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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인 Aug 05. 2023

방현석 '새벽출정' 속 이 장면, 내 기억이 잘못됐나?

"당신은 우리 딸을 믿나? 아니면 생전 처음 보는 저 사람들을 믿나?"

창작과 비평 1989년 봄호에 발표된 방현석의 중편 <새벽출정>에 이런 장면이 나오는 걸로 내 기억에 남아 있다.


인천 세창물산 노동조합에서 파업투쟁을 주도하던 여성노동자 송철순의 고향 집에 회사관계자와 형사가 찾아간다. 고향 집에는 병환으로 거동을 못하고 누워있는 아버지와 그 아버지를 보살피는 어머니가 있다.

회사관계자는 철순의 어머니에게 "지금 따님이 빨갱이들 꼬임에 넘어가 노동조합을 만들고 파업을 선동하고 있으니 딸을 구하고 싶으면 빨리 데려가라"고 말한다. 그러자 어머니는 "아이고! 그년이 왜 그런 짓을?" 하며 그들을 따라 나서려 한다.

그때 방안에 누워있던 아버지가 고함을 빽 지르며 이렇게 말한다.


"당신은 우리 딸을 믿나? 아니면 생전 처음 보는 저 사람들을 믿나?"


소설 원본을 찾지 못해 정확한 워딩은 아니지만, 내 기억으론 이 대목에서 왈칵 눈물을 쏟았었다.

이어 딸 송철순이 파업투쟁 과정에서 현수막을 달기 위해 공장굴뚝에 올라갔다가 실족해 죽는 일이 발생한다. 청천벽력 같은 딸의 죽음 소식에 병원 영안실로 달려간 어머니는 한참을 울고 난 후 따라간 철순의 남동생에게 이렇게 말한다.


"집에 가서 쌀 한 가마니 가져와라. 철순이와 함께 싸우던 동료들도 먹으면서 싸워야 할 것 아니냐."


그리곤 장례를 독촉하는 회사관계자들에게 이를 악물고 이렇게 소리친다.


"우리 딸이 요구하던 것 다 해줄 때까진 안 돼!"


나는 이 대목에서 두 번째 눈물을 쏟았던 기억이 있다.


집에 창작과 비평 그 책이 있는 줄 알았는데 아무리 찾아도 없다. 그래서 결국 검색을 통해 <새벽출정>을 구입해 다시 읽었다. 그런데 앞의 기억, 아버지가 ‘우리 딸을 믿나, 저 사람들을 믿나’ 하는 대목이 없다.


내 기억이 잘못된 것일까? 다른 소설에서 읽은 대목을 이 소설의 그것으로 착각한 걸까? 아니면 소설이 단행본으로 재출판되는 과정에서 그 대목이 손질되거나 삭제된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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