 그들이 바다에 산다는 특징 하나만을 토대로 만들어낸 허상이다. 만약 그것이 진정한 계통수적 분류라면, 그들과 공통 조상을 지닌 모든 후손 역시 어류에 포함되어야 한다. 따라서 개구리, 새, 소는 물론 인간도 어류여야 한다.


 저자는 우연한 계기로 자신도 모르고 있던 성정체성을 깨닫고, 남편은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남편에게 버림받은 그녀는 어떻게든 살아갈 방법을 찾으려 한다. 그래서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삶을 따라간다. 그러다가 그의 우생학에 의해 불임수술을 당했던 한 여자를 찾아가 인터뷰를 한다.


1967년 미국, 19세였던 애나는 부적합자 수용소에서 불임화 수술을 당했다. 그녀는 7살 때 그 수용소로 붙들려 와서 12년 동안 그곳에서 살았다. 이 수용소는 우생학적 관점에 따라 부적합자들을 감금하고 강제 노동을 시켰으며, 무엇보다 그들이 사회에 악영향을 줄 수 없도록 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어떻게 계속 살아가시는 거예요?"
그것은 어떤 면에서는 내가 평생에 걸쳐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물어왔던 질문이다.
(중략)
그때 메리가 불쑥 말했다.
"나 때문이지!"애나가 웃기 시작했다. "그렇지. 물론이지. 메리 때문이야."  (336쪽)


메리라는 사람 때문에 애나는 그 불행을 겪고도 살아간다. 이것을 단순히 민들레 법칙이라 부를 수도 있다. 그러나 더 근원적인 차원에서 민들레 법칙은 바로 이것이다.


파괴와 상실과 마찬가지로 좋은 것들 역시 혼돈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400쪽)


어쩌면 이건 그냥 흔해 빠진 긍정 마인드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바꿀 수 있는 유일한 존재는 우리 자신뿐이라는 명제는 부처님과 그 제자들뿐 아니라 수많은 다른 철학자들도 발견해낸 진리다. 책의 결말부에서 저자는 마치 전화위복, 새옹지마를 얘기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마음의 유연성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행복은 동적이다. 정적인 어떤 조건을 달성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모든 상황에 대해 일정한 태도를 유지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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