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히말 May 16. 2023

한 명 죽이기 vs. 다섯 명 죽이기

[책을 읽고] 마틴 셀리그먼 등, <호모 프로스펙투스> (2)

트롤리학


트롤리학이라는 것이 있다. 이 용어는 처음 들었더라도, 내용은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브레이크가 고장난 트롤리가 미끄러져 내려오는 길에 5명의 인부가 일하고 있는데, 그냥 놔두면 이들이 죽고, 뭔가 손을 쓰면 1명을 대신 죽이는 것으로 끝난다는 시나리오다. 이 문제가 딜레마로 불리게 된 까닭은, 5명을 살리려고 1명을 죽인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그러한 의사 결정의 양상 때문이다.


가장 먼저 제기되었던 딜레마는 이거다. 첫 번째 시나리오에서는 단순한 레버 조작으로 1명이 대신 죽는 결정을 내릴 수 있다. 반면, 두 번째 시나리오에서는 뚱뚱한 사람을 직접 밀어야 한다. 짐작하겠지만, 첫 번째 시나리오보다 두 번째 시나리오에서 그냥 5명이 죽게 놔두는 결정의 비율이 훨씬 높다. 당연하다. 두 번째가 훨씬 더 직접 살인에 가깝기 때문이다.


의사 결정 과정의 경중을 조절하기 위해 수많은 변종 시나리오가 고안되면서, 이 딜레마를 연구하는 일은 트롤리학(Trolleyology)이라는 명칭까지 얻게 되었다. 조소하는 의미에서 쓰이는 단어인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이미 여러 권의 책에서 보았지만, 농담처럼 쓰인 사례는 아직 만나지 못했다.


트롤리학 입문 시나리오


트롤리학에서 두 번째로 유명한 시나리오는 줄리와 마크의 이야기다. 줄리와 마크는 어느날 둘만의 여행을 떠났다. 사막 한가운데서 별을 보며 평온함을 즐기던 그들은 섹스를 한다. 철저히 피임을 했기에, 아이가 태어난다든가 하는 복잡한 상황, 즉 미래가 달라지는 일은 완전히 배제된다. 섹스를 끝내고 나서, 그들은 별로 재미있지 않았다는 사실에 합의하고 다시는 그러지 않기로 엄숙하게 약속한다. 그 둘은 남매였다.


이들의 행위를 용납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대체로 정치적 성향에 의해 양분된다. 그래서 누군가가 마치 피터 싱어가 연상되는 변종 시나리오를 개발해냈다. 그 시나리오는 다음과 같다.


줄리와 마크가 둘만의 여행을 떠난 것까지는 같다. 그들은 별을 보며 즐기다가 갑자기 한 가지 아이디어를 냈다. 러시안 룰렛을 해보기로 한 것이다. 리볼버에 총알을 하나만 넣고, 차례대로 자기 머리에 총구를 들이댄 채 한 차례씩 방아쇠를 당겼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둘은, 러시안 룰렛이 생각보다 재미없다는 사실에 합의하고, 다시는 이런 일을 하지 않기로 엄숙하게 약속한다.


어떤가? 섹스 시나리오에서 둘의 행동을 용인한 경우라도, 이 시나리오에서는 용인하지 않는 사람들이 나타난다. 첫 번째 시나리오와는 달리, 두 번째 시나리오에서 이들이 얻는 것은 아예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낮은 확률로 일어날 수도 있는 사건의 결과가 너무 끔찍하기 때문이다. 즉, 합리적 인간이 선택하기에는 기대값이 너무 형편없다. 


피험자의 답을 듣고 나서, 질문자가 덧붙이는 한마디가 이 시나리오의 묘미다. "앞의 시나리오도 마찬가지죠. 그들은 자신들의 영혼을 가지고 러시안 룰렛을 한 거니까."


현타를 불러오는 진짜 트롤리 딜레마


도덕적 딜레마와 전망 이론


<호모 프로스펙투스>에서는, 트롤리학의 도덕적 딜레마에 제3자를 개입시킨다. 도덕적 딜레마의 상황과 그 상황에서 어떤 결정을 내린 사람을 제시하고 나서, 그 사람에 대한 신뢰도를 묻는 것이다. 즉, 의사 결정을 제3자가 평가하도록 한 것이다.


실험 결과, 많은 사람들이 레버를 당겨 5명을 구한 사람은 신뢰하지만, 직접 사람을 밀어 죽여 5명을 구한 사람은 신뢰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도덕적 딜레마가 중요한 이유는, 딜레마 상황에서 옳은 결정이라는 정해져 있어서도 아니고, 그런 결정을 내려 영혼을 온전하게 유지하거나, 하늘 나라 티켓에 필요한 점수를 따야 하기 때문도 아니다. 도덕적 딜레마에 대한 답을 구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사회적으로 가장 합당한, 즉 사회를 가장 덜 분열시킬 결정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제3자의 시각을 도입하는 것은 매우 적절하다.


딜레마 상황에서 어떤 결정을 하느냐를 보고, 우리는 그 사람을 신뢰할 수 있는지 여부를 "느낀다." 즉 감정에 의해 유도되어, 우리는 직관적 결정을 내린다. 이 책에 따르면, 우리의 뇌는 가용한 리소스를 모두 동원하여 미래에 최적인 결정을 유도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따라서, 그 직관적 결정은 "옳다." 


결국, 트롤리 딜레마를 포함한 모든 도덕적 딜레마 문제에서, 우리는 제3자를 도입한 시나리오로 해당 결정이 옳은지 그른지를 파악할 수 있다. 실로 대담한 결론이지만, 논리 도약이 심하다. (피터 레일턴이 써서 그런 듯. 피터 레일턴이란 사람은 이 책에서 처음 봤지만, 네 명의 저자 중 제일 별로다.)


*** 계속 ***

이전 12화 사과파이, 끝까지 쪼개보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