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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말 May 09. 2023

힉스 입자, 또는 신의 입자

[책을 읽고] 해리 클리프, <맨땅에서 애플파이 만들기> (2)

힉스 입자


줄리언 슈윙거가 도입한 <국소게이지대칭(local gauge symmetry)>라는 원리가 있다. 이에 따르면 전자기력, 강력, 약력 등 자연의 기본 힘은 자연에 존재하는 대칭의 결과다.


물리 세계에서 대칭의 역할을 처음 간파한 것은 독일의 여성 수학자 에미 뇌터다. 뇌터의 정리에 의하면, 대칭이 존재하면 그에 대응하는 보존량이 존재한다. 예컨대 회전대칭이 있다면 각운동량이 보존된다. 에너지와 운동량이 보존되는 원리도 대칭 원리로 설명이 가능한데, 에너지 보존은 자연 법칙이 시간변환에 대해 대칭(시간변환대칭)이기 때문이고, 운동량이 보존되는 것은 자연 법칙이 공간의 모든 지점에서 같기(병진대칭) 때문이다.


보존 법칙과 관련된 위의 세 가지 대칭은 변환이 시공간의 모든 점에 적용되는 광역대칭(global symmetry)의 사례다. 예컨대 전체 우주를 90도 회전시키거나 어느 방향으로 1미터 움직여도 우주는 그대로일 텐데, 이럴 경우 우리 우주는 광역대칭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반면, 기본 힘과 관련된 대칭은 국소대칭(local symmetry)이다.  저자는 국소대칭을 비유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축구장을 사례로 든다. 우리가 신(내지는 <심축구장>이라는 게임의 플레이어)이라고 가정하면, 우리는 축구장을 90도 회전하거나 전체적으로 10미터 이동시킬 수 있다. 광역변환이다. 


국소변환도 가능하다. 예컨대 축구장을 한쪽만 기울여서, 한 팀은 내리막으로 공격하고 다른 팀은 오르막을 올라야 공격이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런 국소변환은 대칭적이지 않다. 그런데 힘을 도입하면 게임을 다시 대칭적으로, 즉 공평하게 바꿀 수 있다. 예컨대 축구장에 오르막 방향으로 항상 바람이 불도록 하는 것이다. 이 경우, 붕괴된 대칭이 힘에 의해 복원되는 셈이다.


놀랍게도 이것은 양자전기역학에서 전자기력이 도입되는 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 (427쪽)


축구 경기를 '하전입자의 거동을 좌우하는 법칙'으로 대체해보자. 광역변환에도 전자의 전하는 보존되는데, 이는 광역대칭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국소변환은 어떻게 될까? 만약 국소변환에도 불구하고 전자장의 거동이 바뀌지 않도록 하려면, 어떤 힘, 즉 새로운 양자장을 도입하면 된다. 이때 필요한 양자장이 바로 전자기장이다. 


4개의 기본 힘 중 전자기력과 약력은 이미 합쳐졌다. 즉, 같은 것으로 밝혀졌다. 간단히 말해서, 우주가 시작되고 1조 분의 1초가 지날 때까지 두 힘은 하나였다. 초기 우주의 SU(2)대칭(이게 뭔지는 나도 모른다)이 깨지면서 힉스장이 우주를 채웠으며, 힉스장에 걸린 (상호작용하는) 입자들은 질량을 받았고, 약력은 약해졌다.


태초에 하나였던 전자기력과 약력이 분리된 이유는, 힉스장이 W입자와 Z입자에만 질량을 부여하고 광자에는 질량을 부여하지 않아서다. (참고로 양성자나 중성자 질량의 대부분은 힉스장에서 얻은 질량, 즉 쿼크의 질량이 아니라 쿼크들을 결합시키는 글루온장의 에너지, 즉 강력에서 기인한다.)



힉스 입자의 존재 증거


이제 유명한 위 그림을 설명해보겠다. 두 광자의 에너지를 더하면 광자쌍을 낳은 원래 입자의 질량을 알 수 있다. 배경광자는 다양한 에너지를 가지기 때문에 넓은 범위에 분포한다. 반면, 힉스입자에서 탄생한 광자는 출처가 정해져 있어 질량의 합의 언제나 같다. 즉 힉스 입자의 질량과 같다.


따라서, 가로축에 광자쌍 질량의 합, 세로축에 광자쌍의 수(발생 빈도)를 표시하면 힉스입자 질량에 해당하는 부분에 언덕이 생겨야 한다. 바로 그 언덕이 저 언덕이다.


위 차트를 훨씬 더 쉽게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힉스 입자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귀무가설을 유의수준 5시그마로 기각하기 위해 CERN의 과학자들은 6개월 동안 LHC를 풀 가동했던 것이다. (힉스 입자 증명에 불충분하다고 생각되었던 2011년 데이터조차도 이미 4.2시그마의 유의수준에서 귀무가설을 기각할 수 있는 정도의 오차다. 경제학자나 심리학자라면 천지창조라도 증명할 만하다고 주장할 수준이다.)


힉스 입자의 별명은 신의 입자(god particle)다. 이 별명의 유래는 이렇다. 기자가 힉스 입자 관련 인터뷰를 했는데, 힉스 입자 발견의 어려움에 스트레스를 받을 대로 받은 과학자는 그 *놈의 입자(the goddamn particle)이라고 말했다. 이걸 그대로 옮기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판단한 그 기자는 신박한 기지를 발휘했다. 갑자기 욕설이 극찬으로 바뀌었다.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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